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엔 스파게티, 한국엔 떡볶이"

[떡볶이 연구소] '만만하고 식상한' 떡볶이를 연구하는 사람들

등록 2009.03.22 13:59수정 2009.03.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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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하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가? 대부분 번화가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하얗게 김을 내고 있는, 빨갛고 매운 떡볶이를 연상할 것이다. 갑자기 떡볶이 생각으로 배가 고파졌다면? 즉시 길거리로 나가보자. 여러분은 어디서든 쉽게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만하고 식상한' 떡볶이의 가능성을 예견한 사람들이 있다. 사단법인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지난 11일 쌀 소비 촉진과 떡볶이의 세계화를 목표로 한 '떡볶이 연구소'를 개원했다.


'만만하고 식상한' 떡볶이를 연구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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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떡볶이 연구소' ⓒ 이지수


연구소가 있다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의 저녁.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떡볶이 연구소' 간판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2층에 있는 연구실 냉장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떡들이 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릇에는 매운 맛의 강도에 따라 나뉜 고춧가루가 들어있었다. 그제야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떡볶이 연구소'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떡볶이 연구소장 이상효(48)씨는 '간단함'과 '다양성'을 떡볶이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떡과 소스, 몇 가지 야채를 넣으면 훌륭한 떡볶이가 된다. 그리고 소스만 수백, 수천가지가 나올 수 있다"고 답했다. 덧붙여 "떡볶이는 다양화된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능가할 수도 있는 음식"이라며 떡볶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떡볶이를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는 인식 전환. 이 연구소장은 일반 떡볶이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떡볶이를 보면 질겁을 한다"며 "매워 보이는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로 표준화. 그는 "한식 재료가 너무 다양한 데다가 만드는 방법은 '참기름 몇 방울, 설탕 몇 스푼' 이런 식이다. 세계화하는데 너무 까다롭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세계화 하려면 떡볶이 제조의 표준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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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호(25) 연구원 옆에 놓인 그릇에는 고추가루가 매운 맛의 강도에 따라 담겨 있다. 연구소에서는 떡볶이 재료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실시한다. ⓒ 이지수


떡볶이 연구소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 연구소장은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정체성을 고수하고 각 국가에 접목시켜 현지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소스, 떡 등의 재료를 다양화시키고 사람들 입맛에 맞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떡볶이 연구소는 자료 표준화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이여람(23) 연구원은 "새롭고 독창적인 소스 개발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떡볶이 제조법의 표준화다. 우리는 재료나 제조법의 표준화를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떡볶이가 아무리 맛있어도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공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연구소장은 "연구원들만 만날 먹어봐서는 창조가 안 된다"며 "동호회 사람들, 주부들과 맛 체험단을 구성할 것이다. 우리가 전문 자문단에게 아이디어를 받아서 만들어내면 최소 두 달에 한 번씩은 체험단에게 의견을 듣고, 이런 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국에 떡볶이 숍도 낼 계획이다. 그는 "여기서 개발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로부터 나오는 각국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행착오지만 그렇게 되면 쉽게 파고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맛만큼 중요한 것은 홍보. 떡볶이연구소는 '떡볶이'를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TOPOKKI'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고, 떡볶이 재료를 형상화한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곧 이를 가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불고기 뛰어넘는 한식 문화 만들 것"

떡볶이 연구소가 개원한 지 이제 일주일 조금 지났건만, 신문 방송 등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러나 웬 걸, 이 연구소장과 황 연구원은 달뜬 목소리로 높은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개원한 지 며칠 안됐는데 '떡볶이 연구소에서 무엇을 개발했다' 이건 아니다. 5~6개월 부터는 서서히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때 그때 뉴스가 뜰 거다. '떡볶이 연구소, 기가 막히다. 세상에 이런 떡볶이가 있나' 할 정도로." - 이상효 연구소장

"다른 나라엔 기반조차 잡혀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개발할 다양한 소스를 사용해서 떡볶이를 그 나라에 맞게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 사실 세계화된 것이 많지 않다. 떡볶이가 불고기를 뛰어넘는 세계화된 한식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황재호 연구원

오는 3월 28일부터 29일까지는 '2009 떡볶이 페스티벌'을 연다. 이때 떡볶이 관련 산업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이 기간에는 '세계 떡볶이 요리 경연대회', '맛 지도 만들기', '떡 썰기 체험' 등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떡볶이 연구소는 이 페스티벌이 떡볶이의 세계화를 한 걸음 앞당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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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연구소'의 떡 담당 황재호(25) 연구원과 소스 담당 이여람(23) 연구원. ⓒ 이지수


보통 연구원이라고 하면 석박사를 거친 사람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떡볶이 연구소에 있는 3명의 연구원들은 모두 '젊다'. 떡 전문가 황재호(25) 연구원과 소스 전문가 이여람(23) 연구원은 둘 다 이제 막 대학을 갓 졸업한 인재들이다.

바로 여기서 떡볶이 연구소의 독특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연구소장은 "떡볶이는 젊은 층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새롭고 다양한 떡과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참신한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재호(25) 연구원은 "저희는 보통 전문 연구 인력들과는 성격이 달라요.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조리 등 전반적인 걸 다 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품 연구소, 제약연구소에서 하는 연구나 연구원과는 다르죠"라고 해명(?)했다.

황 연구원의 말처럼 떡볶이의 문제점과 제조 방법을 조사하기 위해 맛집으로 유명한 떡볶이집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전국 투어라 할 정도로 많은 곳을 들렀다. 일반 떡볶이부터 뚝배기 떡볶이, 자장 떡볶이 등 이색 떡볶이를 시식하고 각 떡볶이집의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어려움도 물론 있었다. 떡볶이 연구소가 출범되기 전에 맛집을 찾아가면, 식당 주인들은 떡볶이 경쟁 업체라고 여기고 노하우 전수를 거절하기도 했다. 근데, 아무리 연구원이라지만 계속 떡볶이만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황재호 연구원은 "모두 떡볶이를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마니아"라고 했다. 인터뷰를 함께 하지 못한 길성희(24) 연구원의 경우, 삼시세끼 떡볶이만 먹을 정도로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떡볶이 연구소에서는 연구원 수를 2011년까지 16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3월 말에는 일본 조리학교 출신의 조리 전문가 연구원을 스카우트해 개발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자료를 꾸준히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기도 하다.

#떡볶이 연구소 #떡볶이 #한국쌀가공식품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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