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파리 7번 국도변 가게들.
김영균
김씨 가게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99건어물' 주인 권아무개(54)씨도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승용차가 멈춰서자 손님인 줄 알고 황급히 뛰어나오던 권씨는 "요새 장사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맞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거지 뭐. 우리도 장사 잘 될 때는 매일 7~8대씩 버스가 섰어. (주차장을 가리키며) 여기 봐. 주차장이 이렇게 넓은데도 차 세울 데가 없었으니까. 근데 요새는 진짜 죽지 못해 가게 문 열어놓고 있어."옆에 섰던 권씨의 부인은 "거짓말 보태서 한 달에 수천만원씩 손해 보고 있다"고 푸념을 더했다.
"가게를 통째로 전세를 냈으니까, 문 안 열어도 손해를 봐요. 예전에 우리 가게엔 물건 파는 아줌마를 3명이나 뒀었어. 그런데 장사가 안 되니까 다 내보냈지. 지금 둘이 나와서 있는데도 하루 손님 1명도 보기 힘들어."권씨 부부의 화살도 정부를 향했다. "도대체 서민 살리는 정책이라는 게 뭐냐"는 격앙된 목소리였다.
"아니, 우리 정부도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될 걸 괜히 자존심 싸움하는 것 아냐? 북한도 동족인데, 계속 오고 가고 해야 통일도 되고 하는 거지. 문 닫아걸고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이거 참 답답해서….""얼마 전에는 고성군에서 사람이 나와서는 장사가 안되니까 가게문 닫아놓고 공공근로 나오라고 하더라구. 이게 말이 돼? 장사하는 사람한테 가게문 닫으라니…. 하루하루가 죽겠는데, 정부에서는 몇 년 뒤에 뭘 하겠다는 정책만 내놓고."권씨 부부는 "오늘도 손님이 없어 오후 4시면 문을 닫을 것"이라며 무거운 발길을 가게 안으로 돌렸다.
이날 오후 돌아본 명파리 7번 국도변에는 김씨나 권씨의 가게처럼 '금강산관광 호황'을 누리던 가게들이 즐비했다. 쉼터민박, 명파슈퍼, 금강산슈퍼, 평양면옥, 식당 금강산가는길…. 하지만 문을 연 가게는 거의 없었다. 인적 끊긴 거리에는 이따금 집을 나온 개나 고양이만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역 부동산업자 "금강산관광 끊긴 뒤로는 문의전화도 없어""작년 7월 이후로는 여기 경제가 완전히 침체됐지. 대진항 가봐요. 밤 8시만 되면 불빛이 없어. (팔려고) 내놓은 횟집도 많고. 이 부동산도 문을 닫을까 해. 금강산관광 끊긴 뒤로는 외부에서 문의전화도 없어요."명파리에서 거진읍으로 통하는 현내면사무소 소재지 인근에서 S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부동산업자는 "금강산관광이 올스톱되면서 동해권, 특히 고성은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탄했다.
"여기 공장이 있나, 기반시설이 있나. 그냥 금강산관광으로 먹고 살았는데, 그것마저 안 되니까 원주민들도 할 일이 없는 거죠. 기껏 하는 일이 공공근로 사업인데, 하루이틀이지 매일 산에 가서 간목하고 산불감시하고…. 어떻게 먹고 살겠어요?"그는 "여기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 중단 때문에 속초, 양양도 굉장히 경제가 어렵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대진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쪽 간성읍, 거진읍에 재래시장 뒷골목 한번 가 보세요. 다 문 닫고 있어요. 여기 들르는 사람들이 거기서 잠도 자고, 밥이라도 먹고 해서 장사하고 살았는데, 이젠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거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그는 "현대아산에서 4월인가 다시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겠다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다"면서도 "그게 현대가 말하는 대로 이뤄질지…"라고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