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은... '나'

[목사가 쓴 주유원 이야기3] 아픈 무거리들을 글쓰기로 잊다

등록 2009.03.30 16:32수정 2009.03.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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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처

 

멍들다 잠든 가슴만큼이나 큰

세상 사람들의 손놀림이 버거워

앰한 데 대고 삿대질을 한다.

 

헹글헹글한 인생을 살지 않은 터라

더욱 무거운 실패의 짐

네가 아니었다면 어찌했으랴

네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놀라고 있을 것이랴

 

죽음보다 더 강한 눈빛으로

무거리들을 째려보지만

까닥도 안 하고 있다.

내가 잠시 발을 옮기면 될 것을

 

휴대전화가 새 역사를 알릴 때

나는 멍하니 하늘만 본다.

언제나 그럴 수는 없는

앰한 그 눈빛으로

 

잡초라면 어떨까

그리 질긴 생명력이랴

민들레 홀씨라면 어떨까

어떤 방해가 그를 이기랴

 

주유원의 모자 이 모자 속에 나를 감추고 보다 나은 나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방랑자였던 때가 있었다.
주유원의 모자이 모자 속에 나를 감추고 보다 나은 나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방랑자였던 때가 있었다.김학현
▲ 주유원의 모자 이 모자 속에 나를 감추고 보다 나은 나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방랑자였던 때가 있었다. ⓒ 김학현

 

순진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은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말라."

 

데일 카네기의 말은 진리다. 그러나 난 이미 그 벌통을 걷어차고 말았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벌통을 걷어차고 꿀은커녕 수많은 벌들에게 쏘여가며 신음하는 사람을 보라. 그가 나다. 신음소리가 너무 클지도 모른다. 신음소리가 한밤중에 당신을 가위눌리게 할지도 모른다. 이미 벌통을 찬 사람의 신음소리가 모든 이들에게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어떻게 그놈의 벌통을 걷어차게 되었느냐고, 잔인하게 묻지는 않았으면 한다. 너무나도 생게망게한 이야기를 너절너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지 말라. 세상물정 모르는 목사의 주책과 너무나 세상물정을 잘 아는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라면, 그럴 듯한 욕심과 말도 안 되는 설득의 논리의 결과라고 하면, 너무 순진하여 내 말에 무조건 순종한 성도들과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 성도들을 지도하던 어리석은 목사의 결합 때문이라고 하면, 그런대로 용서가 될까. 아니 용서가 안 된다. 나도 날 용서할 수 없는데 남이야 어떻겠는가.

 

세상에 그렇게 순진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때, 엄청나게 단 꿀을 가득 실은 벌통을 발로 걷어찼을 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 일을 당하고 나서 그때야 정신이 든 성도들이 파리 떼처럼 몰려들어 아우성을 칠 때만 해도 그런 인간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참말로 있었다. 그게 나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성격이란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어쩜 카네기는 이리도 친절할까. 조금 일찍만 카네기를 만났어도 풀리지 않아 고통스러웠던 그때가 정녕 없었을 터인데. 왜 그리 모두를 원망했던가. 왜 그 모두는 나를 그렇게도 원망했던가. 너무도 명확하게 풀린다.

 

날은 명량한데 내 마음은 밝질 않다. 삭이고 묻어 둔 채 멍든 가슴은 송충이를 팔뚝에서 기게 하는 것처럼 스멀스멀 고통들을 가슴속으로 저며 넣는다. 교회의 부름에 궤젓하게 응해왔던 지난 25년간을 떠올리며 주마등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나름대로 잣대질할 힘도 이미 잃었다. 상앗대질에 맞상앗대질은 안 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마음은 홋홋하다. 그래도 아픔의 찌꺼기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걸 어쩌랴. 그래서 날씨와는 정반대로 가는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 없다.

 

내겐 아픈 무거리가 있다

 

오늘은 유난히도 선연(鮮姸)한 양떼구름이 하늘 저 멀리서 흘러간다. 내 마음속에 앙금도 저 구름 타고 가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리 녹록지가 않다. 이냥 가슴을 파고들기만 하는 아픈 무거리. 니코틴이 허파에 이렇게 달라붙어 사람을 해코지하는 걸까. 담배와는 아예 인연이 없는지라 그걸 모르겠다. 지금도 흠구덕을 하며 킬킬거리는 이들이 있을까? 있겠지. '세월이 약이겠지요.' 그렇게 노래한 가수가 선견지명이 있다.

 

지난 6개월 내내 파랑주의보를 지나 파랑경보가 되어 내 꽁무니 뒤로 을씨년스럽게 나부끼던 아픔의 바람 쪼가리들, 3개월을 넘겨가는 무임, 한 달 반을 넘긴 정식 실직 상태(내가 속한 감리교회에서는 인사구역회를 통해서 이임과 취임이 결정되는데, 나의 이임을 결의하는 인사구역회가 한 달 반 전에 있었다. 이 글의 모든 시점은 글을 쓰는 시점임), 나는 물론 우리 가족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반 년이었다.

