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이나 귀농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품에 안기고 싶다 113] 안흥 산골에 사는 작가 박도 선생을 찾아서

등록 2009.04.09 20:48수정 2009.04.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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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도 선생 집  안흥 산골에 둥지를 튼 작가 박도 선생 집, 뒤에 보이는 산이 매화산이다
작가 박도 선생 집 안흥 산골에 둥지를 튼 작가 박도 선생 집, 뒤에 보이는 산이 매화산이다 이종찬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향 혹은 귀농을 꿈꾸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저 또한 32년 8개월 동안 몸을 담았던, 철밥통이라는 교사직을 헌 짚신짝처럼 내던지고 이곳 강원도 횡성군 안흥 산골로 내려오기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귀향이나 귀농을 꿈꾼다. 멜라민 파동에 이어 석면파동까지 일고 있는 삭막하고도 불안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공기 맑고 자유로운 전원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유기농법으로 기른 안전하고도 싱싱한 먹을거리까지 얻을 수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귀향이나 귀농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우선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을 단칼에 벨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도시생활에 젖어 있는 가족들이 순순이 따라주어야 한다. 게다가 막상 시골에 살 집과 농사 지을 땅을 미리 마련해 귀향이나 귀농을 한다 하더라도 농사 짓는 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 무농약 무공해로 유기농을 한다는 것은 몹시 어렵다. 어느 한 곳에만 유기농을 하게 되면 유기농을 하지 않는 논밭에 있는 벌레들이나 병균들이 농약을 피해 떼 지어 몰려들기 때문이다. 안흥 산골에서 글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있는 작가 박도 선생이 스스로 '얼치기 농사꾼'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작가 박도 처음 이 집을 살 때에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새롭게 손을 많이 봤습니다
작가 박도처음 이 집을 살 때에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새롭게 손을 많이 봤습니다 이종찬

작가 박도 '앵두나무가 서 있는 박도글방'
작가 박도'앵두나무가 서 있는 박도글방'이종찬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봄은 온다 

"이곳 안흥 산골에 내려온 지도 올해로 만 5년째입니다. 저는 그동안 모두 25권 남짓한 책을 펴냈는데 여기 와서 12권 정도 펴냈어요. 지금 출판 중인 책도 몇 권 더 있지요. 오늘 청소를 하면서 책을 많이 버렸는데,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앞으로 남에게 버림 받지 않는 그런 책을 쓰려고 합니다."  

'찐빵마을' 안흥면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기슭에 '박도글방'이란 자그마한 간판을 내걸고 있는 작가 박도(63) 선생. 요즈음 안중근 의사를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선생도 만나고, 오랜만에 흙내음도 듬뿍 맡기 위해 지난 3월 20일(금) 오후 1시 5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안흥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안흥으로 가는 고속도로변 곳곳에는 노오란 산수유와 개나리, 연분홍빛 진달래 등이 '저요! 저요!' 하며 앞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저만치 드넓게 펼쳐진 들녘에서는 가물가물 아지랑이가 한바탕 봄꿈처럼 어지럽게 일고 있다. 경기침체 등으로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 땅에 봄이 찾아오기는 온 모양이다.

자료 정리가 끝나면 곧바로 안중근 의사가 다닌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박도 선생. 그런 걸 보면 그는 소설가이자 수필기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실록작가이기도 하다. 일본문화기행서 <일본기행>과 한국전쟁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 직접 발로 뛰어 만든 책만 해도 여러 권 된다. 그 때문일까. 나그네는 그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차가 안흥면으로 들어서자 저만치 경운기를 몰고 논밭을 갈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띄엄띄엄 눈에 띈다. 쟁기를 끄는 소를 앞세워 논밭을 가는 모습이었다면 더욱 정겨웠을 텐데... 안흥면에 접어들자 낯익은 찐빵 집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몇 주 앞, 나그네가 진빵마을 취재를 위해 들렀던 그 집들이다.

작가 박도 이곳은 집사람이 횡성농업인센터에서 여성들에게 염색을 가르치게 된 것이 인연이 됐어요
작가 박도이곳은 집사람이 횡성농업인센터에서 여성들에게 염색을 가르치게 된 것이 인연이 됐어요 이종찬

작가 박도 지상권은 없지만 이 집도 250만원 주고 샀어요
작가 박도지상권은 없지만 이 집도 250만원 주고 샀어요 이종찬

안흥 들녘에 가면 찌든 세상사가 달아난다

"선생님! 마악 안흥면에 도착했습니다."
"찾아올 수 있겠어요. 지금 밭을 정리하는 중이라서... 그냥 택시를 타고 '박도 집으로 가자'고 하세요. 택시비는 내가 드릴 테니까."
"네, 걸어가든지 택시를 타든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흥면 버스정류장에 택시가 한 대 서 있다. 하지만 나그네는 택시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봄이 오는 들녘을 걸으며 흙냄새를 실컷 맡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박 선생 집은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세상이 어려운 때에 돈을 들여 택시를 탈 까닭이 없었다.

박 선생이 살고 있는 매화산 기슭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목 곳곳에는 자줏빛 제비꽃과 하얀 냉이꽃 등이 피어나 나그네 눈길과 발길을 자꾸만 머물게 한다. 디카를 꺼내 접사사진을 찍으며 맡는 은근한 꽃내음과 흙내음, 마악 연초록빛으로 솟아나는 쑥과 냉이가 풍기는 상큼한 풀내음 등이 세상사에 찌든 나그네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저만치 박 선생이 걸어 내려오다 나그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일부러 하던 일을 멈추고 나그네 마중을 나온 게 분명하다. "택시 타고 오지, 왜 걸어와" 하며 반갑게 손을 내미는 박 선생 얼굴에도 봄기운이 가득하다. 박 선생 집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밭갈이가 잘 된 널찍한 밭이다.

