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7)

'절망의 순간', '절망의 나날' 다듬기

등록 2009.03.23 21:06수정 2009.03.2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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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절망의 순간

 

.. 미국의 건설도상에도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 <문명사회와 미국>(R.벌링게임, 전파과학사, 1975) 23쪽

 

"미국의 건설도상(建設道上)에도"는 "미국을 세우는 가운데"나 "미국을 만들어 가는 동안"이나 "미국이 세워지는 동안"쯤으로 풀 수 있을까요. 말이 참 알쏭달쏭이군요. '순간(瞬間)'은 '때'나 '일'로 고쳐 줍니다.

 

 ┌ 절망(絶望) :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

 │   - 절망에 빠지다 / 절망에 싸이다 / 절망에 잠기다 / 절망을 극복하다 /

 │     절망을 느끼다 /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다 /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

 │

 ├ 수많은 절망의 순간들이

 │→ 수많은 절망스런 순간들이

 │→ 수없이 절망스런 일들이

 │→ 수없이 슬픈 일들이

 │→ 수없이 괴로운 일들이

 │→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 가슴아픈 일들이 수없이

 └ …

 

"희망이 끊어진다"고 하는 '절망(絶望)'입니다. 보기글에서는 '시리디시린'이나 '쓰리디쓰린'이나 '아프디아픈' 같은 말로 고쳐 볼 수 있어요. 그냥 '절망'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스런'을 뒤에 붙이면 됩니다.

 

 ┌ 절망에 빠지다 → 슬픔에 빠지다

 ├ 절망에 싸이다 → 괴로움에 싸이다

 └ 절망을 극복하다 → 아픔을 이겨내다

 

기쁨이 있으며 슬픔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리한테 희망이 끊어진 힘든 나날은 '괴로운' 나날, 또는 '슬픈' 나날입니다. 이때는 '힘든' 나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 보기글에 나오는 여러 가지 '절망'은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아픔'이나 '힘겨움'이나 '고단함' 들로 풀어내 봅니다.

 

ㄴ. 절망의 나날

 

.. 그나마 건강하던 아내마저 희귀병을 앓게 되면서 가족들은 그야말로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삼인, 2008) 95쪽

 

'건강(健康)하던'은 '튼튼하던'이나 '아픈 데 없던'으로 다듬습니다. '희귀병(稀貴)'은 '고치기 힘든 병'으로 손보고, '가족(家族)'은 '식구'로 손봅니다.

 

 ┌ 절망의 나날을

 │

 │→ 끔찍한 나날을

 │→ 아득한 나날을

 │→ 괴로운 나날을

 │→ 죽을 듯한 나날을

 │→ 죽음 같은 나날을

 └ …

 

뜻하지 않던 일이 생겨서 좋은 때가 있지만, 뜻하지 않던 일이 큰 슬픔이라서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며 얄궂은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레 닥치는 아픔은 크나큰 슬픔이고 괴로움이고 힘겨움입니다. 이때부터 삶이 고달파지고 고단하고 힘듭니다. 벅차고 아득하고 아찔합니다. 살아도 산 목숨 같지 않고, 외려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견디기 힘든 나날을

 ├ 몹시 힘든 나날을

 ├ 벅차디벅찬 나날을

 ├ 죽느니만 못한 나날을

 ├ 산다고 할 수 없는 나날을

 └ …

 

우리들 사람은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끔찍하고 괴로워도 이보다 더 끔찍하고 괴로울 수 있겠느냐 생각하게 되고, 끔찍함과 괴로움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더욱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끔찍한 일을 겪는 바로 그 사람은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괴로운 일을 치러내야 하는 그 사람 또한 어지러이 헤매곤 합니다. 쉽지 않으니까요. 둘레에서 따뜻하게 도와주는 손길을 내밀어 주지도 않으니까요.

 

나누는 마음은 조그마해도 됩니다. 함께하는 손은 잠깐이어도 됩니다. 새 기운 얻고 새 마음 북돋우면서 차근차근 밝아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조그마한 마음을 선뜻 보내지 못하고 잠깐 함께하는 손을 선선히 내밀지 못합니다. 바쁜 삶이고 팍팍한 삶이라 그렇습니다. 제 앞가림에 지치고 제 밥그릇에 매인 삶이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사람 노릇 하면서 살아야 하건만, 사람 노릇보다 돈에 매이고 이름에 눌리고 힘에 따르는 삶으로 흘러만 갑니다.

 

스스로 사람됨을 잃고 떠돈다고 할까요. 사람됨을 스스로 잃으니 우리 터전이 나날이 무너진달까요. 우리 터전이 우리 터전다움을 잃고 있으니, 우리 삶이 삶답지 못하면서 어수선해진달까요. 어수선하거나 뒤숭숭한 우리 삶이다 보니, 우리들 생각과 마음이 담기는 말과 글이 엉망진창이 된달까요.

 

사람이 사람다움을 고이 빛낼 수 있을 때, 바야흐로 말이 빛나고 글이 빛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다움을 내팽개치거나 업신여길 때, 어쩔 수 없이 말이 찌들고 글이 시듭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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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21:0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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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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