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연 <황금나침반>, 막장은 아니었다만

[TV리뷰] SBS 파일럿 <김제동의 황금나침반>, 아쉬움도 많더라

등록 2009.05.16 18:11수정 2009.05.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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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SBS <황금나침반> ⓒ SBS


요즘 방송에서는 흔히 '지상파용', '케이블용'이란 말을 쓰곤 한다. 지상파에서 쓰기 적절한 어휘나 용어, 혹은 다룰 수 있는 주제와 소재를 뭉뚱그려 '지상파용'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것, 지상파에서 다루기 어려운 것들을 소위 '케이블용'이라고 한다. 예컨대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에 게스트로 나온 이승철이 MC들에게 자세한 수입 액수를 말해달란 질문을 받았을 때, "그거 말하면 케이블이지"라고 했던 것은, 지상파에선 어떤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상파에는 케이블과는 다른 어떤 '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용이니 케이블용이니 하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5일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이하 <황금나침반>)은 여러모로 쇼킹한 것이었다. 아무리 심야시간대이지만 '19세 미만 관람 불가' 딱지가 붙어있는 것도 그랬고, 고민을 해결하고 진지한 상담을 받기 위해 나온 게스트 두 명이 각각 룸살롱에서 일하는 텐프로 여성과 여자 100명을 사귀어봤다는 카사노바 남성이라는 점도 그랬다.

업소 여성과 카사노바 남성, 케이블 방송의 단골손님인 이들이 지상파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황금나침반>은 방송 전부터 많은 파장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상파가 케이블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이냐"에서부터 "SBS가 시청률 욕심 때문에 최소한의 선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등등, 누리꾼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그다지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텐프로와 카사노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결국 성(性)에 대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점철될 게 빤하다는 논지였다.

많은 논란 속에 15일 방송은 전파를 탔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썩 나쁘지 않았다. 대단히 훌륭하고 감동적인 프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누리꾼들과 언론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막장'은 아니었다.

선정성 논란 <황금나침반>, 뚜껑 열어보니

구성은 이렇다. 방송 분량은 1시간 남짓, 그 사이에 2명의 게스트가 출연한다. MC는 김제동 단독이고, 패널로는 소설가 이외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정신과 전문의 송형석, 연애 칼럼니스트 임경선, 개그우먼 김현숙 등 5명이다. 게스트로 나온 이들은 현재 자신의 상황, 처지 등을 설명하고, 패널들은 질문하고 진단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방송은 게스트의 말에 담겨진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 날카롭게 지적하는 패널과 그것을 방어하려고 애쓰는 게스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들 사이를 중재하는 것은 주로 김제동의 몫이었다.

방송 전 많은 논란을 일으킨 주원인이었던 텐프로 업소 여성 김시은(23·가명)씨는 첫 번째 게스트로 나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밤에는 텐프로 룸살롱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황금나침반>의 출연을 통해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또 그녀는 그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방송은 그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치중했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텐프로 업소 여성의 현실에 대해 다루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패널들은 자기만의 논리로 무장하여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있는 그녀를 공격적인 질문으로 몰아붙였다. "많은 돈을 벌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김어준은 "그럼 돈을 안 주는 데에도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곡된 남성상, 남성을 바라보는 비틀린 시선에 대해서도 패널들은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세상 남자들의 85%는 바람둥이고, 나머지 15%는 이전에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봐서 더 이상 그런 생각조차 안 드는 사람들이다. 이제 남자는 못 믿겠다"는 그녀에게 이외수는 "콩밭에서 콩이 흔한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하는 해답을 내놨다. 요컨대, 콩밭을 벗어나라는 뜻이다.

과도한 씀씀이도 지적 대상이 됐다. 월 평균 1천만원을 번다는 그녀는 7백만원 정도를 쓴다고 했다. 23살 대학생이 쓰기에는 과한 액수라는 패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자세하게 들어본 지출 내역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과도한 지출에 익숙해져 그것을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만큼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치열항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김시은씨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이자 잠시 녹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녹화가 재개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패널들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씩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김어준은 "직업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 넓은 세계를 위해 방을 나오라"고 했고, 임경선은 "김시은씨가 진짜 내 동생이라면 그만두라고 하겠다. 확 바꾸기 위해 틀을 깨라"고 했다. 끝으로 이외수는 "꿈을 꾸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질문들은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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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이야기를 나눠보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에는 '재벌가 며느리를 목표로 딸을 훈련시키는 극성엄마', '5분 안에 여자를 사로잡는, 5분 카사노바', '서울대 천재 악플러',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등이 출연했다. ⓒ tvN


<황금나침반>은 방송 전 우려했던 것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 않았다. 물론 텐프로 업소의 실상에 대해서, 또 텐프로 업소 여성들의 생활 등이 노출됐지만 그것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타의 케이블 방송과는 차별화를 뒀다고 보여 진다. 포커스는 그런 생활, 환경 속에서 김시은이라는 한 개인이 갖게 된 내면의 상처를 다독여주고, 비틀린 사고방식, 보편적이지 못한 생활패턴 등을 바로잡아 주는 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난 15일의 방송은 어느 정도 기획 의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먼저 패널들의 편중화를 들 수 있는데, 이 날 방송에서 5명의 패널 중 대부분의 시간은 김어준, 임경선 두 명에게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다른 3명의 패널들은 많은 말을 하지 못했다. 김현숙은 존재감이 흐릿했고, 특히 정신과 전문의로 나온 송형석의 비중이 작아 아쉬웠다. 환자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일을 하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게스트를 진단하고 소견을 내는 적극적인 모습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도 시청자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감정적으로 비꼬는 투의 질문이 아니라, 온갖 방어논리로 무장한 게스트의 진실된 속마음을 끄집어내기 위해 날카롭지만 논리적인 성향의 질문이 대부분이긴 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어렵게 방송 출연을 결심한 게스트고, 또 무엇보다 방송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이다. 그 점을 좀 더 감안했더라면 한층 부드러운 방송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6.4%(TNS미디어코리아)의 시청률, <황금나침반>은 동시간대 방송 3사의 시청률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은 12.3%(이하 동일기준)를 기록했고, KBS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8.6%를 기록했다. 방송 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외면했다는 뜻이다. 이 결과를 두고 혹자는 '감동이 막장을 이겼다'고 했다. 그렇지만 <황금나침반>을 본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단히 감동적이지도, 썩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결코 막장은 아니었노라고.
#황금나침반 #텐프로 #카사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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