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3일 한-EU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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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명제는 어쩌면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박연차 게이트'(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는 국세청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로 시작된 것이다.
박연차 전 회장은 정치인 노무현의 오랜 후원자였다. 박 회장은 한나라당의 후원자(재정위원)이기도 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임채진 검찰총장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권력기관장이다.
그러나 노무현 자신이 임명한 국세청장-검찰총장의 세무조사 및 고발과 수사로 인해 도덕성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자살을 택했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또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죽은 권력에는 강한 검찰 조직의 생리가 이 대통령의 허물을 덮어줄 것도 아니다. 두 사람(검찰총장, 국세청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이 대통령 밑에서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의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의심한다.
국세청, 620위권 신발공장 탈탈 털어 세무조사 후 MB에 독대보고먼저, 특별세무조사.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조사를 맡았다. 재벌도 아니고 매출 규모 620위권 규모의 지방 신발공장을 털기 위해 재계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조사4국이 나선 것이다. 모기 잡으러 장검을 빼 든 격이다. 누가 봐도 표적 조사였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이 잡듯이 뒤졌다. 겁이 난 박연차 회장은 MB의 남자인 추부길 전 비서관에게 SOS를 쳤다. 사돈인 김정복 전 중부국세청장과 이종찬 민정수석 그리고 MB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도 SOS를 쳤다. 이들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했다. 이 세무조사 대책회의 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세무조사 결과는 국세청장이 민정수석까지 배제한 채 직접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태광실업은 탈세(242억 원) 혐의로 고발되었고 세무조사 자료는 고스란히 검찰에 넘겨졌다. 설령 MB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정황상 국세청장은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사실관계 파악에 머물지 않고 최소한 국세청의 고발을 묵인했다.
한상률 청장은 지난 3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 그를 둘러싼 그림 상납 의혹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그후 국세청장 자리는 다섯 달째 공석이다. 국세청장 자리가 이렇게 장기간 비어 있기는 건국 이후 처음이다. 모든 것이 석연찮다. 정치보복 의혹은 그래서 나온다.
검찰, 사돈네 팔촌까지 주머니 뒤지고 강금원 2번 구속검찰 수사는 어쨌나. 국세청의 태광실업 고발사건은 수사과정을 검찰총장에게 직보하는 대검 중수부에 맡겨졌다. 국세청 고발은 연 수백 건이 넘지만 대검 중수부가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검찰은 즉각 박연차 전 회장을 구속하고 이어 노건평씨도 구속했다.
검찰은 올 1월 중수부 인력(검사)을 5명에서 13명으로 보강했다. 이는 검찰의 칼끝이 전직 대통령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후 넉 달 동안 중수부 검사와 베테랑 수사관들이 노무현의 친구의 친구와 사돈네 팔촌까지 돈 주머니를 이 잡듯 뒤졌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노건평씨는 27일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토로했다.
"검찰이 사위(연철호) 부모 계좌추적까지 하고, 전화도 몇 통씩 넣었다. 또 여기저기서 친한 사람들이 계속 검찰 수사 받고 있다고 이야기 나오니깐, (노 대통령이) 그때부터 말문을 닫고 고심했다."확실히 검찰 수사는 여느 때와 달랐다. 검찰은 박연차 회장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또다른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구속했다. 같은 돈이라도 강 회장의 돈은 성격이 달랐다. 강 회장 회사는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회사다. 개인회사 돈이라고 마음대로 가져다 써선 안 되지만 주식회사보다는 덜 엄격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강 회장을 탈탈 털어 2번이나 구속했다. 한 번은 재임 중에, 한 번은 퇴임 후에.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7일 홈페이지에 올린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비통함을 썼다.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그는 23일 남긴 유서에도 이렇게 썼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