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타고 독일미술 보러 갈까

[미술관탐방] 독일화랑 디 갤러리...'독일조형미술전' 4월 3일까지

등록 2009.03.21 13:17수정 2009.03.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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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독일화랑 디 갤러리 입구. 게르하르트 리히터(G. Richter 1932~)작품 '적청황' 26×53cm 1973(아래). 70년대 색채추상화 시기의 작품. 그는 현존하는 최고작가로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을 하나로 융합한다 ⓒ 김형순


독일화랑이 드디어 한국미술시장을 노크했다. '독일조형미술(German Figurative Art)'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2월 강남 청담동에 디 갤러리(DIE GALERIE SEOUL, 관장 성지은)를 연 것. 개관전으로 4월 3일까지 16명의 독일 신구상주의 작가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이 갤러리는 프랑크푸르트에 본사가 있고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에는 분점이 있다. 아시아에선 한국이 처음이다. 우리로선 유럽문화의 정수를 접할 기회이고 독일로서는 한국미술시장의 교두보를 연 셈이다. 갤리리가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친근감이 더 간다.


1950년 이후 뉴욕이 세계미술시장의 중심이었지만 21세기에 와서는 런던과 함께 베를린이 부각된다. 이런 배경은 1930년대 출생한 리히터(G. Richter), 키퍼(A. Kiefer), 폴케(S. Polke), 바젤리츠(G. Baselitz), 펭크(A.R. Penck)와 뤼퍼츠(M. Lupertz), 임멘도르프(J. Immendorff) 등 독일작가들이 세계미술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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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크(A.R. Penck 1939~) I '잊어버린 과거(Forgotten Past)' 캔버스에 유채 100×120cm 2004. 펭크는 역사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원시적 해학과 상징을 통해 유희의 문제를 제기한다 ⓒ 김형순


독일인의 불안 정서를 예술로 승화

20년 전 독일을 처음 가보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정서에 막연한 불안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거리나 공원이 깨끗하고 잘 정돈된 것도 이와 관련 있어 보였다.

그러나 독일은 내면에 흐르는 이런 감정의 불순물을 미술로 승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신)표현주의다. 인사동에 만난 독일인 화상에게 "독일인은 생각보다 그림이 격정적인 것 같다"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사람들이 독일인의 내면을 읽지 못한 탓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독일은 나치의 비극에도 칸트와 괴테와 베토벤이 나온 철학과 예술의 나라이다. 또한 여성적 가치에 일찍 눈을 돌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괴테는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결국 표현주의미술이 독일을 구하고 독일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한 셈이다.


80년대에 부활한 신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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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Salome 1954~) I '무제' 캔버스에 유채 188×157cm 1983. 본명은 볼프강 루트비히 실라르츠(Wolfgang Ludwig Cihlarz) ⓒ 김형순


1920년대 마르셀 뒤샹이 미술의 죽음을 선언한 이래 미술에서 재현의 시도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80년대 미국에서 줄리안 슈나벨(J. Schnabel) 같은 구상작가가 다시 등장하고 독일에서는 표현주의가 새로 부활한다. 인간의 몸을 비롯하여 알아 볼 수 있는 대상을 그리고 재료나 소재의 발굴에서도 다양하다. '무제'는 바로 그런 시기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살로메(Salome), 이름 때문에 여자로 오인받기 쉽다. 그는 종종 작곡도 하고 여장퍼포먼스를 즐기는 괴짜 비주류다. 그는 작가로서 동성애 등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것을 깨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간 그는 신표현주의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강력한 색채와 폭발하는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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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미덴도르프(Helmut Middendorf 1953~) I '광녀들(Witches)'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18×180cm 1983 ⓒ 김형순


신표현주의와 쌍둥이인 '신야수파(Die Neuen Wilden)'에 속하는 미덴도르프(Middendorf)는 기존의 누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광풍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춤추는 광녀들이 등장한다. 작가 자신인지 모른다. 그리고 강렬하고 과격한 색채와 박진감 넘치는 붓질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기존의 정형적 질서와 규범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자유로운 상징체계를 구축한다. 관객도 한 번 그의 그림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런 심정을 밖으로 토해낼 출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격정과 주관적 개성을 거침없이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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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히츨러(Franz Hitzler 1946~) I '무제2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75×55cm 1989 ⓒ 김형순



이 작품은 프란츠 히츨러(Franz Hitzler)의 것으로 26살에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고 화가가 된다. 그래서 아우크스부르크대학 등에서 회화, 조각, 세라믹을 공부한다. 1978년에는 첫 개인전을 열고 이에 만족 못해 다음 해 르네상스화가 티치아노(1487~1576)를 공부하기 위해 또 다시 베니스로 유학을 떠난다.

