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배밭골의 밤, 별이야기로 깊어지다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16] 제5장 '우주와 노근리'

등록 2009.03.10 16:57수정 2009.03.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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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우주와 노근리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 이두오는 어서 하늘에 별이 더 들어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 이야기를 들으러 조수현이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배 향기가 코에 스미고 있었다. 그는 들뜬 마음으로 밤하늘에 하나 둘씩 늘어나는 별들을 세어보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두오는 박미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에게 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가게에서 이두오를 처음 본 박미애는 틈나는 대로 움막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두오도 박미애를 귀엽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박미애가 사다 준 새 노트를 본 김성식이,

"미애는 착한 아이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는 바닥빨갱이야. 자네가 숨어 지낸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자기 딸과 가까운 것을 알게 되면 아마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일세. 나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자거든. 인민군 여자 장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죽었을는지도 몰라."

라고 조심스러운 충고를 하지 않았던들, 박미애에게도 필경 별 이야기를 한두 번쯤은 들려주었을 터였다. 박미애는 순수하고 선량한 소녀였다. 마치 누이동생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는, 그리고 김성식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는 일이 되는데, 더 이상 그녀를 가까이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조수현에게 별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 이두오는 한편으로는 가슴이 설레면서도 박미애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배 향기가 무거워지고 이곳저곳에서 별들이 튕클거리기 시작하자 이두오는 박미애를 잊어버렸다. 은빛 모시저고리를 입고 나타날 조수현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시는 별빛 아래서 얼음 보석처럼 빛났다. 밤하늘이 총총해지면 그녀의 저고리에도 마치 은하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조수현이 움막 앞에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움막 옆 절구통에 걸치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별에 대한 지식은 아주 초보 단계였다. 그녀는 서양 목동이나 했음 직한 별자리 이야기를 이두오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두오가 진지하게 우주론을 펼치자 그녀는 금세 알아들으며 날카로운 흥미를 보였다. 이두오는 조수현의 두뇌가 대단히 명석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큰 별은 수명을 다하는 순간 대폭발을 하며 태양보다 몇 억 배의 빛을 뿜으면서 타버립니다. 이렇게 폭발하는 순간, 너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별이 갑자기 찬란한 빛을 터트리면, 옛사람들은 새로운 별이 나타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른바 초신성(超新星)이라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새로 생긴 별이라고 해서 손님별(客星)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불쑥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연상했던 모양입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손님별의 기록이 간간이 나타납니다."

"손님별이라고요?"
"새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별 이름이 참 조선적이군요."
"맞습니다. 인간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구요."

이두오는 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옛사람들은 별은 영원하다고 여겼습니다. 우주도 영원하다고 보았지요. 하지만 우주나 별은 수명이 있다는 것이 아인슈타인 이후의 정설입니다. 대체로 별의 수명은 수십억 년 이상으로 봅니다. 별은 시뻘겋게 불이 붙어 있는 조개탄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다만 조개탄은 폭발하지 않고 재로 변하지만 별은 폭발하면서 변화합니다. 시초의 별은 수소가스의 덩어리입니다. 이 거대한 기체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하면서 응축됩니다. 그러면 별의 중심부는 한없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지요. 온도가 1,000만 도 이상에 이르면 가공할 만한 어떤 융합반응이 일어나면서 수소는 헬륨으로 전환됩니다."

"태양도 별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무수한 별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지구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크고 뜨겁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럼 태양이 멀리 있다면 별처럼 된다?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서울 크기 만한 별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태양은 일종의 별임이 틀림없습니다. 수소를 반쯤 소모한 상태로서 헬륨을 가지고 융합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융합반응으로 미래의 태양은 잠시 부풀어질 것입니다. 사실 잠시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수억 년의 기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태양이 화성을 잡아먹게 되지요. 그러다가 헬륨마저 소진되면 지구만한 중심부가 남게 될 겁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데, 백색왜성이 되었다는 것은 별의 찬란했던 일생이 마감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윽고 별의 수명은 종료됩니다. 별은 사람처럼 하얀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지요.

하지만 모든 별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별의 크기와 수명도 제각각입니다. 가장 작은 별은 크기가 32km 정도로서 직경이 서울과 비슷합니다. 초신성의 잔해가 만들어내는 중성자별이지요. 이 초고밀도의 작은 별들은 1933년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에 의해 처음 예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학자들은 그의 논리가 지나치게 공상적이라고 해서 믿지 않았습니다. 중성자별은 빠르게 자전하면서 불규칙적으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흔히 '회전하는 등대'에 비유됩니다."

"서울 크기 만한 별도 있다구요?"
"네.수현 씨 저기 저 별을 한 번 보세요."

이두오는 서쪽 하늘의 별 하나를 가리켰다. 조수현이 이두오에게 몸을 붙이며 그의 손가락을 따라 눈길을 올렸다. 이두오는 조수현에게서 향긋한 비누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뭐처럼 보입니까?"
"유난히 반짝거리네요?"
"맞습니다. 저 별은 '회전하는 등대'라고도 하고 다른 표현으로는, 맥박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맥동성이라고도 한답니다."

조수현은 정말 별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큰 별, 즉 태양보다 약 40배 이상 크기의 별이 수명을 다하여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 태양보다 3배 이상 무거운 중성자별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이 중성자별의 중력은 강력해서 계속해서 수축되다가 결국에는 블랙홀이라는 신비한 천체로 변신합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블랙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배 향기가 밤이슬에 묻어 땅으로 내리고 있었다. 이두오는 별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름다운 여자가 곁에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나게 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를 궁리했었다. 자칫하면 어렵게 느껴 그녀가 흥미를 잃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제 그럴 염려는 없어 보였다.

조수현은 새로이 알게 되는 별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별들의 크기와 수명의 단위는 정말 상상 밖으로 어마어마했다. 그녀는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두오의 말을 들으면 지구나 인간은 우주에 비하면 너무도 미미한 존재밖에는 되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두오는 참으로 유별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전쟁 따위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했다. 민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위대한 지도자나 민족의 단합보다는 각자 이두오처럼 이념이나 국가나 심지어는 민족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 일에 파묻혀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조수현은 핸드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두오 씨, 지난 번 주신 사진으로 이것을 만들었습니다."

조수현이 이두오에게 건넨 것은 임시통행증이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무슨 일로 제 사진을 달라고 하나 궁금했었습니다."
"혹시 한 장 더 있으신지요?"
"또 만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 지갑에 두고 싶어서요. 두오 씨가 허락한다면...."
"내가 가질 수현 씨의 사진은 없나요?"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웃었다. 하늘에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그들의 수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양 #초신성 #맥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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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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