 

'피가 마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난 이번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단했다. 나의 어깨에 우리 가족의 생사여탈권이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음했을 때, 억울하다느니, 분하다느니, 살려주지 그랬느냐느니 하는 헤아림은 넋두리 이상은 아니었다. 한 달 반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이러다 죽지' 하고 생각했었다.

 

'내가 목사 아닌가. 병원은 무슨 병원. 하나님께 기도하면 낫지.'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만 갔지 가슴 두근거림은 그 도를 더해만 갔다. 잠도 이룰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고, 그놈의 심장에 손을 대면 둬 근 반 서 근 반 느껴질 정도로 펄떡거렸다.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아내와 나. '이러다 죽지'라는 말들이 목구멍에서 나와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그 자리에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검은 암흑이 자리했다. 죽음의 나락이 그리 깊을까.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 그 충분한 공감이 스펀지가 물을 먹듯 한다. 신앙이 없다면 나라고 예외일까.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죽으면 아직 다 키워내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마음이 여리디 여린 내 아내는 어떡하고. 집도 한 칸 없고 절도 한 칸 없는데(이건 당연하다 내가 목사니), 당장에 살길이 죽을 길만큼이나 캄캄한 그들을 놓고 내가 먼저 가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닐 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는 확신이 왔다.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한 달 반 동안 치료를 받고 가슴 두근거림을 조금은 잡았다. 나는 한 달 반이지만, 아내는 거의 석 달을 넘겨 병원을 다니고야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변주곡으로써의 글쓰기

 

세상에 소설 같은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나다니. 소설 속의 비련의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책표지를 뚫고 내 가족 속으로 들어왔다. 9년간 목회하던 공동체가 이리 불신의 소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의심의 그늘을 늪처럼 드릴 수 있는 곳인지 미처 몰랐다. 싸매는 포대기인 줄 알았는데, 헤집는 쇠스랑인 걸. 장미향 가득한 꽃인 줄 알았는데, 가지에 즐비하게 붙은 가시인 것을. 순진함이라는 미명하에 가려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러나 누구나 남의 신발을 신어봐야 아는 법, 내가 그들의 신발을 신어본다면 십분 이해가는 구석이 있다. 사람은 모두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는 법이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난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준 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원한 게 정말 아니었지만. 결국 쌍심지를 돋우며 덤벼드는 사람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를 때, 나와 성도들은 만신창이가 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안 되려고 일찌감치 두 손 두 발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물은 이미 쏟아졌다. 대지를 질퍽하게 적셨다. 나와 성도들의 가슴에도 거들막하니.

 

돈이라는 맘몬이 지배하는 사회, 그 가운데 교회가 서 있고,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 또한 그 맘몬을 숭배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단순히 순진하다 믿은 사람, 맘몬의 논리에 신앙의 논리가 이길 수 없다는 걸 모른 철딱서니, 그가 나다.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라고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말이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공허한 말인지,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어디다 말하고 싶은데 나의 호소를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더 나를 고독에 몸서리치게 한다. 치가 떨리도록 외롭다. 진저리쳐지도록 고독하다. 고독하다 못해 온몸이 아리다.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내 넋두리를 이렇게 퍼지르는 것도,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 골병이 낫지 않을까 하는 내 정신병리적 자아도취인지도 모를 터.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세종대왕 만세! 한글 만만세!'

 

그분이 아니었다면 어디 언감생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랴. 망망대해 같은 벌판을, 한 겨울 하얗게 덮인 눈 위를 걸어 본 적이 있는가. 칼바람이 불어 코끝을 때리는데 입성은커녕 알몸이다. 그렇다. 바로 지금 내 모습이다. 추워서 얼어 죽겠다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아무도 볼 사람이 없다. 들어 줄 사람이 없다. 메아리만 끝 모르는 산자락 밑으로 흘러내릴 뿐.

 

칼바람은 내가 냈냐? 누가 널 발가벗겼냐? 누가 한데 나가 얼어붙으라고 했냐? 추울 걸 알면서 칼바람 앞에 서서 살려달라고, 추워죽겠다고 외치면 다냐? 아우성보다 더 큰 소리들이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소용돌이를 만든다. 심장에 구멍이라도 낼 양으로 후벼 파며 가슴팍으로 들어온다. 진짜 난 추울지 몰랐는데, 이렇게 추울지 몰랐는데……. 정말, 정말, 진짜, 진짜 몰랐는데. 그래 알고야 그렇게 했겠나.

 

다 못 듣겠다고 하는데, 다 아니 듣겠다고 하는데, 너보다 내가 더 아파 안 들린다고 하는데, 나의 일기가 그것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난 사력을 다해 바로 그 짓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를 위한 변주곡, 그렇다. 바로 그걸 연주하는 것이다.(계속)

 

덧붙이는 글 | *힘든 때입니다. 이 글은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이랄까요? 이 글이 현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03.30 16:32ⓒ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힘든 때입니다. 이 글은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이랄까요? 이 글이 현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유원 이야기 #김학현 #주유소 #주유원 일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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