히츨러는 외적 대상이 아니라 내적 격정과 주관적 개성을 거침없는 표출시킨다. 두터운 물성의 특징을 살리고 삼원색과 흑백을 뒤섞어 과장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준다. 혼란과 과장 그리고 그림을 거꾸로 그린 바젤리츠처럼 전복과 혼돈의 미학도 더한다.

통일이후 동서독 갈등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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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지테(Willi Sitte 1921~) I '시달림(Affliction)' 합판에 유채 180×125cm 1991 ⓒ 김형순


독일의 구상주의는 90년대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과시한다. 통독 후 동독의 사실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인지 모른다. 그 중 88세인 동독출신 작가 빌리 지테(Willi Sitte)가 있다.

'시달림'이라는 작품은 '여자의 몸'과 관련 있는 주제다. 여자들은 '자궁은 내 것이다'라고 항변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서 독점된 지 오래다. 이 작가는 이처럼 긴박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절규하며 몸서리치고 사람들을 많이 그려왔다.

통일 직후의 그림이라서 2등 국민처럼 되어버린 동독을 여자로 비유하며 동서독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설정을 한 것인가. 하여간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성을 띤 수준 높은 작품이다.

아프리카미술의 원시성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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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 바흐(Elvira Bach 1951~) I '신발(Sho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60×130cm 1992 ⓒ 김형순


'신발'은 여성작가 엘비라 바흐(Elvira Bach)의 작품이다. 그는 1951년 노이엔하인에서 태어났다. 1978년부터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고 80년대 와서는 에로틱한 경향도 보인다. 1986년부터 6년간 세네갈에서 보내고 귀국한다. 위 작품은 바로 그해 것으로 아프리카의 원시성과 대지성이 강하게 풍긴다. 

얼굴이 황토색인건 야수파적 기법이다. 노란 신발이 공중으로 날아가 여자의 가슴을 찌르고 피를 흘리게 하는 장면은 현대여성의 자화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모호하고 우스꽝스러운 점이 또한 표현주의의 특징이다.

빈껍데기만 남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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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크리머(Eckhard Kremers 1949~) I '대부(God Father)' 캔버스에 유채 2006 ⓒ 김형순

에크하르트 크리머(Eckhard Kremers)는 올 60세가 되는 중견작가로 리히터를 이어갈 대가의 징조가 보인다.

'대부'라는 제목자체가 역설적으로 들린다. 사람이 생존의 위협과 세속의 번뇌 속에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삶의 알맹이를 놓치고 빈껍데기만 잡기 쉬운데 그런 점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이 작가는 일본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언어를 추월하여 직관적 지혜를 중시하는 '선불교'의 무(無)나 공(空)사상 등에 영향을 입은 것 같다.

얼굴도 없이 멍하니 마네킹처럼 서 있는 모습이 보기에 민망하지만 사실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인간의 본질이 흐려진 요즘 작가는 우리를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를 직시하게 만든다. 신표현주의는 독일미술답게 철학적인 면이 매우 짙다.

부조리연극처럼 인간소외를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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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커 스텔츠만(Volker Stelzmann 1940~) I '수태고지' 합판에 혼합매체 170×80cm 2006 ⓒ 김형순

끝으로 독창적 화풍으로 주목을 받는 구동독출신 작가 폴커 스텔츠만(Volker Stelzmann)을 보자.

그는 종교나 사상과 관계없이 누구나 부딪치는 도시의 보편적 일상을 다룬다. 슬로우 비디오 같은 이런 장면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부조리연극처럼 몸은 가까이 있어도 얼굴은 서로 외면하고 있다. 그런 냉혹함은 멋진 옷을 입고 있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현대문명은 이렇게 도시인들을 낯선 이방인처럼 만들며 사람들에게 날마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수태고지'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21세기를 맞은 통일독일의 또 다른 일면을 통렬하게 꼬집어 풍자하고 있다.

이제 "독일미술과 키스하면 어떤 맛이 날까?"를 되묻어보자. 독일인들은 좋은 것은 언젠가 평가를 받는다고 믿고 있는데 독일미술은 처음에는 별로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맛이 나는 그림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독일화랑 디 갤러리(DIE GALERIE)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6-8. 이메일: info@die-galerie.co.kr 팩스: 02-3447-0050 문의: 02-3447-0049 www.die-galerie.co.kr(한국) www.die-galerie.com(독일) 위치는 홈페이지 참고


덧붙이는 글 독일화랑 디 갤러리(DIE GALERIE)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6-8. 이메일: info@die-galerie.co.kr 팩스: 02-3447-0050 문의: 02-3447-0049 www.die-galerie.co.kr(한국) www.die-galerie.com(독일) 위치는 홈페이지 참고
#디 갤러리 #리히터 #폴커 스텔츠만 #에크하르트 크리머 #바젤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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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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