"자영업 신명 나는 경제? 곧 문 닫을 판
 또 오신다더니 그 후 한 번도 안 오세요"

[MB가 타운미팅에서 만났던 사람들①] 수원 재래시장에 가다

등록 2009.02.23 17:45수정 2009.02.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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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신분이던 2007년 9월경 각 분야 인사들과 타운미팅을 통해 많은 공약들을 발표했다. 타운미팅 장면에서 이 대통령과 함께 활짝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많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그 뒤 1년여가 흘렀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던 사람들은 지금 이명박 정권 1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들이 그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말]
a  이 대통령이 다녀간 순대집.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다

이 대통령이 다녀간 순대집.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다 ⓒ 김환


지난 12일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시 영동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지동시장 순대골목은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했다. 재래시장 상인들 대부분은 이곳이 인근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고작 30% 정도의 자리만 손님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19년째 순대가게를 운영하는 임아무개(66)씨. 그의 순대가게는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찾아와 순대곱창을 먹고 간 집으로 유명하다. 2007년 9월 16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자영업이 신명 나는 경제'라는 이름으로 수원시 재래시장 상인들과 함께 타운미팅을 열었고,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이곳에서 식사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자 임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기를 썰었다.

a  이 대통령에게 순대곱창을 대접했던 순대가게

이 대통령에게 순대곱창을 대접했던 순대가게 ⓒ 김환


1년 전 MB가 순대곱창 먹고 간 집, 지금은

이 대통령은 당시 임씨에게 "한나라당이 정신 차려야 서민들이 살 수 있다, 서민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재래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고 한다. 또 "순대곱창 맛이 좋다, 다음에 반드시 또 오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요즘 1년 전에 비해 장사는 잘 되시나요?"라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뚜껑 열어보면 그게 그거지 뭐... 그때 당시에는 시장사람 모두 기대를 많이 했지. 서민 살려준다고 말했잖아. 근데 지금은 대통령 이야기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아. 장사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임씨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방문했을 당시 기대에 부풀어 있던 시장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듯했다. 한참이 지난 후 임씨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을 이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왔을 때는 순대곱창이 6000원이었지. 작년 연말부터 참고 참았는데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올해 2월부터 7000원으로 올렸어. 돈 많은 사람들이 돼지를 한꺼번에 사가서 나 같은 서민들은 더 비싸게 주고 겨우 사고 있어.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한 세상이지."


a  최근 물가상승으로 인해 2007년 9월 이 대통령이 먹은 순대곱창 가격이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랐다

최근 물가상승으로 인해 2007년 9월 이 대통령이 먹은 순대곱창 가격이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랐다 ⓒ 김환


음식을 나르던 부인 한씨도 한마디 돕는다. 한씨는 아직도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한 번 오겠다더니 그 뒤로 한 번도 안 왔어요. 나랏일 하느라 바쁘겠지요. 아직 4년 남았으니깐 더 기다려 보려고."

임씨는 얼마 전에 장사가 너무 안 돼 인근 대학가 앞으로 나가서 전단지도 돌려봤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 도중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모든 세상일을 순리대로 풀어 나가야지, 무조건 밀고 나간다고 일이 잘 풀리나. 취임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서민경제는 언제쯤 살릴까 몰라."

이명박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임씨의 말이다.

손님 없는 재래시장 "IMF 때도 이러진 않았다"

a  손님 하나 없는 영동시장 한복거리

손님 하나 없는 영동시장 한복거리 ⓒ 김환

영동시장 중앙에 위치한 한복 전문 거리. 100여 개의 한복 가게가 밀집해 있는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한복을 찾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만 끄는 구경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22년 동안 한복가게를 운영한 송아무개(50)씨는 손님 없는 가게에서 혼자 인터넷에 열중하고 있었다. 송씨에게 컴퓨터를 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생각한 것이 인터넷 카페였어요. 그곳을 통해 단골손님들을 관리하고, 한복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근데 이렇게 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죠."

타운미팅이 끝난 뒤에 이 대통령을 따라 한복거리를 다녔다는 송씨는 "그땐 다들 '경제대통령'이라고 해서 좋아했죠. 근데 지금은 후회하는 눈치더라고요. 한복 팔리는 개수를 보면 그럴 수밖에요"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송씨는 "IMF 때도 월 평균 100벌은 팔았어요. 근데 요즘은 월 평균 20벌도 못 팔아요. 그 정도 팔아서는 절대 버티지 못하죠. 조만간 문을 닫는 가게가 생길 것 같아요"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송씨의 가장 큰 불만은 카드 수수료이다.

이 대통령은 방문 당시 "대형마트보다 높은 재래시장 카드수수료를 카드 회사와 대화를 나눠 낮추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송씨 가게의 주거래 카드 수수료는 3.6%에서 고작 0.4%p 내린 3.2%이다. 송씨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이 대통령에게 화성 성역화 사업을 요구했던 영동시장 전무이사 이정관씨

이 대통령에게 화성 성역화 사업을 요구했던 영동시장 전무이사 이정관씨 ⓒ 김환

한편 경기도 상인협회 측 관계자는 "상인협회 측에서 몇몇 카드회사와 직접 협상 중이다, 더 낮은 수수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재래시장 수수료 인하"에 대해 권고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동시장 전무이사이자 한복가게 사장인 이정관(49)씨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타운미팅 당시 발언자로 나섰던 이 전무는 수원 화성 성역화와 재래시장을 연계하는 방안을 직접 이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수원의 세계적인 문화재를 복원해 재래시장과 함께 발전시키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예산부족과 시공사의 계약파기로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전무는 "현재 화성 복원사업은 시와 건설업체의 마찰로 인해 계약이 파기됐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선뜻 나서는 회사가 없는 것 같다"며 "이 대통령의 약속은 아직까지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아쉬운 속내를 내비쳤다.

"재래시장 활성화 지원금 약속, 아직까지는..."

12일 오전 11시, 시장 앞 도로에는 불법주차를 한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재래시장 인근에는 5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야외 유료주차장과 '팔달주차타워'가 있지만 가격이 비싸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사용이 거의 드문 게 현실이다. 인근 상인들은 주차장 개설을 약속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재래시장 앞 도로에 비상등이 켜져 있는 트럭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얼마 후 한 여성이 시장 안쪽에서 급하게 나와 차량의 앞 유리를 확인했다. 불법주차 위반용지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수원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이아무개(49)씨는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해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는데 인근 주차장 주차료가 너무 비싸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 장을 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며 무료 주차장은 언제쯤 생기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 주차장마저도 수원천 복개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와 인접한 곳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55)씨는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데 2년이나 걸리는 공사를 하다니, 장사를 포기해야 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낮아지는 매출 수치와 상인들의 경기 체감기온. 불과 1년여 만에 이 대통령의 약속이 실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한 것일 수도 있고, 상인들의 숙원을 모두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일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이 신명 나는 경제'라는 이 대통령의 구호가 그의 임기 내에 현실화될 수 있을까? 상인들 사이에 커져가는 의구심은 바로 이것이다.

a  영동시장과 지동시장 사이에 있는 도로와 주차장. 이마저도 수원천 복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예정이다

영동시장과 지동시장 사이에 있는 도로와 주차장. 이마저도 수원천 복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예정이다 ⓒ 김환


a  시장경영센터 상권개발연구실 점포경영실태조사 자료

시장경영센터 상권개발연구실 점포경영실태조사 자료 ⓒ 시장경영센터


덧붙이는 글 | 김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재래시장 #이명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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