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에 바짝 엎드린 대검 중수부

[取중眞담] 갖가지 의혹에도 천신일 회장 수사 여전히 '미적미적'

등록 2009.04.14 13:50수정 2009.04.1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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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열거된 사건의 공통점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 5공비리,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사건, 진승현·정현준·최규선·이용호 게이트, 김홍업·김홍걸 비리사건, 현대차 비자금 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사건, 공기업 비리 사건, 재벌가 3세 주가조작사건….'

 

답은 '대검 중앙수사부가 처리한 사건들'이다. 지난 81년 4월 전두환 정권 초기에 출범한 대검 중수부는 큰 경제사건이나 중요한 권력형 비리사건의 수사를 맡아왔다. '권력의 시녀'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대체로 '거악 척결의 중추'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죽은 권력'에 거침없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a  대검 중수부가 성역없는 수사가 아니라 권력 눈치보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9일 오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브리핑을 준비하는 모습.

대검 중수부가 성역없는 수사가 아니라 권력 눈치보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9일 오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브리핑을 준비하는 모습. ⓒ 이경태

대검 중수부가 성역없는 수사가 아니라 권력 눈치보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9일 오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브리핑을 준비하는 모습. ⓒ 이경태

대검 중수부는 현재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박연차 게이트')을 수사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의 돈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직 대통령을 소환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거침없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을 구속한 데 이어 조카사위 연철호씨와 장남 노건호씨, 그리고 부인 권양숙씨까지 조사했다. 측근·참모는 물론이고 직계 가족에도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다. '거악 척결의 중추'라는 평가에 걸맞는 수사진행이다.

 

물론 검찰수사의 종착역은 노 전 대통령이다. 거침없는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의 '고백'과 '사과'를 받아냈다. 지난 7일 부인 권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 순간 '죽은 권력'인 노 전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는 와르르 무너졌다. 일부 언론은 '노무현 시대의 종언'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런 대검 중수부가 유독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의혹에 들이대는 칼끝은 무디기만 하다. 구속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박연차 구명 로비 의혹'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61학번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박연차 구명 대책회의 의혹',  '수십억원 수수 의혹'에는 머뭇거리고 있다. 칼집에서 칼도 안꺼낸 상황이다.    

 

'박연차 구명운동'과 관련, '형님 인맥'으로 분류되는 추 전 비서관이 이상득·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수차례 전화통화하거나 만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참고인으로 부르거나 확인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또 다른 '추부길 리스트'는 좇지도 않고 성급하게 '실패한 로비'로 단정해버렸다. 샅샅이 파헤치는 노 전 대통령 일가 수사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쏟아지는 천신일 의혹'에도 수사진척은 없어

 

a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회장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관광 회장.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회장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관광 회장.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회장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관광 회장. ⓒ 연합뉴스

특히 천 회장과 관련된 의혹 수사는 감감 무소식이다. 천 회장은 지난해 7월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을 만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구명운동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무조사와 관련된 태광실업 내부 대책회의에도 참석했고, 박 회장의 딸과 사위로부터 구명운동을 부탁받았다. 또한 '친이계'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박 회장에게 소개했다.  

 

'천신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 회장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진행되던 2007년 8월 초 박 회장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받았으며,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진행중이던 지난해 9월에도 1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대선 직전 10억원을 받았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천 회장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뿐만 아니라 본선에서도 '조직'과 '자금'을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실질적인 이명박 캠프의 후원회장'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천 회장과 30년 지기인 박 회장의 돈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빌려줬다는 특별당비도 박 회장의 돈거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그러한 의혹이 쏟아지자 부담스러웠든지 대검 중수부는 마지못해 천 회장을 출국금지시켰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는 출국금지시킨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일부에서는 '표적수사'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한 '구색맞추기 출금'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성역있는 수사'로 초특급 실세 감싼다?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날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진행상황을 언론에 브리핑해온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천 회장이 돈 문제 때문에 출금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출금? 제가 확인해 드린 바 없다"고 답했다.

 

"나오는 대로 수사하겠다"던 검찰이 얼마나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악 척결의 중추'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머뭇거린다면 "'성역 없는 수사'는 어디 가고 '성역있는 수사'로, 초특급 실세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천신일 #박연차 게이트 #대검 중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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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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