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응원하는 힘찬 함성

등록 2009.05.08 10:16수정 2009.05.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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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녀가 속한 팀이 이기면 엄마는 신난다. 지난달 30일 열린 화순제일초 1,3,5학년 운동회에서...

자녀가 속한 팀이 이기면 엄마는 신난다. 지난달 30일 열린 화순제일초 1,3,5학년 운동회에서... ⓒ 박미경

자녀가 속한 팀이 이기면 엄마는 신난다. 지난달 30일 열린 화순제일초 1,3,5학년 운동회에서... ⓒ 박미경

요즘 화순관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운동회가 한창이다. 공립보통학교에서 국민학교, 초등학교 등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매년 운동회가 열리는 것은 여전하다. 그리고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열띤 응원을 펼치는 아이들의 함성도...

 

나는 초등학교를 2곳 다녔다. 1학년부터 3학년무렵까지는 학생수가 그리 썩 많지 않았던 경기도의 작은 면지역에 위치한 학교를 다녔고 이후에는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경기도에서 학교를 다닐때 운동회는 모든 학부모들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행사였다.

 

운동회는 아이들은 물론 엄마아빠, 인근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참석하던 행사였다. 운동회날이 되면 아이들은 체육복을 입고 학교로 가고, 엄마는 삶은 계란이며 밤, 과일, 김밥, 불고기 등 온갖 먹거리가 담긴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오셨다. 직장에 다니시는 아빠도 운동회날 만큼은 어떻게 하셨는지는 몰라도 꼭 학교에 오셨다.

 

운동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는 뭐니뭐니해도 달리기다. 특히 각 팀의 대표들이 바톤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이어달리기와 줄다리기는 점수도 점수지만 모두가 집중하며 한목소리로 자기 팀이 이기기를 기원했다. 이어달리기 대표로 뽑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운동회의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이어달리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온힘을 다해 달리는 자기팀의 선수들을 목청껏 응원했고 학부모들도 자녀가 속한 팀을 응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함성이 가장 크게 울리는 것도 이때다. 이어달리기 경기에서의 승리가 운동회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가장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었을까?

 

엄마아빠들의 힘을 겨루는 줄다리기 역시 마찬가지. 엄마아빠들이 참여하는 경기중의 하나인 줄다리기 경기를 알리는 선생님의 안내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엄마아빠들의 신경전도 시작된다.

 

상대편 팀의 선수들이 우리편보다 많다느니, 덩치가 큰 사람이 너무 많으니 참가를 제한해야 한다느니, 운동장이 경사가 져서 상대팀에 유리하다느니 등등.. 

 

경기가 끝나고 승패가 갈려도 마친가지다. 상대팀이 시작도 전에 줄을 잡아당겼다느니, 경기중에 여러명이 달려들어 줄을 당기는 바람에 정당한 승부가 안됐다느니,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랬다느니 등등 패자의 핑계는 끝이 없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런지.

 

하지만 그보다도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가장 큰 짐이었다. 운동회가 열리면 으레 아이와 함께 달리기 등의 종목이 포함됐고 아이들은 승패에 많은 신경을 많이 썼다.

 

행여 아이와 경쟁관계 또는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에게 졌을 때는 아이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나 역시 아이를 업고 달리는 경기에서 내가 싫어하는 친구에게 지자 아빠와 한참동안이나 말을 섞지 않은 기억이 있다.

 

여러 가지 응원도구들도 등장했다. 나무토막을 손바닥 크기만하게 잘라 손잡이를 만들어 박수소리가 크게 날 수 있도록 한 '짝짝이', 노끈을 가늘게 잘라 먼지털이개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응원솔', 음료수 등의 캔에 작은 돌 등을 넣고 색종이로 모양을 꾸민 '흔들이', 색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접었다 폈다하며 응원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 등등.

 

운동회가 끝나면 각종 경기도 경기지만 응원을 하느라 더 힘이 빠졌던 것 같다. 운동회 중간 학교 곳곳에 심겨진 나무그늘 등에서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점심은 얼마나 정감있었던지...

 

하지만 인천으로 전학을 하면서 내가 기억하고 경험했던 운동회의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우선 학생수가 2천여명이 넘다보니 전교생이 한자리에서 운동회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때문에 운동회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뉘어 오전오후로 진행됐고 부모님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굳이 참석을 요구하지 않았고 부모님들이 오신다고 해도 부모님들이 참여할만한 경기도 자녀와 함께하는 경기도 없었다.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눠 운동회를 진행한다고 해도 부모님들까지 들어설만큼 운동장이 넓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늘 전에 다니던 학교가 그리웠고 학교의 운동회가 그리웠고 운동회에서 나와 같이 뛰고 구르던 엄마아빠의 모습이 그리웠고 함께 먹던 운동회의 점심이 그리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초등학생을 키우는 워킹맘이 됐고 아이의 운동회를 다녀왔다. 내가 사는 곳이 광역시에서 20여분거리에 있는 농촌지역이다보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수는 1300여명 된다. 때문에 운동회는 2일에 걸쳐 짝수학년과 홀수학년으로 나눠 진행된다.

 

맞벌이부부도 많은 지라 모든 부모들이 참석하지는 못하고 오전에만 운동회를 진행하고 점심은 급식실에서 먹고 응원을 위한 각종 도구도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속한팀을 응원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함성은 예나지금이나 여전했다.

 

엄마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은 물론 올해는 엄마와 함께 풍선터트리며 달리기 등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게임도 생겼다. 비록 5팀 중 3번째로 들어왔지만 대부분의 경우 3등까지만 상이 주어지기에 아이는 연신 자랑이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부모가 참석하지 못해 시종 시무룩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과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속이 상한 부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1년에 한번쯤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의 학교에서 뛰고 달리는 것도 괞찮다 싶다.

 

물론 직장을 다니는 엄마 아빠들이 1년에 한번쯤은 자녀의 운동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눈치 안 주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08 10:16ⓒ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SBS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운동회 #제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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