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면 엄마와 영원히 절교할 거야"

[이란 여행기 18] 노을을 보면서 집이 그리워진 큰 애

등록 2009.04.10 10:15수정 2009.04.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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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란에서 처음 얼마간은 굉장히 여행을 괴로워했던 큰 애. 사진은 카샨에 있는 전통가옥에서 찍었다.

이란에서 처음 얼마간은 굉장히 여행을 괴로워했던 큰 애. 사진은 카샨에 있는 전통가옥에서 찍었다. ⓒ 김은주


큰 애가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강릉 오죽헌으로 놀러갔습니다. 거기서 큰 애는 카메라를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난 카메라를 꺼내려면 좀 복잡하다고 안 꺼내줬습니다. 그때부터 큰 애는 갑자기 이리 가자고 하면 저리 가고, 저리 가자고 하면 이리 가는 식으로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심 많은 엄마가 아닌 난 급기야 버리고 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반항을 했습니다. 사실 이 날만 특별히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큰 애는 4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니 사춘기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데 이날 오죽헌에서는 우리 둘 다 극을 향해 치달았습니다. 3학년 때까지는 엄마의 기에 눌려있던 애가 갑자기 내 어깨까지 치받고 올라온 느낌이었습니다.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꼈지요.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인 나를 판단하고 비판까지 하니까 사실 나도 그 상황이 낯설고 적응이 안 돼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서 그날 오죽헌에서 마침내 터져버린 것입니다.

a  버스를 타고가면서 본 노을풍경. 이런 시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으며 집이 생각났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본 노을풍경. 이런 시간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으며 집이 생각났다. ⓒ 김은주


화가 극에 달해서  큰 아이를 버려놓고 작은 애만 데리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걸어가면서 큰 애가 알아서 따라오겠지, 하는 생각과 안 따라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애는 고집을 피우며 안 따라오더군요. 그래서 나도 이판사판 해보자, 하는 식으로 작은 애만 데리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구경도 하고 작은 애에게 그곳에서 파는 만화책도 사줬습니다.

나중에 박물관 앞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남편이 큰 애를 데리고 걸어오고 있더군요. 큰 애와 내가 하도 싸우니까 혼자 어디론가 가버렸던 남편이 다시 돌아와 큰 애를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날 싸움은 사실 무승부였습니다. 큰 애가 고집을 꺾은 것도 아니고 내가 고집을 꺾은 것도 아니고 서로 팽팽하게 맞서다가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렸지만 이후 큰 애와의 사이는 이런 식의 기 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란 여행을 떠나올 때도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까다롭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거기다 이제는 미니 사춘기가 아닌 완전한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애가 도대체 얼마나 내 속을 긁어놓을까, 난 부처님 같은 인내력으로 그걸 과연 참아낼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a  야즈드에 있는 사막에서 본 노을

야즈드에 있는 사막에서 본 노을 ⓒ 김은주


이란으로 떠나오면서 우려했던 일은, 마슐레 가는 버스에서 일어났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어디서 뭘 먹지, 먹을 만한 게 과연 있을까, 오늘 밤은 또 누구와 함께 자게 될까, 그런 것을 걱정하면서 바라본 이란의 시골 풍경은 평화롭긴 했지만 상대적이게도 울적하게 했습니다. 울타리가 쳐진 단정한 모습의 농가에 불이 들어오고 우리로 돌아오는 양떼의 모습에 집이 생각나고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애가 펀치를 날렸습니다. 이애도 나처럼 기분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분풀이 대상을 찾았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자기가 지금 처한 현실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런 현실을 있게 한 엄마가 원망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내내 시큰둥하게 앉아있던 큰 애가 갑자기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집에 가면 엄마와 영원히 절교할 거야."

이 말 속에서 난 많은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자기가 놓인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것보다 수천 배는 괴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정해진 일상에서 평화를 느끼는 애인데 갑자기 낯선 나라에 데려와 매일매일 변화하는 생활을 하게 하고 또 많이 걸어야 하면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거르기 일쑤고, 또 재미있게 어울릴 또래도 없고,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현실에 완전히 질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울증 걸린 애처럼 창밖만 내다보고 있을 때 알아봤습니다.

a  이란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이스파한의 자얀데 강을 덮은 저녁노을.

이란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이스파한의 자얀데 강을 덮은 저녁노을. ⓒ 김은주


a  이란에서 가장 예쁜 마을 마슐레의 저녁 풍경.

이란에서 가장 예쁜 마을 마슐레의 저녁 풍경. ⓒ 김은주


그러나 난 오죽헌에서처럼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며 죽기 살기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애가 오죽하면 저러겠는가, 하는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연민이 있자 큰 애를 이해하게 됐고, 그 투정을 다 받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런 말에 아랑곳 않고 엉뚱한 말로 대화를 돌렸습니다.

"너 사과 먹을래?"

진심은 통한다고 큰 애는 내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음을 인지했는지 더 이상 날을 세우지 않고 내게서 사과를 받아먹으면서 자기감정을 달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죽헌에서와 마찬가지로 큰 애와 나의 싸움은 역시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와의 차이점이라면 난 큰 애를 이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의 자리를 연민이 차지했는데 이 감정 또한 부드럽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날 버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연민을 갖고 큰 애를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란 #노을 #카샨 #이스파한 #야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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