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94)

― ‘엄마의 가장 큰 단점’, ‘일본의 자랑이 되지 않는’ 다듬기

등록 2009.05.11 07:52수정 2009.05.1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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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엄마의 가장 큰 단점

 

.. 마미코는 그게 엄마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  《스에요시 아키코/이경옥 옮김-별로 돌아간 소녀》(사계절,2008) 9쪽

 

 '단점(短點)'은 '잘못'이나 '모자람'이나 '아쉬움'으로 다듬어 줍니다.

 

 ┌ 엄마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

 │→ 엄마한테 가장 큰 아쉬움이라고

 │→ 엄마한테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고

 │→ 엄마한테 가장 나쁜 대목이라고

 │→ 엄마가 가장 못하는 일이라고

 └ …

 

 우리가 나라밖 말을 배우던 날부터, 또 아이들한테 나라밖 말을 가르치던 날부터, 우리 말이 퍽 크게 흔들립니다. 나라밖 말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까닭은, 우리 말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삶과 나라밖 삶을 서로 이으면서 좋은 대목을 배우고 아쉬운 대목은 털어내자는 데에 있었을 텐데, 이런 마음을 잊으니 우리 말이 흔들립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이 어떠한 말인가를 찬찬히 느끼거나 돌아보지 못하는 가운데 나라밖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뿌리가 무엇인지, 우리 줏대가 어떠한지, 우리 터전이 어디인지를 곰곰이 되짚고 가슴으로 새기기 앞서 섣불리 나라밖 말을 지식으로 머리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나라밖에서 훌륭하다고 하는 문학을 나라안으로 옮기는 자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말을 익히든 중국말을 익히든 에스파냐말을 익히든, 이 나라에서 나온 문학을 한국사람이 읽도록 한국말로 옮긴다고 한다면,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에스파냐말만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없습니다. 일본말 못지않게 한국말을 잘해야 합니다. 중국 말법 못지않게 한국 말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에스파냐 말투 못지않게 한국 말투를 잘 알아채야 합니다.

 

 그렇지만, 번역 일을 하는 분들 가운데, 또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분들 가운데, 또 아이들 가르치는 몫을 맡은 분들 가운데, 또 방송과 신문을 엮어 나가는 분들 가운데, 우리가 이 땅에서 늘 쓰며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익히거나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분은 몇 사람쯤 되나요. 아니, 한 사람이나마 있기나 한가요. 나라밖 말을 익혀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기려고 할 때에, 바르고 알맞고 살갑고 손쉽도록 추슬러 내려고 얼마나 땀을 흘리고 있습니까.

 

 

ㄴ. 일본의 자랑이 되지 않는

 

.. 자동차 따위를 제아무리 많이 수출한다 할지라도 그런 것은 조금도 일본의 자랑이 되지 않는 것이다 ..  《나카노 고지/서석연 옮김-청빈의 사상》(자유문학사,1993) 264쪽

 

 '수출(輸出)한다'는 '내다 판다'로 다듬습니다. "그런 것은"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런 일은"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되지 않는 것이다"는 "되지 않는다"로 손질합니다.

 

 ┌ 일본의 자랑이 되지 않는 것이다

 │

 │→ 일본한테 자랑이 되지 않는다

 │→ 일본으로서 자랑이 되지 않는다

 │→ 일본한테는 자랑이 되지 않는다

 │→ 일본으로서는 자랑이 되지 않는다

 └ …

 

 일본뿐 아니라 우리 나라도, 자동차를 제아무리 나라밖으로 많이 판다고 하여,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조금도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터럭만큼도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얼마이고 경제성장률이 얼마이고 평균나이가 얼마이고 하는 숫자 또한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구석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랑으로 삼자면, 우리한테는 우리 넋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말과 글이 남다르게 있다는 대목쯤 될 테지요. 자랑으로 여기자면, 우리한테는 우리 얼과 삶을 아름다이 가꾸어 주는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산들이 있다는 대목쯤 되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삶을 돌아본다면, 우리 넋과 이야기를 우리 말과 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업신여길 뿐 아니라 내동댕이를 칩니다. 하찮게 여깁니다. 가볍게 내팽개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네 맑고 고왔던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산들은 어디로 갔는가요. 어느 하늘이 맑고 어느 바람이 시원하며 어느 바다가 깨끗하고 어느 산에 우람하며 어느 들이 싱그러운가요.

 

 ┌ 일본을 자랑하는 일이 되지 않는다

 ├ 일본이 자랑할 일이 되지 않는다

 └ …

 

 남한테 자랑하려고 쓰는 말과 글이 아닙니다. 남한테 내보이려는 자연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삶을 돌보고 가꾸는 말과 글입니다. 그예 우리 마을을 살찌우고 북돋우는 자연입니다.

 

 말 한 마디 옳게 다스리면서 내 넋을 옳게 다스립니다. 글 한 줄 아름다이 여미면서 내 이야기를 아름다이 여밉니다. 물 한 방울 깨끗이 간수하면서 내 마을을 깨끗이 일굽니다. 흙 한 줌 살뜰히 거두면서 내 터전을 살뜰히 보살핍니다.

 

 ┌ 일본이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 일본으로서 자랑할 만하지 않다

 ├ 일본한테는 자랑이 아니다

 └ …

 

 작은 한 가지를 볼 줄 아는 마음일 때 비로소 큰 한 가지를 봅니다. 말 한 마디를 꾸밈없이 들여다보면서 손질할 수 있을 때 바야흐로 우리가 걷는 길이 어떠한가를 톺아보게 됩니다. 큰 한 가지에 매인 채 작은 한 가지를 아무렇게나 다룰 때 언제나 우리 삶자락은 흔들리거나 기우뚱하기 마련입니다. 글 한 줄을 어영부영 대충대충 쓰는 동안 한결같이 우리 매무새는 어영부영과 대충대충이라는 얼거리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말을 말다이 하는 데에서 생각을 생각다이 하는 꽃이 피고, 생각을 생각다이 하는 데에서 일을 일다이 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첫 자락을 옳게 붙잡지 못하면서 몸통과 마무리를 옳게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처음 한 가지부터 끈을 그릇되게 매어 놓고 뒷날 얽히거나 설키지 않고 솔솔 풀려나가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 나라가 이토록 얼빠지고 넋없이 뒹굴고 흐르는 더없이 큰 탓 가운데 하나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놓거나 버린 데에 있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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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7:5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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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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