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부활한 전설의 무대, 조선악극단

70년 전 희귀 자료 발굴

등록 2009.05.14 11:33수정 2009.05.14 11:33
0
원고료로 응원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첫 번째 황금기로 꼽히는 1930년대.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 빼어난 명가수들이 등장해 여전히 불리고 있는 수많은 명가요를 음반에 담아 발표했던 때이다. 그러나 그 황금기도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 대중음악의 달라진 모습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요 활동 영역이 음반에서 무대로 옮겨 갔다는 점이다.

1939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무대 공연 중심의 대중음악은 1945년 광복을 지나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한 무대 공연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반도가극단, 라미라가극단, K.P.K악단 같은 대형 공연단체였고,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동을 펼쳐 지금까지도 전설적 존재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조선악극단이다.


a  <思ひつき夫人> 촬영 직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악극단 기념사진. 맨 오른쪽 앉은 사람이 조선악극단 단장 이철.

<思ひつき夫人> 촬영 직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악극단 기념사진. 맨 오른쪽 앉은 사람이 조선악극단 단장 이철. ⓒ 가요114


조선악극단은 대중음악 음반 분야에서 선두 업체였던 오케레코드를 모체로 조직되었다. 1932년에 설립된 오케레코드는 1933년부터 소속 음악가들로 조직된 연주단을 꾸려 전국 각지는 물론 만주, 일본을 순회했고, 1938년에는 '오케 그랜드쇼'라는 이름을 걸고 더욱 다채로운 대규모 무대를 선보였다. 면모를 일신한 오케 그랜드쇼는 1939년에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시도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조선악극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굴지의 흥행업체인 요시모토와 제휴한 조선악극단의 일본 공연은 1939년 3월부터 5월까지 이어졌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교토 등 일본 주요 도시를 순회한 공연에는 재일교포뿐만 아니라 일본인 관객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일본 음악평론가들의 호평을 실은 기사가 여러 일본 신문과 잡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기대 이상이었던 일본 현지의 호응은 곧 예정에 없던 영화 출연으로도 이어졌다. 일본 메이저 영화사인 도호에서 제작해 1939년 5월 1일에 개봉한 영화 <思ひつき夫人>에 특별출연 형식으로 조선악극단의 공연 장면이 삽입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신문 기사와 광고를 통해 이미 확인이 되었으나,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필름이 공개되지 않아 그 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영화 <思ひつき夫人>에 삽입된 공연 영상 자료가 발굴되어 전설적으로만 이야기되어 온 조선악극단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원형 창작소개 개발 사업' 지원 과제로 선정한 <'노래 조선'을 향한 모던보이 이철의 꿈 -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에 자료 발굴·정리 분야로 참여한 가요114(www.gayo114.com)에서 관련 자료를 입수한 것이다.

가요114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3분 가까이 되는 영상에 고복수, 김정구, 남인수, 이난영, 장세정 등 당대 대중음악계를 주름잡은 쟁쟁한 명가수들과 작곡가 손목인이 지휘하는 조선악극단 전속 C.M.C악단, 기타 조선악극단 멤버들이 <돈타령>, <새날이 밝아 오네> 등 신민요를 공연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현존하는 대중음악 관련 영상으로는 단연 최고(最古)의 자료이다.


a  <思ひつき夫人>에 삽입된 조선악극단 공연 장면. 가운데에서 장구를 치는 사람이 고복수, 고복수 뒤편 오른쪽이 이난영, 고복수 뒤편 왼쪽이 장세정, 맨 오른쪽 소고를 치는 사람이 남인수, 맨 왼쪽에 초립만 보이는 사람이 김정구.

<思ひつき夫人>에 삽입된 조선악극단 공연 장면. 가운데에서 장구를 치는 사람이 고복수, 고복수 뒤편 오른쪽이 이난영, 고복수 뒤편 왼쪽이 장세정, 맨 오른쪽 소고를 치는 사람이 남인수, 맨 왼쪽에 초립만 보이는 사람이 김정구. ⓒ 가요114


1939년 당시 신문 기사에는 가수 이난영, 이화자 등이 <思ひつき夫人>에 출연해 <아리랑> 등의 신민요를 불렀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에 따르자면 이번에 확인된 것 외에 더 많은 조선악극단 공연 영상 자료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가요114 대표 김광우씨는 추가 자료 발굴 및 확보를 위해 조만간 일본 현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과거 명치좌, 시공관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명동예술극장이 몇 년 동안 정비 과정을 거쳐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근대 문화예술의 복원과 정리에 대한 관심이 요즘 부쩍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악극단의 공연 실체가 이번에 부분적으로라도 확인된 것은 근대 대중음악사 복원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문을 연 명동예술극장에서 30~40년대 조선악극단의 공연을 재연해 보는 것이, 어쩌면 그냥 이루지 못할 바람에 그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조선악극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래를 찾는 사람, 노래로 역사를 쓰는 사람, 노래로 세상을 보는 사람.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