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0m 칼라파타르에 오르다, 오금이 저리며 '덜덜'

어느 도덕샘의 철학적 사색이 있는 히말라야 여행기 18

등록 2009.06.09 15:09수정 2009.06.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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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일(1월 10일)

히말라야 발자국
칼라파타르 Kala Patthar(5550) 12:20
고락셉 Gorak Shep(5147) 13:10
로부체 Lobuche(4940) 15:00
페리체 Pheriche(4280) 17:10

드디어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칼라파타르(5550m)에 오른다. 칼라파타르의 모습은 고쿄리와 똑같이 흙과 자갈이 섞인 토구(土丘, 흙더미산)였다. 하지만 막상 올라서니 정상부 근처는 흙길이 끝나고 많은 돌들이 나타났다. 또다른 히말라야 전망대인 고쿄리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올랐다. 하지만 중간도 오르지 못해 코뚫린 황소처럼 힘겨운 숨만 내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쿄리보다 육중한 무게감이 몸을 짓눌렀고, 높은 고도와 함께 산아래 빙하로 날려 버릴 듯한 바람이 날 밀치고 있었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거친 숨소리에서 살아있음의 증거를 발견하다.


a 칼라파타르에 오르며 뒤돌아보다. 고락셉의 넓은 공터에서 칼라파타르로 오르며, 잠시 쉬어간다.

칼라파타르에 오르며 뒤돌아보다. 고락셉의 넓은 공터에서 칼라파타르로 오르며, 잠시 쉬어간다. ⓒ 윤인철


a 칼라파타르 정상 뒤에서 날 바라보는 푸모리! '어여 오라!'며 날 기다린다.

칼라파타르 정상 뒤에서 날 바라보는 푸모리! '어여 오라!'며 날 기다린다. ⓒ 윤인철


위로는 푸모리의 뽀얀 얼굴이 포근히 날 기다리고 있었으며, 뒤로는 에베레스트, 눕체, 로체가 병풍처럼 곧게 서서 날 응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고요히 날 주시하고 있었다. 인자 요산(仁者 樂山)이라 했던가? 어떤 흔들림도, 미동도, 유혹도, 미망(迷妄)도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풍채가 꼭 동양의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君子)를 떠오르게 하였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가이드 쿠시가 바위 뒤에 숨어버렸다. 옴싹달싹하지 않고, 수건으로 입과 코를 이리저리 막기도 하고 감기도 하며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자연이 쉽게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무엇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일까? 그 자격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고, 그는 나에게 직접 찾으라고 한다. 칼라파타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사방에서 날파리떼처럼 일어났다. 어떤 의식의 구애도 없이 묵묵히 올랐다.

중간쯤 오르자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 발치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던 여자가 '한국인이세요?'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쿄리조트에서 함께 식사했던 일산 여자였다. 그녀가 있는 곳까지 소리칠 힘이 없어 손만 흔들며 눈인사를 하였다. 벌써 칼라파타르까지 다녀온 듯 설산을 배경으로 한낮의 여유로운 야외 촬영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a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풍경들 오른편으로 아름다운 설산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다.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풍경들 오른편으로 아름다운 설산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다. ⓒ 윤인철


a 룽당가 묶여 있는 칼라파타르 정상! 뒤쪽으로 하얀 푸모리가 보인다.

룽당가 묶여 있는 칼라파타르 정상! 뒤쪽으로 하얀 푸모리가 보인다. ⓒ 윤인철


칼라파타르는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서인지, 끝이다 생각하면 그 뒤로, 뒤로 올라야 할 곳이 새롭게 나타났다. 귀신에 홀린 듯 착시 현상이 날 괴롭혔다. 이제는 믿지 않으리 다짐하며 불신감에 사로잡혀 오르기를 잠시, 드디어 칼라파타르 정상에 도착했다.

