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소리를 꿈꾸며 살았던 입내새

[목각인형과 달팽이의 집] 입내새

등록 2009.05.04 08:56수정 2009.05.0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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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내새 할머니는 나를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 위창남


나는 앵무새의 일종으로 '흉내지빠귀'라고도 합니다. 이미 이름에서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냅니다. 한번 들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시 되풀이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답니다. 그 소리가 온 종이 입가에 맴돌죠.

아마 이런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침 출근길 어디선가 들려온 노래가 온 종일 입 안에서 맴도는 날, 그러다가 그 누군가도 똑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간혹 나도 그런답니다. 어디선가 굴뚝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면 또 다른 입내새가 굴뚝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입내새가 오늘 아침에 굴뚝새의 울음소리를 들었구나!' 알 수 있죠.

그런데 나 역시도 아침에 일어나 입내새의 굴뚝새 흉내 내는 소리를 처음 들었으니, 종일 입내새가 흉내 낸 굴뚝새의 소리를 흉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원곡이 아닌 리메이크곡을 따라 하는 것 같은 허망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답니다.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으니까요. 나의 울음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더 끔찍한 날이 있죠. 숲 속 동물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날입니다. 사냥꾼의 올무나 덫에 걸린 동물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이죠. 그런 날은 나도 종일 괴롭습니다. 그 괴로운 소리를 반복해야 하는 내가 정말 싫습니다. 가족을 잃은 동물들은 '저놈이 우리를 두 번 죽인다!'며 화를 내지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날은 한없이 행복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한없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나는 늘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를 꿈꾸며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나는 숲을 떠나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주 먼 길이었죠. 저기 강원도 숲 속에서 서울까지 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냥갑처럼 각진 건물은 비 피할 곳조차도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허름한 건물 처마 밑이 이슬과 비를 피하기는 좋았습니다.


내가 여행지의 숙소로 삼은 곳은 산과 그리 멀지 않은 구룡마을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낮에 한강을 넘어 삼각산까지 돌아보고 다시 돌아와 쉬기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삼각산에서 한강을 넘어가면 타워팰리스라는 거대한 성냥갑 같은 건물이 보입니다. 그 건물 사이로 날아가면 바로 구룡마을이 나오죠.

한파가 몰아친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습니다.

"콜록! 콜록! 추워서 얼어 죽겠다!"

나도 겹겹이 옷을 껴입고 나와 연탄을 가는 할머니의 말을 흉내 내었습니다.

"콜록! 콜록! 추워서 얼어 죽겠다!"

할머니는 처마를 올려다보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나도 너무 추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처음 들었던 말만 입에서 맴돌 뿐이었습니다.

"콜록! 콜록! 추워서…."

할머니는 손을 뻗쳐 나를 붙잡았습니다. 날아가고 싶었지만, 꽁꽁 얼어붙어 날갯짓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품에 안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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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내새 혹시 이름없는 망자의 무덤에서 입내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위창남


"에고 불쌍한 놈, 이 추운 겨울 어쩌자고 거기에서 밤을 지새우누?"
"콜록! 콜록! 추워서…."
"알았다, 알았어."

할머니의 품은 따스했습니다. 밤새 추위에 떨며 보냈던 몸이 풀리면서 나는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뭔가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아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눈을 떠보니 할머니의 품에 모아진 두 손이 나를 꼭 쥐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꼭 쥔 두 손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손은 펴지지가 않았습니다.

"콜록! 콜록! 추워서……."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품도 이젠 더는 따스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쯧쯧, 글쎄 연탄가스 때문에 돌아가셨나 봐. 연탄불이 제대로 붙질 않아 냉골이었다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시더니만…. 품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안고 돌아가셨데. 얼마나 추웠으면 그랬을까?"

"쯧쯧, 글쎄 연탄가스 때문에…."

"세상에, 이 새는 살았나 봐."

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할머니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할머니의 따스한 품, 그러나 할머니는 더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자식들을 찾아 장례를 치렀습니다. 할머니의 묘지는 내가 살던 강원도 숲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간혹 할머니의 묘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콜록! 콜록! 추워서…"하며 울죠.

혹시, 이름 없는 망자의 무덤에서 우는 입내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울음소리를 가만 들어보면 망자가 살아생전 한에 맺혀 내뱉은 말이 들어 있답니다. 천상의 소리를 찾아 떠났던 입내새, 가장 낮은 자들의 소리를 담았으니 그 소원의 얼마를 이룬 것일까요?
#입내새 #어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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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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