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벚꽃'이라고요? 그런 소리 하덜 마쇼

마이산, 마지막 피는 벚꽃을 찾아

등록 2009.04.20 09:43수정 2009.04.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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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반 꽃 반, 그렇게 물든 산하에서의 하루는 마냥 즐거움을 가슴에 저며다 주었다. ⓒ 김학현

사람 반 꽃 반, 그렇게 물든 산하에서의 하루는 마냥 즐거움을 가슴에 저며다 주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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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사에서 올려다 본 숫마이봉의 모습이다. ⓒ 김학현

운수사에서 올려다 본 숫마이봉의 모습이다. ⓒ 김학현

 

사순절(예수의 부활 전 40일간, 성도는 예수의 고난을 생각하며 묵상하며 지내는 기간)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주일을 지내며 그간 숨겨뒀던 질주본능, 아니 야행본능(野行本能)이 폭발했다. 그간 숙려기간을 지낸 목사 내외들이 마침내 야행본능을 충분히 발산할 기회가 온 거다.

 

오삼회, 드디어 오삼회(당시 53살 먹은 목사 아내들이 결성한 모임)가 떴다. 장소는 마이산. 들러리일 수밖에 없는 오삼회원의 남편들도 당당히 참가했다. 나도 그 남편들 중 한 사람이다. 말이 그렇지 실은 내가 장소도 물색했으니 말만 '오삼회'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올해는 벚꽃구경을 못 하나 했는데

 

우리 오삼회 부부들은 지난 14일 그렇게 용감하게, 벚꽃이 유명하다는 마이산으로 갔다.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다. 버스가 줄을 서 있는 게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데만도 만만치가 않았다.

 

"어젠 승용차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버스들이 많네요."

 

주차 스티커를 내주며 주차요원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을 한다. 그러나 좀 기다리면 어떠랴? 벚꽃구경만 하면 되지. 그도 그럴 것이 몇 번 목회자들 모임이 벚꽃구경을 계획했었으나 정작 가보면 벚꽃이 안 피어서 실망하고 돌아왔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전군도로가 그렇고, 동학사벚꽃이 그랬다. 전군도로에선 아직 망울도 안 벌어져 군산 가서 그냥 회만 질펀하게 먹고 왔을 뿐이다. 순전히 일기예보 때문이다. "올해는 벚꽃이 9일 정도 일찍 핍니다." 그때 그 아나운서가 그렇게만 일기예보를 하지 않았어도, 지난 달 30일 일찌감치 전군도로를 찾지는 않았을 거다.

 

전군도로의 아쉬움이 계속 가슴에 멎은지라 가까운 곳인 동학사에 가보았건만, 이미 꽃비가 되어 내려앉은 후, 이를 어쩌나? 올해는 벚꽃을 못 보고 지나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오삼회는 적기에 꽃구경을 할 줄 아는 모임이었던 것.

 

벚꽃 길을 걷는 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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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잎이 내려앉은 물 위는 또 하나의 천상이다. ⓒ 김학현

떨어진 꽃잎이 내려앉은 물 위는 또 하나의 천상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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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km정도 되는 벚꽃 터널을 지나며 모두가 흥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이다. ⓒ 김학현

약 1.5km정도 되는 벚꽃 터널을 지나며 모두가 흥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이다. ⓒ 김학현
 

사람 반 꽃 반, 그렇게 물든 산하에서의 하루는 마냥 즐거움을 가슴에 저며다 주었다. 너무 부지런해 '바지런한 사모님'이란 별명까지 얻은 회원 한 분이 맛있는 점심까지 싸가지고 왔으니 이 어찌 금상첨화가 아니랴. 글쎄 얼마나 극성스런지 밥통째 싸들고 왔다는 걸 알았을 땐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아직은 싹이 듬성듬성 나오고 있는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맛, 참 오랜만에 느껴본 행복이었다. 이산묘에서 이갑용 처사의 돌탑 작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탑사까지는 잘 포장된 도로다. 예전에 왔을 때는 승용차로 가볍게 지나던 길이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호사였다. 벚꽃이 흐드러졌으니까. 작은 호반에 떠가는 오리 배, 그 안에 든 남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리 재빠른 발놀림을 할까? 이리 보아도 행복, 저리 보아도 행복이다. 떨어진 꽃잎이 내려앉은 물 위는 또 하나의 천상이다.

