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잔마크와 샤넬의 아름다운 부부애

등록 2009.03.02 10:21수정 2009.03.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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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탐구"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둘이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안고 사는 부부들이 마지막에 어렵게 찾는, 그래서 대부분 해결이 되지만 안타깝게 합일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에 방영되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두 사람의 심각한 문제점을 어쩌면 그렇게 전국 시청자가 다 보고 있는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나에겐 참으로 엄청나게 느껴졌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 신청자가 부인 쪽이었는데 우리나라 같은 가부장 풍토에서 부인 말을 듣고 따라나와 준 남편들이었다.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보다는 지기들의 부부생활이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가 되더라도 가정을 지키고 싶어하는 안타까움이 매번 시청자와 방청객은 물론, 초대손님들까지도 눈물짓게 하곤 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TV앞에 앉아서 함께 눈물 흘리며 지켜보던 날들이 참 많았다. 때론 부인 입장에서 공감했고, 때론 남편 입장에 공감하면서 남의 안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을 통해 남편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져 내 결혼생활에 대한 가르침도 많이 얻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감동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면 방송국에선 문제가 해결이 되든 안되든 출연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둘이서 여행을 다녀오도록 해외 여행권을 선물로 주었는데, 둘이서 여행을 하면 부부관계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해낸 제작진의 제안이 참 멋있다고 생각되었었다. 요새는 볼 기회가 거의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거기서 받았던 감동과 가르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부부가 아닐까 싶다.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더 가깝고 고마운 존재, 그래서 성서에도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촌수를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부부는 "무촌"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무너지면 원수보다도 더 무서운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도 부부관계임은 부정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해외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젊은 배낭족을 제하고는 대부분이 부부여행객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고, 서로를 부를 때는 언제나 다정하게 "Honey!"라고 불렀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부부가 앙코르와트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시엠립 공항에서 만난 맹인부부였다. 앙코르 5박 6일의 감동적인 답사를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얀 지팡이를 든 젊고 예쁜 여인과 그 옆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이 있어 처음에는 부녀지간이나 남매지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정하게 보여 혹시 부부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맹인이라는 것보다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고대 유적을 보러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사연이 무척 궁금했으나 섣불리 물어볼 도리가 없었다. 잘못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저 애만 닳았다.

 

그들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가다가 공항청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옆을 지나면서 남편에게 기회가 오거든 저들 부부에게 말 좀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어디 쉽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혹시 기회가 오거든!" 하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다행히 방콕공항에서 짐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운좋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 부부는 잔마크 부르넬(44세)과 샤넬 니콜(29세)이라는 캐나다인이었다. 그들은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 찾아와서 동남아 여러 나라(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 타이, 캄보디아)를 3주째 여행중이라고 했다. 대부분 남편이 전에 다녀온 곳들로 공감대가 형성되자 금방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부르넬은 미얀마의 인레 호수 이야기를 하면서 호수 위에서 사는 수상가족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도 무척 인상적이었던 곳이라 둘이서 함께 신나게 물위에서 채소를 가꾸는 모습 등 그곳 이야기를 하자 니콜도 대화 중에 끼어 들었다. 그녀는 마치 자기가 눈으로 본 것처럼 모션까지 해가며 자기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본 것은 모두 그의 남편 눈을 통해서 본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본 것처럼 섬세하고 실감나게 받아들였다.

 

어디선가는 도시가 더럽고 다리가 잘린 사람이 많아서 가슴이 아프다고도 하면서 그녀는 자주 대화 속에 끼어 들어 맑은 눈을 깜박이며 함께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런 그녀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남편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 존경스러웠다. 그녀가 느끼는 모든 것은 그의 눈으로, 그의 감성으로, 그의 목소리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다시 그녀는 자기의 감성과 촉각으로 마치 본 것처럼, 아니 어쩌면 눈으로 본 것보다 더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들의 부부애가 어찌나 눈물겹게 아름다운지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져와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뒤돌아서야 했다.

 

많은 부부들이 이 세상에서 생사 고락을 함께 하기로 하고 부부의 연을 맺고 출발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자신도 느끼지 못하게 얼마나 이기적이 되어 가는가. 그래서 다투고 헤어지고. 그는 그 남자를 성인이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그 말에 두 말 없이 동의했다. 지그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심각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조금만 상대방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문제될 것이 없을 텐데 서로가 자기 시각만을 고집하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 가자는 취지로 가정의 달 5월 21일은 둘(2)이 하나(1)된다는 의미에서 부부의 날로 공식 기념일로 지정,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기념한다. 그러나 오죽하면 부부의 날까지 생겨났을까 싶어 쓸쓸한 생각이 든다.

2009.03.02 10:21ⓒ 2009 OhmyNews
#부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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