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수사한 검찰이 '정치검찰' 오명 벗으려면?

[取중眞담] 살아있는 권력도 한 점 의구심 없이 수사할 수 있어야

등록 2009.05.02 12:14수정 2009.05.0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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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일 새벽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로서 4월 30일 오후 1시 20분 대검찰청 청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9개월에 걸쳐 진행됐던 검찰수사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3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그가 봉하마을로 돌아간 뒤 검찰로에겐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대질신문 불발 원인을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진 것.

검찰은 30일 밤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대질 신문이 전직 대통령 예우가 아니고 시간도 많이 늦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며 대질 신문 불발 원인을 노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실에서 박 회장을 만났는데 박 회장도 대질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그런 대화 내용이 조서에도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즉 박 회장 역시 대질 의사가 없었는데도 검찰이 굳이 대질 신문 불발 원인을 노 전 대통령에게 돌린 까닭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처럼 내비치기 위해서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펄쩍 뛰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1일 오후 브리핑에서 "조서 내용을 비공개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진실게임이니 이런 보도는 치졸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등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대질신문 논란은 이미 여러 차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쓴 검찰의 '오래된 상처'를 확실하게 건드렸다.


'정치 보복 수사' 논란 때마다 민감했던 검찰, "우린 민사소송 원고 아냐"

a  지난 30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수사진행 상황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수사진행 상황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수사 검사들이 신문 보도를 보고 찾아와 상당히 항의를 했다. 제가 그를 한 번 전달하고자 한다. '정치권 눈치보다 꼬인 수사' 보도가 있었는데 검사들이 상당히 기분 나빠하고 있다. 뭐가 꼬였나? (중략) 검찰 수사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다 꼬였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4월 28일 오후 브리핑)


그동안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들러붙는 '정치검찰'라는 꼬리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 꼬리표는 여간해서 떨어질 수가 없는 원죄와도 같았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인이었다는 점, 재벌도 아닌 지역 중견기업인 태광실업의 세무조사를 국세청장이 직접 챙겨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사실, 그리고 국세청이 지난해 11월 박 회장을 탈세혐의로 고발했을 때 이 사건이 검찰총장이 직할하는 대검 중수부로 넘겨진 점 등은 밑그림 자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 때문에 야당은 줄기차게 이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비난했다. 언론을 통해 박 회장과 '살아있는 권력' 사이의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이 비난에 힘이 실렸다. 이에 검찰은 여러 차례 "언론에서 의혹을 이렇게 제기하고 있는데 수사를 하지 않겠냐"며 "한 점의 의구심도 없도록 수사하겠다, 수사 전문가들에게 맡겨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우선 지금까진 "수사 일정에 따라", "수사의 방향성에 따라" 노 전 대통령 의혹을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르다"고 반발했을 때 불거진 '檢-盧 진실 공방' 논란 때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수사의 중립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민사소송의 원고가 아니다. 이번 수사는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진실게임 공방이 아닌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대결이다. 검찰은 누구에게 진실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지 이 대결에 당사자가 아니다."(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4월 14일 오후 브리핑)

하지만 검찰은 이번 수사의 최대 고비였던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를 넘긴 뒤에도 앞서와 비슷한 맥락의 진실 공방에 휩싸이고 말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600만 달러의 존재를 재임 중 알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소극적이었던 '추부길 수사'... MB 최측근 인사 '천신일 수사' 때는?

a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7시간 가량 진행된 지난 30일 오후 경찰 병력이 환하게 불을 밝힌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위에서 물샐틈없는 경비를 펼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7시간 가량 진행된 지난 30일 오후 경찰 병력이 환하게 불을 밝힌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위에서 물샐틈없는 경비를 펼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무엇보다도 앞으로 남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일이 중요하다.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아 구속 기소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수사에서 이미 "죽은 권력에는 용감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엔 몸을 움츠린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추 전 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실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에게 두 차례 이상 전화를 한 사실을 확보하고도 이들에게 서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불러서 확인해야 하지 않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본인 진술과 통화 내역으로 확인했다"며 "본인 진술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현재 상황에서는 추 전 비서관과 통화한 2200명을 다 불러 조사해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도 했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을지를 의심케 대목이다. 

검찰은 5월 초 구속·불구속 여부를 떠나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할 것이 확실하다. 남은 것은 '박연차 리스트'에 등장하는 전·현직 정치인 및 법조인 수사다. 또 이 대통령의 최측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도 남아 있다. 

앞서 "아무 혐의도 없는 이를 출국금지하지는 않는다"며 천 회장 수사 의지를 밝혔던 홍 기획관은 이날도 "(노 전 대통령 의혹 외에) 나머지 필요한 부분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박연차 수사 3라운드를 맞이한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연차 #노무현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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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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