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리 지키는 네 마리 사자상을 훔쳐갔을까

[우리문화유산 되짚어보기 42] 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등록 2009.03.12 20:34수정 2009.03.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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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보 101호는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보 101호는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 이종찬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은 모두 몇 개일까.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유산과 시도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은 모두 더해 대체 몇 점이나 되는 것일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 세월 때 묻은 문화유산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수십만 점 쯤 되는 줄 착각하기 쉽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월 28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정한 국보는 309개, 보물은 1584개이다. 여기에 사적 및 명승(478),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 무형문화재, 중요 민속자료를 더하면 국가지정문화재는 모두 3189개(시도 지정문화재 6772개와 등록문화재 422개를 더하면 1만383개)이다.


국보 1호는 누구나 잘 알듯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에 있는 '숭례문'이요, 국보 11호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에 있는 '미륵사지석탑'이다. 그리고 국보 제111호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소수서원에 있는 고려 중기 문신 회헌 안향(1243∼1306) 선생 초상화(회헌 영정, 가로 29㎝ 세로 37㎝ 반신상)이다.

그렇다면 국보 101호는 어디에 있는 무엇일까. 국보 101호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국립 고궁박물관 뜰에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 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깊은 피멍이 들었듯이 이 승탑 또한 천년이란 긴 세월을 지켜오면서 수난을 꽤 많이 겪었다.  

이 승탑(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1호 지정)은 처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0번지 법천사 터에 탑비와 함께 서 있었다. 그 뒤 일제 강점기 때인 1912년 일본인이 몰래 오사카로 빼돌린 것을 3년 뒤인 1915년에 돌려받으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 그뿐이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도 이 승탑은 포탄에 맞아 곳곳이 부서져 1957년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 나라가 가진 힘이 약하거나 서로 다투게 되면 그 나라와 백성만 고통스럽고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 전통문화까지도 깡그리 도둑질 당하거나 불에 타는 등 엄청난 아픔을 겪게 되어 있다. 나그네가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꼼꼼히 되짚어 보는 것도 이러한 치욕을 다시는 당하지 말자는 뜻에서다.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이 승탑(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1호 지정)은 처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0번지 법천사 터에 탑비와 함께 서 있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이 승탑(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1호 지정)은 처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0번지 법천사 터에 탑비와 함께 서 있었다 ⓒ 이종찬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일제 강점기 때인 1912년 일본인이 몰래 오사카로 빼돌린 것을 3년 뒤인 1915년에 돌려받으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일제 강점기 때인 1912년 일본인이 몰래 오사카로 빼돌린 것을 3년 뒤인 1915년에 돌려받으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 ⓒ 이종찬


경복궁 지키는 부처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지난 2월 15일(일) 오후 3시쯤 찾아간 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지난 1915년부터 국립 고궁박물관 오른 편 뜰 저만치 저 홀로 부처님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다. 하지만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된 까닭인지 국보로 지정된 이 오래 묵은 승탑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누가 그랬던가. 보석을 손에 쥐고도 그게 보석이 아니라 돌덩이인 줄 알고 버리고 간다고. 그랬다. 경복궁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도 저만치 서서 국보를 바라보고도 눈길과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일쑤다. 그래. 어쩌면 이 승탑이 경복궁이 지닌 웅장하고도 화려한 모습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라. 오백 살은 쉬이 넘긴 듯한 헐벗은 은행나무를 밑그림으로 우뚝 서 있는 이 승탑에 얼마나 세심한 조각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가를. 그날, 나그네는 이 승탑을 마치 탑돌이 하듯 몇 바퀴나 돌며 옛 조상들이 받침돌 곳곳에 새겨놓은 꽃, 상여, 신선 등에 한껏 취했다. 

고려시대 뛰어난 승려였던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부도인 이 승탑은 탑 몸체에도 페르시아 풍 창문을 내고 드림새(막새) 장식이 되어 있으며, 지붕과 꼭대기에도 불보살상과 봉황, 연꽃 등 화려한 무늬가 너무나 곱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바닥돌 네 귀퉁이마다 한 마리씩 놓여 있었다는 사자상은 도둑을 맞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던 자리에는 누군가 억지로 떼어낸 듯 사자꼬리 같은 돌조각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승탑 안에 모신 사리를 지키는 사자상 네 마리를 훔쳐갔을까. 지금 이 승탑에 없는 사자상 네 마리는 어쩌면 일본 어느 부잣집 정원에 놓여져 있지나 않을까.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지난 1915년부터 국립 고궁박물관 오른 편 뜰 저만치 저 홀로 부처님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지난 1915년부터 국립 고궁박물관 오른 편 뜰 저만치 저 홀로 부처님 그림자처럼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된 까닭인지 국보로 지정된 이 오래 묵은 승탑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된 까닭인지 국보로 지정된 이 오래 묵은 승탑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 이종찬


