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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손주들을 마중나온 할머니들의 생활

등록 2009.03.10 10:02수정 2009.03.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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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시간 모습 ..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시간 모습 .. ⓒ 정현순

▲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시간 모습 .. ⓒ 정현순

 

"이리와 여기 앉아요. 우리 할머니들은 앉아야 해.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

 

옆에 서있던 나한테도 앉으라고 한다. 나까지  세 명의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문 앞에 있는 노란 벤치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요즘 초등학교 앞에 가면 손주들을 마중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중 나온 학부모 10명중에  3~4명은 할머니할아버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손자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서 나도 초등학교 앞에서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주 한주만 하기로 했지만 집에 있으려니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고, 특별이 다른 볼일도 없기에 손자를 마중 나온 것이다. 이번 주에는 11시 20분에 끝난다. 그래서인가 하교시간에 맞추어서 아이들을 태우러온 노란 학원버스도 몇 대 보인다.

 

손주들을 마중나온 할머니들의 이야기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자연히 마중 나온 손주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66세가 되었다는 A할머니가 먼저  "그 집 손자는 몇 반이예요?"로 시작되었다. 그 할머니가 돌봐준 손자는 이번이 마지막인 6번째, 할머니의 자손 5남매가 낳은 아이들 6명을 모두 뒷바라지 했단다.

 

제일 처음 간호사인 첫딸이 아이를 봐달라고 해서 봐주기 시작했고 그 손자가 지금 고등학교 다닌다고 한다. 한 명이 끝나면 그 다음다음으로 이어진 것이  거의 16~17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이번에 봐주는 손주는 친손녀인데 두 아들도 육아 문제 때문에 할머니가 살고 계신 광명시로 모두 이사를 왔다고 한다.

 

하지만 같이 살지는 않고 아침  출근해서 퇴근해서 며느리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봐준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인 다음부터는 두 군데의 학원 이동을 도와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처음부터  안 봐준다고 했어야 했는데. 누구 애는 봐주고 누구 애는 안 봐줄 수가 없었지"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63세의 B할머니가 "아니 그런데 아픈 데는 없어요? 대단하시네." "아직 아픈 곳은 없어요. 그러니깐 봐주지요" 다시 B할머니가 "나는 손녀 하나 봐주고 있는데 낮에는 괜찮아도 밤에 잘 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요.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를 봐주는 엄마들은 복 받은 엄마들이예요. 아파트 입구에 붙여놓은 거 봐요. 약국 한번 데리고 갔다 오는데 5000원이라고 하던가? 급하면 그런 사람이라도 불러야지 어쩌겠어요."

 

A할머니 "아니 그런 게 다 있어요?" B할머니 "몇 단지 사는데 아직도 그걸 못 봤어요? 아파트마다 다 붙었던데" 한다. B할머니는 영등포에 사셨는데, 그곳에서 광명시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손녀를 봐줄 수가 없어  아예 딸집으로 거처를 옮겨왔다고 한다. B할머니의 손녀는 3군데의 학원을 다니는데 모두 할머니가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 더군다나 여자아이라 신경이 더 쓰여요"한다.

 

지난 주에 만난 할머니 두 분

 

두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끝나자 끝이 났고 급하게 손주들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선다. 학교 앞에 가면 할머니들은 할머니들끼리, 젊은 엄마는 젊은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쉽게 볼 수 있다. 지난주에도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었다.

 

한 분은 82세인데 풍기가 있는지 오른쪽 팔과 다리가 무척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손주를 데리러 나오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할머니는 몸도 불편하신데 매일 오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운동 삼아 살살 나와요. 집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난 천천히 걸어오면 10분이면 도착해요" "할머니가 학원에도 데려다 주세요?" "당연하지요. 요즘 세상이 하도 무서워서.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 해?"하신다. 그 할머니는 1학년 마칠 때까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올 생각이라고 한다. 몸은 불편하지만 아직까지 학원시간에 한 번도 늦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급하게 도착을 한다. "1학년 아직 안 끝났지요?" "네 아직 안 끝났어요." "내가 청소를 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청소기 내던져 놓고 오느라고 머리도 못 빗고 나왔네" 하신다. 그 할머니는 73세이며   7남매를 두었다고 한다. 7남매가  낳은 손자들을 모두 돌봐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우리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우. 인기가 아주 많아.  이 집에서 부르고 저 집에서 부르고. 내일 저녁 때에는 저쪽에 있는 oo아파트에 사는 둘째 아들 집에도 가야 돼요"하신다. 그 할머니도 집은 따로 있지만 손주들을 돌 봐주느라고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신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을 안 봐주면  모두 직장을 그만 두어야하니깐. 어떻게 해. 힘들어도 봐줘야지" 하면서.

 

멋진 할머니들 파이팅!

 

며칠 동안 학교 앞에서 여러 명의 할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할머니들의 걱정은 한결 같았다.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손주들을 데리러 나온신다"고. 할머니들은 엄마들보다 학교에 대한 정보도 많아 학원을 정할 때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또 학교에서 손주들을 데리고 오고 가고, 손주들의 공부도 봐주고, 학원도 데려다 주니 동심으로 돌아갈 때가 많아 나이보다 젊게 살고 있다고 한다.

 

어느새 손주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가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활기찬 모습이 느껴진다.  "손주들아 앞으로도 학교 등하교, 학원, 공부, 할머니들이 책임진다. 할머니들만 믿어! 멋진 할머니들 파이팅!"

2009.03.10 10:02ⓒ 2009 OhmyNews
#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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