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77) 뒷밥

[우리 말에 마음쓰기 646] '나라법'과 '나랏법'과 '국법'

등록 2009.05.22 10:45수정 2009.05.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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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라법

 

.. 그들의 고집은 대단하였읍니다. 새 학문을 연구하고 천주교를 믿는 일을 나라법으로 막아 버렸읍니다. 정약용에 대한 임금님의 신임이 점점 두터워지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생겼읍니다 ..  《신경림-정약용》(계몽사,1987) 72쪽

 

 "그들의 고집(固執)은 대단하였읍니다"는 "그들은 고집이 대단하였습니다"나 "그들은 그들 생각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습니다"로 다듬어 봅니다. "정약용에 대(對)한 임금님의 신임(信任)이 점점(漸漸) 두터워지자"는 "정약용을 믿는 임금님 마음이 차츰 두터워지자"나 "임금님이 정약용을 차츰차츰 두터이 믿자"로 손보고, '시기(猜忌)하는'은 '시샘하는'이나 '미워하는'이나 '싫어하는'으로 손봅니다.

 

 ┌ 나라법(-法) : '국법'의 북한어

 └ 국법(國法) : 나라의 법률이나 법규

 

 국어사전에 '나라법'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그러나 실리기만 실릴 뿐, 우리가 널리 쓸 낱말로는 삼지 않습니다. '나라법'은 북녘말이라고 못박습니다. 이리하여, 어린이책에 '나라법'이라는 낱말을 넣은 시인 신경림 님은 '남녘말이 아닌 북녘말을 쓴' 셈입니다.

 

 그런데 '나라법'은 왜 '북녘말'이어야 할까요. 맞춤법 때문일까요. 남녘은 한자를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인가요. 적어도 '나랏법'으로는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는지요. '국법'이든 '국어'이든 '국비'이든 '애국'이든, 이런 낱말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떻게든 이렇게만 적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려나요.

 

 ┌ 나라법 / 나라말 / 나라살림 / 나라돈 / 나라사랑

 └ 국법 / 국어 / 국가재정 / 국비 / 애국

 

 한 나라가 지는 빚을 일컬어 '국채(國債)'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모든 신문들이 '국채'보다는 '나라빚'이라는 낱말을 즐겨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국어사전에까지 '나랏빚'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다만, 국어사전에는 '나라빚'이 아닌 '나랏빚'으로 실리는데, '장마비'를 억지로 '장맛비'로 고쳐쓰라고 우리들을 길들이는 모습과 같습니다.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좀더 슬기롭고 아름다이 갈고닦는 데에는 눈길을 안 두고 있다가 사람들이 자주 쓰고 많이 쓰니 마지못해 국어사전에 겨우 한두 낱말 살짝 얹으면서, 이런 낱말조차 사람들 말씀씀이대로 싣지 않고 사이시옷법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입니다. 나라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일터 사람들이건만, 나라말을 어떻게 다스리며 나라 문화를 어떠한 길로 북돋우면 좋은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나라법'이라는 낱말을 어줍잖으나마 국어사전에 실어 놓았으니, 우리들이 앞으로 우리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또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어찌 일으키고 가다듬고 즐기느냐에 따라, 국어학자들 매무새 또한 조금씩 달라지거나 거듭나지 않겠느냐고 믿어 봅니다.

 

 

ㄴ.뒷밥

 

.. 비 내리던 날, 여럿이 가서 칼국수를 먹고, 비빔국수를 후식으로 나누어 먹었지 ..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 210쪽

 

 '디저트'를 먹지 않던 지난날에는 무엇을 먹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후식'을 먹었을까요? 그러면 '후식'도 먹지 않았던 더 오랜 지난날에는 무엇을 먹었을까요. 그때에는 하나같이 굶주리고 배를 곯며 하루 두어 끼니도 아주 고맙게 먹었을까요.

 

 ┌ 입가심

 │  (1) 입 안을 깨끗하고 시원하게 하는 일

 │     <뭐 입가심 할 만한 것 없을까 / 입가심으로 껌을 씹다>

 │  (2) 밥을 먹고 난 뒤 가볍게 내오는 먹을거리

 │     <입가심으로 배 한 쪽 드셔요 / 입가심으로 차 한 잔>

 │  (3) 더 중요한 일에 앞서 가볍고 산뜻하게 할 수 있는 일

 │     <이쯤이야 입가심이지>

 ├ 입씻이

 │  (1) 어떤 말을 못하게 하려고 돈이나 물건을 주는 일

 │  (2) 입 안을 깨끗하고 시원하게 하는 일

 │

 ├ 후식(後食)

 │  (1) 나중에 먹음

 │  (2) 식사 뒤에 먹는,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따위의 간단한 음식

 │   - 오늘 저녁 후식은 수박이다 / 다과는 간식이나 후식으로 쓴다

 └ 디저트(dessert) : 양식에서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과일 따위의 음식.

       '후식(後食)'으로 순화

     - 식사를 끝내고 디저트로 차 한 잔을 했다

 

 어릴 적 일을 떠올립니다. 어머니는, 밥을 먹은 우리들한테 능금이나 배를 한두 조각 깎아 주면서 "입가심으로 먹어라"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타 줘" 했습니다. 입을 가시려고 먹는 밥이나 물이나 차이기에 말 그대로 '입가심'이라 했습니다. 집에서 무언가 먹을 때에는 언제나 '입가심'이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와 밥을 사먹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밥을 먹든 바깥밥을 먹든 '입가심'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컸습니다. 다만, 서양밥(양식)을 먹는 자리에서는 달랐습니다. 서양밥을 차려 주는 밥집에서는 한결같이 '디저트'만을 이야기했고, 우리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디저트'를 찾았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서양밥집뿐 아니라 여느 밥집에서도 '입가심'이 자취를 감추었고, '후식'과 같은 한자말도 잘 안 쓰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집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입가심'이 꼬리를 감추는 가운데 '디저트'가 또아리를 틉니다.

 

 ┌ 입가심 / 입다심 / 입씻이

 ├ 뒷밥 / 막밥 / 마무리밥

 │

 └ 후식 / 디저트

 

 우리가 먹는 밥을 '앞밥'과 '뒷밥'으로 나눌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배를 채우려고 먹는 밥을 '앞밥'으로 본다면, 입을 가시려고 먹는 밥을 '뒷밥'으로 나타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식-후식'이라 안 하니 '앞밥-뒷밥'이라 할 까닭 없이 '밥-입가심'이라 하면 넉넉합니다만, 오늘날 세상은 옛날 세상과 다르다 여기면서 '입가심'이라는 낱말은 이제는 안 어울린다고 느끼는 마음밭이라 한다면, '뒷밥'이나 '막밥' 같은 낱말을 써 보아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상흐름이라 새로운 낱말을 써야 한다면, 우리 손으로 새로운 낱말을 지어 볼 노릇이며, 우리 깜냥껏 새로운 낱말을 찾아내고 일구고 캐고 갈고닦을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릇, 싸워서 얻는 권리요, 꾸준히 배우고 익히고 가다듬으면서 키우는 시민권이요 정치 문화요 사회 문화라 한다면,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얄딱구리한 말과 꾸준히 싸워서 지키는 말과 글이요, 한결같이 힘내어 새로 배우고 익히고 가다듬으면서 키우는 말과 글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만큼 길을 찾고, 길을 찾는 만큼 문을 열며, 문을 여는 만큼 우리 두 발을 디딘 터전을 아름다이 어루만지거나 껴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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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2 10:4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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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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