 

약 1.5km 정도 되는 벚꽃 터널을 지나며 모두가 흥겨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이다. 몇몇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거나하게 취하여 고성방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주변 상가가 모두 돼지갈비 바비큐 집들이다. 거기다 노란 막걸리가 길손을 잡으니 어찌 취하지 않으랴.

 

바비큐 집들에서 뿜어내는 갈비 냄새, 이미 점심을 먹은 터라 냄새만 맡고 지난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냄새도 냄새지만 집집마다에서 뿜어대는 연기는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다 좋은데 주변상가에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생각했다.

 

등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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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를 배경으로 한 컷, 하지만 잘 갖춘 등산 차림이 무색할 정도로 그냥 꽃구경이었을 뿐이다. ⓒ 김학현

탑사를 배경으로 한 컷, 하지만 잘 갖춘 등산 차림이 무색할 정도로 그냥 꽃구경이었을 뿐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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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반에 떠가는 오리 배, 그 안에 든 남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리 재빠른 발놀림을 할까? ⓒ 김학현

작은 호반에 떠가는 오리 배, 그 안에 든 남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리 재빠른 발놀림을 할까? ⓒ 김학현

 

실은 오삼회는 꽃구경하는 모임이 아니고 등산을 하는 모임이다. 그래서 '마이산 등반'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걸고 집을 출발했었다. 그러나 정작 등산다운 등산은 하지 못했다. 원래 탑사에서 은수사를 거쳐 암마이봉 정상까지 오르려던 게 계획이었다.

 

그러나 암마이봉과 숫바이봉 중간지점에서 암마이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막혀 있었다. 통제구역이란 팻말이 서 있고 암마이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초입이 막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챙겨온 간식들을 두 마이봉 중간에서 펼쳐놓고 먹는 것으로 정상 기분을 만끽하고 하산했다.

 

잘 정돈된 등산로는 좋았지만 정상을 오를 수 없었던 아쉬움은 내 남았다. 하지만 꽃을 보지 않았던가? 그것도 그리도 흔하지만,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했던 벚꽃을. 올해도 또 이렇게 늦은 벚꽃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벚꽃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 많이 심겨졌기에 일본의 꽃이라 하여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매해 봄이 되면 벚꽃구경, 벚꽃축제는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율배반은 흔하지 않을 터. 그냥 꽃으로만 보고 즐긴 벚꽃여행, 이번 오삼회의 등반은 그런 것이었다.

 

"'그 흔한 벚꽃'이라고요? 그런 소리 하덜 마쇼! 그 흔한 벚꽃 하마터면 보지 못하고 올 봄 지날 뻔했수."

 

속으로 이 말을 얼마나 했던가. 하지만 이번 등산은 막바지에 결국 원 없이 벚꽃 구경을 했다. 오르다 마신 진한 칡차 한 잔, 그 향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내 몸 구석구석에서 나는 듯하다. 그것뿐이랴. 지금도 아른 하니 흐드러진 벚꽃들이 내 가슴으로 덤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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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은수사 텃밭에는 각종 꽃들이 즐비한데, 금낭화 또한 낭창하다. ⓒ 김학현

마이산 은수사 텃밭에는 각종 꽃들이 즐비한데, 금낭화 또한 낭창하다. ⓒ 김학현

2009.04.20 09:43 ⓒ 2009 OhmyNews
#벚꽃 #마이산 #이갑용 #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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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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