한 사람도 제대로 올라앉기 어려운 뾰족 솟구친 바위가 룽다(Lungdar:네팔 불교에서 소원과 희망을 기원하는 깃발)와 함께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안간힘을 써가며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보니, 반대쪽으로 끝도 모르는 절벽이 보였다. 보자마자 오금이 저리며 부르르 떤다. 이 억센 바람에 발이라도 얼핏 헛디딘다면 히말라야의 혼이 될 지도 모르리라. 바람 때문에 정상에 매놓은 룽다가 거세게 흔들렸다. 룽다에 새겨진 히말라야 사람들의 소망도 바람의 선율에 따라 저 멀리멀리 날아가리라!


룽다 아래에 엉덩이를 붙이고 뒤돌아 앉았다. 무제! 인간이여, 결코 신에게 도전하지 마라. 어찌 인간의 잔재주로 신의 조화를 넘볼 수 있을쏘냐. 영화 스크린처럼 아래로는 길게 뻗은 빙하가, 위로는 히말라야 산군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신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보물지도 두루마리를 펼친 모양이다. 정상에 올라서도 쿠시는 큰 바위 뒤에 숨어 '덜덜덜' 떠는 나에게 주위 경관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 느꼈던 희열과 경이로움이 차츰 시간이 지나며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해갔으며, 대자연은 날 향해 포효하는 백호로 변해 있었다. 마음이 백색으로 변한다. 백색으로 변하자 의식도 기지개를 편다.

a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1] 로체, 에베레스트, 눕체의 웅장한 모습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1] 로체, 에베레스트, 눕체의 웅장한 모습 ⓒ 윤인철


a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2] 아마다블람을 중심으로 펼쳐진 쿰부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2] 아마다블람을 중심으로 펼쳐진 쿰부 히말라야 ⓒ 윤인철


a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3] 쿰부히말라야

칼라파타르 파노라마 [3] 쿰부히말라야 ⓒ 윤인철


몰락이냐? 비약이냐?
니체여, 신은 죽었는가? 키에르케고르여, 신과 대면해야 하는가?


정상이다.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몰락이냐? 비약이냐? 니체는 몰락을 속삭이고, 키에르케고르는 삶의 비약을 속삭인다. 니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며, 키에르케고르는 아래에서 위로 오르자고 한다.

순종하는 낙타는 저항하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저항하는 사자는 절대긍정의 어린애가 되어야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신의 죽음에서 출발해 허무를 깨닫고 자유로 내달리라고 말한다.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고, 사자는 어린애가 되는가'

낙타는 신과 도덕의 절대적인 명령에 순종하는 정신이다. 사자는 신과 도덕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그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의 부재로 허무감에 시달리는 정신이다. 어린애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 긍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정신의 단계이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그에게 신과 종교는 약자가 날조해낸 것이고, 노예의 도덕일 뿐이다. 종교는 인간의 작품이며 인간의 광기이다. 신과 종교가 만들어 놓은 가치에 순종하는 노예들이여, 낙타들이여! 진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도덕에 대해 저항하고, 신과 종교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사자가 되어 해방되어라. 자유를 획득하여라. '신은 죽었다.' 신이 죽은 빈 자리를 '허무'가 채운다. 영원한 진리라고 믿었던 신이 죽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는 이 허무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신이 죽은 빈 자리를 너희들이 대신할 것이다. 노예의 도덕에 따라 살지 말고, 주인의 도덕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제 허무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고 평가하는 주체, 사물의 척도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초월자가 아닌 인간의 몫이 되었다.

순종하는 낙타는 저항하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저항하는 사자는 절대 긍정과 기쁨의 어린애가 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현재의 인간을 초극하고, 자신과 삶의 주인이 되는 '자기극복'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삶에 대한 강한 생명력과 의지, 즉 '힘에의 의지'대로 살아야 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지배해야 한다. 어떤 것에도 억압되고, 속박되고, 지배되지 않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삶에 철저히 충실하고 대담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주인이 되어 내려와라. 바로, 너는 '초인(Superman)'이다.

미적 단계에서 윤리적 단계로, 윤리적 단계에서 종교적 단계로 비약하라!

