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해주겠지? 오해였습니다

어버이날 홀로 계신 어머니, 귀찮은 마음에 '나 혼자쯤' 생각

등록 2009.05.08 22:17수정 2009.05.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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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버이날 딸아이에게서 받은 선물입니다. 딸아이가 직접 그린 카네이션 꽃이 더 예쁘죠?

어버이날 딸아이에게서 받은 선물입니다. 딸아이가 직접 그린 카네이션 꽃이 더 예쁘죠? ⓒ 김순희

▲ 어버이날 딸아이에게서 받은 선물입니다. 딸아이가 직접 그린 카네이션 꽃이 더 예쁘죠? ⓒ 김순희

 

시골 어머니 찾아가자는 남편,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아카시아 향이 유난히 향기로운 오월입니다. 코끝에 와닿는 이 향기만큼이나 마음이 풍성한 그런 날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하루이기도 합니다. 괜히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어서 그런 마음이 더한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더 생각하지 못하고 더 마음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오월, 언제나 변함없이 생각하게 되는 '어버이날',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피곤한 몸으로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길거리마다 꽃집 앞에는 예쁜 카네이션이 놓여 있고, 카네이션이 가득한 바구니들이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듯 그렇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때의 마음을 어느새 잊어버렸다는 게 제 자신에게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잠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을 얻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 자신에게 해보았습니다. 뭔가 제대로 된 것을 해드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제가 한심스럽기까지 한 그런 날이 되었던 셈입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서니 남편은 홀로 계실 시골 어머니를 찾아가자고 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저녁 시간 복잡한 퇴근길에 차를 몰고 나간다는 게 조금은 귀찮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다른 오빠나 언니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맛있는 저녁을 함께 들고 있겠거니 생각을 하고 남편의 제의를 거절을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하니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으셨고, 제가 생각한 것처럼 저녁 드시러 갔다고 생각을 했지요.

 

간단한 저녁을 먹으면서 딸아이는 선물을 받고 싶은지를 재차 물어왔습니다. 자꾸만 딸아이가 묻자 남편과 전 괜히 짜증을 냈습니다. 어린 딸아이가 어버이날에 대한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현실적으로 뭔가 하려는 것에 화가 났던 것입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시골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누군가 왔다 갔으려니 했던 저의 생각과는 달리 기운 없이 받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고, 저녁 먹을 사이도 없이 모내기 때 먹으려고 냇가에서 다슬기를 주워와 삶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사서 그냥 그 먼 길을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 왔더니 기운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와 어머니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은 얼른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서자고 했습니다.

 

당연히 누군가 와서 저녁 먹으며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제 생각이 빗나가고, 저녁마저 못 드시고 계시다는 얘기에 남편은 화를 내며 저에게 한소리를 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가는 길에 마트에 잠시 들러 어머니가 좋아하는 빵과 바나나, 그리고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과 생화가 가득 담긴 바구니 하나를 샀습니다. 올 필요 없다며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자겠다며 수화기를 내려놓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습니다. 그렇게 가는 길에도 제 마음은 늦은 시간 왔다며 귀찮게 여기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머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마음은 더했습니다.

 

닫힌 대문을 열고 어머니를 부르니 누웠다 다시 일어났는지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맞이해주셨습니다. 일부러 왜 왔느냐고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엔 몹시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말 그대로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짜증낼 거라는 제 생각과는 달리 어머니는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지요.

 

저녁 식사도 그르고 피곤해서 잠을 자려 했다는 어머니를 위해 빵과 바나나를 내어 드리고 어버이날 아침에 입으실 옷에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말은 왜 왔느냐고 하시지만 제가 찾아와 준 것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맛있게 빵을 드신 어머니는 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갑자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잠깐이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어쩜 그렇게 가벼울 수가 있는지 모릅니다. 새삼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제 생각만 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너무 죄송한 마음이 더했습니다. 아침에 꼭 카네이션을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돌아왔습니다.

 

학교 등굣날 작은 카드 내미는 딸아이, 하루 전 짜증 낸 것 미안

 

a 정성을 담은 카드 한 장을 받았어요! 예쁜 글씨로 씌여진 카드엔 딸아이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정성을 담은 카드 한 장을 받았어요! 예쁜 글씨로 씌여진 카드엔 딸아이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 김순희

▲ 정성을 담은 카드 한 장을 받았어요! 예쁜 글씨로 씌여진 카드엔 딸아이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 김순희

집에 돌아오니 아직 딸아이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딸아이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자려는 딸아이 옆에 누웠습니다. 어버이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엄마와 아빠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접었습니다. 어쩜 제 자신도 진정한 어버이날에 대한 생각, 반성을 하면서 말입니다.

 

어버이날 아침이었습니다. 딸아이는 학교 등교 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카네이션과 작은 카드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작은 손으로 꽃을 달아주었습니다. 이미 어제 하굣길에 모아둔 용돈으로 준비를 해 놓았던 모양인데 자기 생각엔 그래도 뭔가 아빠와 엄마를 위해 더 멋진 선물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어서 어제 그렇게 물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순간, 미안함에 그리고 고마움에 또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짧은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딸아이는 더 좋은 걸 아빠와 엄마한테 해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야단쳤으니 혼자 얼마나 속상하고 서러웠을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딸아이가 학교에 가고, 한참을 카네이션을 바라봤습니다. 제가 사 드린 카네이션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가슴에 달았다던 어머니의 전화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미안해진 제 마음을 더 울렸습니다.

 

작은 것 하나, 그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이 세상의 부모 마음은 한가지겠지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순간 진심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보다 먼저 마음을 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행복한 어버이날을 보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내년에도 제일 먼저 달려가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 마음만으로 대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09.05.08 22:17ⓒ 2009 OhmyNews
#어버이날 #카네이션꽃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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