그 밭을 끼고 박 선생 살림집과 '박도 글방'이 기역자로 나란히 서 있다. '박도 글방' 앞에는 마악 몽오리를 돌돌 말고 있는 앵두나무 한 그루가 지키미처럼 가지를 뻗고 있다. 밭과 살림집 사이에는 자그마한 뜰이 하나 있다. 그 뜰 곳곳에 쑥과 냉이 등이 연초록빛 잎사귀를 예쁘게 펼쳐놓고 있다.            

작가 박도 밭갈이가 잘 된 널찍한 밭
작가 박도밭갈이가 잘 된 널찍한 밭 이종찬

작가 박도 '박도글방' 앞에 선 박가 박도 선생
작가 박도'박도글방' 앞에 선 박가 박도 선생이종찬

집 두 채, 서울에 있는 아파트 반 평 값도 안 돼

"주민등록도 이쪽으로 옮겼지만 강원도에는 내 땅이 하나도 없어요. 지상권은 없지만 이 집도 250만원 주고 샀어요. 서울에 있는 아파트 반 평 값도 안 되지요. 처음 이 집을 살 때에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는데 새롭게 손을 많이 봤습니다. 이곳은 집사람이 횡성농업인센터에서 여성들에게 염색을 가르치게 된 것이 인연이 됐어요."

나그네가 마당에 있는 탁자에 앉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때 박 선생이 커피를 직접 타서 내오며 카사를 부른다. 그러자 어디선가 야옹~ 하며 카사가 달려 나온다. 박 선생이 카사를 품에 안자 마치 어린애 안기듯이 폭삭 안기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카사는 박 선생이 애인처럼 아끼는 이 집 고양이 이름이다. 

봄빛이 묻어나는 들녘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차암 좋다. 나그네가 박 선생에게 서울생활에 비해 어떠냐고 묻자 박 선생이 "우선 공기가 맑아 좋다"고 말한다. 박 선생은 "서울은 늘 쫓기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서는 너그러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만"이라며 매화산을 그윽히 바라본다.

박 선생은 "생활비도 적게 들고,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다"라며 "단점이 있다면 그동안 사귀었던 사람과 자꾸 멀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라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어차피 나이를 먹으면 멀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말하는 박 선생 얼굴에 잠시 회한이 스쳐 지나는 듯하다.  

"책은 나무를 잘라 만드는데...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책을 만드는데 어찌 글을 아무렇게나 쓸 수 있겠느냐. 남에게 버려지는 책을 쓰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못 박는 작가 박도 선생. 박 선생에게 '박도글방' 간판에 대해 묻자 "호가 설송(雪松)이고, 산이 매화산이어서 처음에는 '설송산방'이나 '매화산방'이라 붙이려다 그냥 사람들 알기 쉽게 '박도글방'으로 붙였다"고 설명한다.

작가 박도 박도글방 앞에 서 있는 앵두나무에도 동글동글한 몽오리가
작가 박도박도글방 앞에 서 있는 앵두나무에도 동글동글한 몽오리가이종찬

작가 박도 박 선생이 애인처럼 기르고 있는 고양이 카사
작가 박도박 선생이 애인처럼 기르고 있는 고양이 카사이종찬

봄노을 예쁘게 물들고 있는 매화산 기슭

글씨는 박 선생이 직접 썼고, 새기는 것은 조각가에게 부탁하여 내걸었다는 '박도글방'. '박도글방' 안에 들어서자 벽면이 모두 책으로 가득하다. 그중 요즈음 박 선생이 글을 쓰고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자료와 박정희 자료가 눈에 띈다. 특히 박정희 자료는 박 선생이 같은 구미 출신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잘 모르는 자료가 꽤 많다.

글방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안흥 곳곳에 어느새 바알간 봄노을이 예쁘게 물들고 있다. 뜰 곳곳에 초록빛 새순을 내밀며 쑤욱쑥 올라오고 있는 새싹들도 연분홍빛 봄노을에 물들며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하는 듯하다. 카사는 무언가를 발견이라도 한 듯 밭둑 한 곳에 가만히 앉아 동그란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       
 
봄기운이 무르익는 3월 중순에 찾은 안흥 산골 매화산 기슭. 이곳 봄은 흙내음과 풀내음, 살가운 사람내음으로 다가온다. 여행이라고 해서 경치가 빼어나게 좋은 그런 곳으로 무작정 가는 것만이 참여행은 아니다. 가끔 속내 터놓고 도란도란 이야기 할 수 있는 선생이 있는 산골 마을을 찾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가 지녀야 할 또 하나 지혜가 아니겠는가. 

작가 박도 뜰 곳곳에 초록빛 새순을 내밀며 쑤욱쑥 올라오고 있는 새싹들
작가 박도뜰 곳곳에 초록빛 새순을 내밀며 쑤욱쑥 올라오고 있는 새싹들 이종찬

작가 박도는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를 펴내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비어 있는 자리><샘물 같은 사람><아버지의 목소리><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등이 있다.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일본문화기행서 <일본기행> 한국전쟁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도 여러 권 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동서울터미널-안흥. 동서울-안흥 고속버스는 오전 10시50분, 오후 1시5분, 5시45분 3차례 있다.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 서울-동서울터미널-안흥. 동서울-안흥 고속버스는 오전 10시50분, 오후 1시5분, 5시45분 3차례 있다.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작가 박도 #매화산 #안흥 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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