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0원으로 대학등록금 언제 모을까?

"대학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라" VS "등록금이 비싸 엄두를 못 내겠어요!"

등록 2009.04.29 09:49수정 2009.04.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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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며 삭발을 단행하는 여학생.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며 삭발을 단행하는 여학생. ⓒ 권우성


초등학생 아이들 매주 용돈은 4천 원. 설거지와 강아지 목욕 등 아르바이트로 간간이 특별용돈 주에 천 원. 적지 않은 용돈임에도 아이들은 엑셀 작업 아르바이트 한다고 열심히 컴퓨터 배우는 중입니다.


"아빠, 집안 청소하면 용돈 얼마 줄 거예요?"
"청소하면 하는 거지, 웬 돈? 너 요즘 부쩍 돈을 따진다. 어디 쓰려고 그래?"
"다 쓸데가 있어서 그래요."

어제 저녁, 식사 중 초등학생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끼어들었습니다.

"대학 등록금 모은 데요. 지금부터 모은 돈으로 대학간대요."
"너 정말이야?"
"아빠가 고등학교까지만 보내준다고 대학은 알아서 가라 했잖아요. 저는 대학 가고 싶거든요."

아이가 돈 모으는 일이야 흔한 일이지만 대학등록금을 목표로 모은다는 건 쉽게 찾을 수 없던 일이지요. 이를 기막히다 해야 할까? 대견하다 해야 할까? 순간 멈칫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간간이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대학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살과 한 살일 때부터 종종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아빠는 너희들 대학 보낼 생각 없다.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라."


이 소릴 듣고 있던 아내가 그러더군요.

"걱정하지 마, 엄마 돈으로 보내줄 테니까."

할 말 없더군요. 엄마가 번 돈으로 대학 보내준다는데 뭐라 하겠습니까. 아빠가 너무 냉정하다나요? 자립심을 키울 요량이었는데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죠.

그 뒤로도 아이들에게 몇 번인가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대학 다니던지, 아니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빨리 찾아라"고 했지요. 이 말의 원천은 내가 대학 다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  아이가 등록금 모은다며 모은 돈.

아이가 등록금 모은다며 모은 돈. ⓒ 임현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라

20여 년 전, 군 제대 후 복학을 했지요. 그런데 한 여학생이 유난히 도서관을 끼고 살더군요. 기어코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물었지요.

"아버지께서 자랄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해서 살아라고 했다. 오빠와 언니들도 스무 살 되던 해부터 다들 분가해 살았다. 부모님께서 생활비는 주시는데 등록금은 안 주신다. 알아서 다녀라는 것이었다. 그래 장학금을 받던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장학금을 놓칠 수 없어 죽어라 공부한다."

이 말을 듣고 참 멋진 아버지구나 생각했지요. 외국의 경우에도 20세 전후에 독립하는 경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자신의 삶을 부모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지요.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자기 힘으로 대학 가겠다고 등록금을 모은다는 소릴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딸아이가 아빠 의도를 이해했다고 볼 수 없었지요. 돈만 생기면 가게로 득달같이 달려가던 녀석이 돈을 모은다니 자초지종을 따져봐야 했습니다.

등록금이 비싸 엄두를 못 내겠어요!

"대학 등록금은 언제부터 모은 거야?"
"2주 됐어요. 한푼 두푼 돈이 모이니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 좋대요. 즐겁네요."

"얼마 모았어?"
"6660원요."

아이 말을 들으니, 긴 머리 삭발하며 눈물 흘리던 홍대 여학생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던 대학생들이 집단 삭발 도중, 강제 연행됐다지요. 남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잠든 후, 아내는 "나도 엄마 돈으로 대학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등록금이 비싸 엄두를 못 내겠어요"라 하대요.

그나저나 등록금 저축이 몇 조금이나 갈지 모르겠네요. 이제 딸랑 6660원 모았습니다. 하지만 연 천만 원한다는 등록금을 언제 모을지 걱정이네요.

a  아들은 긴 머리 조금 자른다고 입이 나왔는데, 삭발한 여학생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아들은 긴 머리 조금 자른다고 입이 나왔는데, 삭발한 여학생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대학등록금 #장학금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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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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