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이라면 한나라당이 신영철 탄핵해야"

[토론회] 법학자·변호사 '촛불재판 e-메일 지침' 이념공세 성토

등록 2009.03.12 15:02수정 2009.03.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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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촛불재판 개입, 법원의 위기인가' 정책토론회에서 이국운 한동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국운 교수, 우윤근 민주당 의원, 임지봉 서강대 교수, 정정훈 변호사. ⓒ 남소연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촛불재판 개입, 법원의 위기인가' 정책토론회에서 이국운 한동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국운 교수, 우윤근 민주당 의원, 임지봉 서강대 교수, 정정훈 변호사. ⓒ 남소연

"도대체 지금 이 나라에서 누가 보수인가.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법관 독립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헌법 원리를 수호하지 않고, 도대체 뭘 수호하려는 건지 모르겠다."(이국운 한동대 교수)

 

'촛불재판 e-메일 지침' 파문과 관련, 한나라당이 연일 이념공세를 퍼붓고 있는 데 대해 법학자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국운(한동대)·임지봉(서강대) 교수와 김갑배(경실련)·정정훈(민변) 변호사 등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우윤근 의원 주최로 열린 '촛불재판 개입 논란' 토론회에 참석해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좌파세력의 반발'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 교수는 우선 "보수임을 자임해 온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좌파 판사와 언론이 합세해 사법부를 흔든다'고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헌법학자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교수는 "사법권 독립, 그중에서도 법관의 독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헌법 원리들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원리"라며 "신영철 대법관과 관련된 현 사태는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정치세력들로부터 엄중히 성토되고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는, 상식적이라면 한나라당이나 자유선진당과 같은 보수정당에서 나와야 한다"면서 "음모론이나 퍼뜨리면서 어떻게 보수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이념공세 불구하고 국민 67%가 재판개입은 잘못이라고 생각" 

 

김갑배 변호사도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은 더 조사할 여지도 없는 사실"이라며 "대법원이 조사를 끝내놓고 발표를 미루는 것은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임지봉 교수는 "촛불재판 개입은 민주국가의 발전을 위해, 국민들을 위해 여야 구분 없이 비판해야 할 일"이라며 "그런 점에서 여당의 행태는 굉장히 실망스럽고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법관의 독립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원리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교수는 "진상조사를 대법원에 맡겨둘 수 없다"면서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헌법상 법관의 탄핵사유에 딱 들어맞는다"면서 "탄핵 전에 용퇴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밝혔다.

 

정정훈 변호사는 최근 조사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당의 '이념공세'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1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신 대법관의 e-메일에 대해 '담당 법관의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정당한 사법 행정권 행사로 별 문제없다'는 의견은 20.7%에 그쳤다.

 

정 변호사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이번 사건을 이념적 프레임에 구겨넣었고, 대법원이 재판 개입이냐, 사법행정이냐는 문제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국민의 67%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이는 사법부에 대한 치명적 불신이 가시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사법 불신은 임계점을 넘었고, 법원의 뼈를 드러내는 자기 변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보수단체 "촛불세력보다 비겁한 진보좌파 판사들" 비난도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색깔론으로 '신영철 구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 "소위 진보진영의 신 대법관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하고 있다"며 "지난 10년 진보정권 하에서 사법부 내에 진보좌파 성향의 분들이 없었는지에 대해 사법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몰아갔다.

 

박희태 대표도 "일선 판사들의 말만으로 이처럼 중대한 문제의 판단자료로 삼을 수 없다"며 "그것(e-메일)만 갖고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는 부족하다"고 말해 신 대법관 사퇴 여론을 외면했다.

 

국회 밖 보수단체도 여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11일 논평을  통해 "진보좌파의 교묘한 공격에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소장파 판사들을 비난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또 "촛불세력보다 더 비겁한 진보좌파 판사들은 뒤에 숨어서 수근대지 말고 나오라"면서 "진보좌파 판사들의 누워서 침뱉기가 법원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 인사제도 시급한 개선 필요... "고법 부장판사 없애야"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법조인들은 '촛불재판 개입'과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사평정제도 개선 등 법원 조직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법원이 "60년 묵은 불량 하이브리드 조직"이라며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 판사회의 실질화, 법관 인사 관행 쇄신, 판사회의가 참여하는 사건배당위원회 구성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임 교수는 인사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 교수는 "고법 부장판사 제도는 만악의 근원"이라며 "모든 판사가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친 뒤 순환보직으로 고법 부장판사를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독립적, 민주적 법관회의를 구성하고, 사법의 지방분권화를 정착시켜 지역별로 판사를 따로 뽑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9.03.12 15:02 ⓒ 2009 OhmyNews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이메일 지침 #재판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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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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