고려시대 만들어진 부도 중 가장 우수한 작품     

탑이란 부처님 사리를 넣어 보관하는 곳이다. 부도는 고승들이 남긴 사리와 옷가지, 쓰던 물품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승탑은 해린 스님 사리를 넣어둔 곳이므로 탑이라 부르지 않고 부도라 부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그네가 이 탑을 굳이 부도라 부르지 않고 승탑이라 부르는 것은 이 부도가 웬만한 탑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웅장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통일신라 이후의 부도가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며, "지광국사 해린 스님 장례 때 사리를 운반하던 화려한 외국풍 가마를 본떠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들어 과거 전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고안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승탑 특징은 바닥돌 네 귀퉁이마다 용 발톱을 닮은 조각을 새겨 마치 땅과 그대로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7단이나 되는 기단 맨 윗돌은 마치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 승탑 몸돌에 새겨져 있는 문짝은 이곳이 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승탑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마악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펴고 있는 새처럼 치켜 올려져 있으며, 지붕돌 아랫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고 씌어져 있다.

아름답고도 웅장하다. 나그네는 지금까지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부도를 보아왔다. 하지만 이처럼 안정감을 갖춘 멋드러진 부도, 아니 이처럼 화려한 승탑은 처음 보았다. 안타깝다. 경복궁을 오가는 사람들은 왜 화강암 속에 박혀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이 승탑에 얼마나 세심한 조각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가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이 승탑에 얼마나 세심한 조각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가 ⓒ 이종찬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고려시대 뛰어난 승려였던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부도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고려시대 뛰어난 승려였던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부도 ⓒ 이종찬


해린 스님, 1058년 봉은사에서 국사에 올라

서울시 문화재 자료에 따르면 법천사를 처음 세운 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 때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빛을 본 법상종 계열 사찰이다. 지광국사는 법명이 해린(解麟,)으로 1004년 승과에 급제한 뒤 대덕(大德)이 되고, 현종 2년 서기 1011년에 대사(大師), 1021년에 중대사(重大師)가 되었다.

해린 스님은 그 뒤 덕종 때 삼중대사(三重大師)와 수좌(首座)를 맡았으며, 정종(靖宗) 때에는 국통(國統)이 된다. 이어 문종 8년, 서기 1054년에는 개성 현화사(玄化寺) 주지를 맡았으며, 1056년 왕사(王師)를 거쳐 1058년 봉은사(奉恩寺)에서 국사(國師)에 오른다. 그 뒤 1067년에 원주 법천사(法泉寺)에서 입적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0번지에 있는 법천사 터에 가면 지금도 탑비(국보 제59호)가 남아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지광국사가 입적한지 18년 뒤에 비석이 세워졌다. 하지만 승탑(부도)은 입적한 뒤 곧바로 세우게 되어 있는 게 불가 관습이므로 이 승탑은 해린 스님이 입적한 1067년에 세워졌을 것으로 어림짐작된다.

안내자료를 덮고 합장을 한 채 다시 승탑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 돈다. 나그네가 승탑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서 다시 한번 해린 스님을 만나보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나그네가 승탑을 세 번 도는 까닭은 이 승탑을 가운데 두고 나그네도 도를 이루어 삼세(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서다.  

나그네가 승탑을 천천히 돌고 있을 때 승탑 곳곳에서 "하나의 시작이 있으나 시작이 없고, 하나의 마침이 있으나 그 마침 또한 없다"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렇다. 삶은 시작이 있는 것 같지만 시작이 없고 끝이 있는 것 같지만 끝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야 하는 것도 이 끝없는 삶 때문 아니겠는가.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고려시대 만들어진 부도 중 가장 우수한 작품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고려시대 만들어진 부도 중 가장 우수한 작품 ⓒ 이종찬


a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부도는 고승들이 남긴 사리와 옷가지, 쓰던 물품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부도는 고승들이 남긴 사리와 옷가지, 쓰던 물품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경복궁-국립 고궁박물관 오른 편-경복궁 뜰-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서울-경복궁-국립 고궁박물관 오른 편-경복궁 뜰-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경복궁 #국보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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