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초로 반찬 만들어 먹어요"

'슬로시티' 전남 창평에서 즐기는 최금옥씨의 '슬로라이프'

등록 2009.04.15 17:19수정 2009.04.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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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면 생각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최금옥씨. 그녀가 스님들이 입는 승복을 만들기 위해 가위질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슬로푸드가 따로 있나요. 주변에 널려 있는 게 슬로푸드의 재료에요. 잎이든 꽃이든, 뿌리든 채취해서 무치면 다 반찬이 되잖아요. 그건 몸에 좋은 약이에요. 약초반찬이라구요."


느릿느릿 이어지는 옛 담장과 오랜 세월을 이어온 음식을 자랑하는 '슬로시티' 전남 담양 창평에 사는 최금옥(52)씨. 창평 고씨 종가의 며느리이기도 한 그녀의 일상은 '슬로(Slow)' 그 자체다. 슬로시티에서 슬로푸드를 먹으며 슬로라이프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천인 식물을 모두 먹을거리로 재탄생시키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속된 말로 아무리 하찮은 나무의 열매와 이파리일지라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맛깔스런 반찬으로 버무려진다.

요즘 그녀가 집에서 먹는 반찬도 다 자연에서 얻은 것들. 헛개나무와 참빗살나무, 뽕나무 잎을 무쳐 만든 나물, 매실과 다래·멜론 장아찌, 참나물과 녹찻잎 무침, 한약재로 쓰이는 오가피와 당귀·젠피 무침 등등. 흰민들레와 목련꽃을 이용한 장아찌도 있다. 온갖 식물이 밥상에 오른 셈이니, 자연을 먹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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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약초로 차려낸 밥상. 아무리 하찮은 나무의 열매와 이파리일지라도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맛깔스런 반찬으로 버무려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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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에서 슬로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최금옥 씨가 자신의 집에서 약초밥상을 차리고 있다. ⓒ 이돈삼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을 지녔어요. 학교에 하루 다녀오면 이틀 동안 아플 정도로 몸이 좋질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됐죠. 몸에 좋다는 약초도 많이 먹었어요. 그러다가 약초를 따로 다려서 먹는 것보다 반찬으로 만들어 섭취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최씨가 이른바 '약초밥상'을 차리게 된 계기다. 그렇다고 비싼 약초를 따로 사다가 반찬으로 만들지 않는다. 주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채취해서 독특한 맛과 색을 만들어냈다. 독성만 없는 식물이라면 모두 그녀의 손에서 찬거리로 변신했다.


식구들은 이 과정에서 늘 실험대상(?)이었다. 그녀가 새로운 반찬을 만들면 언제나 시식을 하고 또 평가를 해주었다. 가족들의 건강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집에 놀러 왔다가 약초로 차려낸 밥상을 받아본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인스턴트식품과 대비되는 슬로푸드라며 치켜세웠다.

형형색색의 열매와 산야초를 채취하고, 그 고유의 맛을 찾기 위해 무치고, 말리고, 삶고, 데치는 과정이 번거롭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겼다. 시나브로 무공해 산야초와 열매가 풍기는 오묘한 향과 색, 맛에 빠져들었다. 식구들이 "맛있다"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땐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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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가 다래를 따서 담근 다래엑기스를 덜어내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항아리에 가득한 다래엑기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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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가 승복을 만들기 위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그녀의 승복 만들기는 '아들스님'의 승복을 만들어주면서 시작됐다. ⓒ 이돈삼


뿐만 아니다. 최씨는 '생각나면 생각대로' 다 하는 스타일이다. 식구들이 쓸 밥그릇과 국그릇을 직접 만들어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도자기 빚기. 지금은 집에서 쓰는 밥그릇과 국그릇은 물론 화분과 꽃병 하나까지도 모두 그녀가 직접 빚어 만든 것이다. 배추와 상추, 고추 등 찬거리와 엔간한 국거리도 직접 가꾸고 있다.

8년 전 출가해 스님이 된 아들의 승복을 직접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또 승복 만들기. 처음 집에 있는 누비이불에 본을 떠서 지어줬는데, 아들이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것이어서 정말 편안하다"며 흡족해했다.

이후 승복 만들기도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됐다. 지금은 아들의 승복은 물론 형편이 넉넉지 않는 스님들의 승복까지도 재료비만 받고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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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는 천연염색도 직접 하고 있다. 그녀가 집에서 햇볕에 말린 천연염색 천을 거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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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는 천연염색 뿐아니라 천에 넣는 문양도 직접 붓끝으로 그려낸다. 그녀가 먹물로 대를 그린 천을 펼쳐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돈삼


최씨의 '생각대로' 방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입는 옷의 색깔도 내 맘대로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천연염색 작업도 하고 있다. 황토는 물론 감, 양파, 쑥, 밤, 코치닐 등 주변에 널려있는 재료로 직접 물을 들이고, 그 천으로 옷을 깁고 침구와 가방도 만든다. 서툰 솜씨지만 천에 새기는 밑그림도 그녀의 손끝으로 그려낸 것들이다.

"제가 좀 싸이코 기질이 있는가 봐요. 무슨 일이든지 한번 손대면 푹 빠지는 편이에요. 그렇게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만족을 해요. 한때 심했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최씨의 생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담양군 창평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되기 훨씬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고, 또 소문을 전해들은 외지인이 가끔 발걸음을 할 뿐….

"슬로시티고 슬로푸드, 슬로라이프가 새로울 것은 없어요.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까요."

따로 가공하지 않은 그녀의 생활에서 생활의 여유와 함께 오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다음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또 행동으로 옮길지도 벌써부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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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가 큰아들을 출가시키고 또 승복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오른쪽). 왼쪽 사진은 그녀가 만든 승복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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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간식으로 즐겨먹는 적색고구마와 돼지감자. 오른쪽 사진은 돼지감자의 껍질을 벗긴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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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옥 씨가 살고 있는 담양 창평은 지난 200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빠르게'로 대변되는 사회에서 '싸목싸목' 여유를 갖고 살자는데 목적이 있다. ⓒ 이돈삼


우리나라에선 지난 2007년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과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면, 신안군 증도면 등 4곳이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통 가옥과 돌담길이 잘 보존된 창평면은 한과와 쌀엿 등 전통음식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수려한 경관을 지닌 유치면은 표고버섯 재배와 친환경농업 실천이 눈에 띈다. '가보고 싶은 섬' 청산도는 섬마을 특유의 돌담과 농경문화가 살아 있다. 천혜의 갯벌을 지닌 증도는 하늘이 내려주는 갯벌천일염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금옥 #슬로시티 #창평 #슬로라이프 #약초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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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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