키에르케고르는 니체에게 말한다.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라.' 그는 참다운 나로 향하는 성숙의 세 단계를 말한다. 첫째는 미적단계이다. 이 단계의 인간은 단지 인생을 향락하며 바라보거나 즐기기만 할 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도덕과 종교 등 어떤 틀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매우 방탕적으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쾌락만을 찾아 헤매는 '지겨움'의 삶은, 결국 공허감에 빠지게 되고 다음 단계의 삶으로 비약하게 된다.

둘째는 윤리적 단계이다. 사회적 법규나 도덕적 규범, 그리고 양심과 이성의 명령에 따라 살고자 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력감과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인간 자체의 허무감과 절망에 빠지고 다음 단계로 비약한다.

셋째로 종교적 단계이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사는 삶이다. 결국 무력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신 앞에서 서서 자기를 반성하게 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게 된다.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미적단계에서 윤리적 단계로, 윤리적 단계에서 종교적 단계로의 비약은 오직 개인의 주체적 결단과 선택에 의해 가능하다. 키에르케고르는 '있는 힘을 다해 절망하라'고 한다. 절망을 통해 신에게 나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신 앞에 나아가 홀로 서는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는 항상 신과 마주하는 삶이다. 신이 보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지 않겠는가?

니체는 아래로 내려가 삶을 창조하는 주인이 되라고 하고, 키에르케고르는 위로 올라가 신 앞에서 서서 참된 삶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난 어디로 가야 할까?

히말라야 제신들에게 기도를 한 효력이 있는지, 날이 너무 청명해 멀리까지 조망이 시원스레 뚫려 있다. 깨끗한 하늘이 파란 물감이 되어 대지로 쏟아져 내릴 듯 깊기만 하다. 음, 저 녀석이 에베레스트군! 감흥도 잠시,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추위와 배고픔에 서둘러 내려간다. 자연이 나에게 이야기한 것은 '인간'이었으며, '삶'이었다. 그것이 내가 보고 깨달은 처음이자 끝이었다. 인간과 삶! 

a 칼라파타르에서 세상으로 돌아가며 밟는 돌길 세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칼라파타르에서 세상으로 돌아가며 밟는 돌길 세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 윤인철


칼라파타르를 다녀온 것으로 트레킹 일정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이제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예정보다 빨리 일정을 마치게 되어 가이드에게 카트만두로 떠나는 국내선 출발지인 루크라로 3일 만에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여유가 생긴 날만큼 카트만두와 근교를 시티투어 할 생각이다. 하지만 나의 제안에 쿠시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을 회피한다. 대답을 해 달라고 독촉하니, 그제서야 어려운 말을 건넨다.

16일간 가이드와 포터를 계약했는데, 3일 만에 내려가면 13일 만에 일정을 마치게 되고, 남은 3일에 대한 가이드와 포터의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문제이다. 가이드에게 남게 되는 3일의 비용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계약한 그대로 지급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얼굴이 펴지며 내적 동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최대한 멀리, 최대한 빨리 가자며 재촉하기까지 한다. 기분이 좋아진 그에게 한 가지 조건을 단다. 만약, 일찍 도착하게 되면 나에게 이틀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기게 되는데, 둘 중 한명이 나와 동행하여 시티 투어 가이드를 해 달라고 하였다. 쿠시가 즉답을 피한다. 아마 그가 원하는 것은 카트만두에서의 '자유'일 것이다. 그래, 널 풀어주마!

결국 우리는 10시간의 도보 끝에 오후 5시 10분이 되어서 페리체 히말라얀 롯지에 도착하였다. Nobody! 쿠시와 나란에게 그동안 수고 했다고 전통술 락시를 대접하고, 나는 맥주 한 잔(200루피)을 한다. 피곤의 무게가 억누른다. 쓰러지자. 힘들다.  

오늘은 이 여행의 목적지를 다녀왔다.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춥지만 따뜻했다. 무겁지만 가벼웠다. 올라갔지만 더 낮게 내려갔다. 유(有)이면서 무(無)가 되었고, 무(無)이면서 유(有)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보았고, 그렇게 가슴에 담았다.
#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철학 #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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