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멀쩡한 교육과정에도 '삽질'할 건가

[주장] '졸속개편', '비밀연구' 미래형교육과정 개편 중단해야

등록 2009.06.02 09:27수정 2009.06.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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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온 국민이 추모열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5월 31일, 정부는 드디어 멀쩡한 교육과정에 '삽질'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미래형 교육과정'.

 

현재 고등학교 1학년까지 배우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9년으로 축소하여 2012년부터 고등학교를 선택으로 돌려주면 획일적 교육이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변할 거란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 학기에 배우는 과목수를 줄이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6교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교과목이 아니라 대학입시

 

a  4월 24일 광주에서 미래형교육과정 3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를 본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한가지밖에 선택을 할 수 없게 해놓고 선택을 하라는 거냐?"라고 항변하셨다고 합니다.

4월 24일 광주에서 미래형교육과정 3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를 본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한가지밖에 선택을 할 수 없게 해놓고 선택을 하라는 거냐?"라고 항변하셨다고 합니다. ⓒ 교육희망

4월 24일 광주에서 미래형교육과정 3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를 본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한가지밖에 선택을 할 수 없게 해놓고 선택을 하라는 거냐?"라고 항변하셨다고 합니다. ⓒ 교육희망

그런데, 우리 교육이 획일적인 건 교과목 문제보다 대학입시 때문이라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일이다. 2003년부터 이루어진 고등학교 2, 3학년 선택교육과정은 국영수 입시교육으로 전락했다. 이런데도 고등학교 전체를 선택형으로 하면 고등학교는 이제 입시학원으로 전락하고 학문기초 붕괴로 우리 사회 미래도 무너질지 모른다. 또 홍익인간이념도 포기하고 대기업 사원에게나 적합한 내용만 늘어놓아 교육시민단체들은 엘리트 교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교육과정 개정을 논할 때가 아니다. 원래 교육과정은 만들고 준비하기까지 5년이 넘게 걸려 학교에서 실시하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연구하여 2007년 고시한 교육과정이 올해 초등학교, 내년에 중1, 내후년에 고1을 대상으로 시행하면 2013년에야 전체학교가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걸 다 무시하고 2012년에 또 다른 교육과정을 시행한다니, 교육이 무슨 옷 하나 껴입는 것도 아니고 어쩌자는 것인가?

 

a  2007개정교육과정 시행 일정표입니다. 2004년부터 연구하여 2007년도에 고시하여 지금 교과서개발과 각종 현장지원방안이 연구중입니다. 이렇게 오래 연구하고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미래형교육과정은 6개월만에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2007개정교육과정 시행 일정표입니다. 2004년부터 연구하여 2007년도에 고시하여 지금 교과서개발과 각종 현장지원방안이 연구중입니다. 이렇게 오래 연구하고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미래형교육과정은 6개월만에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신은희

2007개정교육과정 시행 일정표입니다. 2004년부터 연구하여 2007년도에 고시하여 지금 교과서개발과 각종 현장지원방안이 연구중입니다. 이렇게 오래 연구하고 시행해도 문제가 많은데 미래형교육과정은 6개월만에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신은희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나 시간 수뿐만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미래 인간상까지 아우른 교육계획표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만들어 정권임기 안에 시행하겠다는 건 독재정권의 정권이데올로기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 멀쩡하게 만든 교육과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버리고 새 교육과정을 만들자는 건 멀쩡한 강을 뒤집어 운하를 파자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절차무시, 비밀연구 방식부터 고쳐야

 

게다가 미래형교육과정은 절차도 무시하고 비밀연구를 해왔다. 교육과정을 바꾸려면 먼저 현재 문제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사회 각층의 의견을 모은 뒤 교육과정 심의회를 거쳐 초등학교부터 시행해야 한다. 교육과정심의회는 작년 12월 거의 임기가 끝났는데 새로 만들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절차를 다 무시하고 비밀리에 교육과정특위를 만들었다. 한 나라의 교육을 이야기하는데 각계각층은커녕 교육철학이나 교육사회학자 등 다른 교육학자들도 빠져 철학적 기반도 빈약하다. 그 특위마저도 그나마 TF팀에서 연구한 걸 검토만 한 수준이라고 한다.

 

아무리 비밀리에 만든 연구라 해도 실현가능성이나 부작용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음대로 이런 내용을 다른 정책에 포함시켜 발표하고 기정사실로 호도하고 있다. 학교마다 수업 시수나 내용을 20%씩 자율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은 지난 4월 30일 학교자율화방안으로 발표하고, 사교육경감대책에도 들어가 있다. 대부분 국영수교육, 입시교육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들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여

 

대체 왜 이렇게 급하게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일까? 그건 바로 MB공약인 고교다양화정책을 위해서다. 자율형사립고는 학부모에게 돈 많이 걷어서 입시교육을 하려는 곳이다. 이런 학교들이 수업시간 늘리고 예체능이나 인성교육 무시하고 입시교육을 합법적으로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미래형교육과정이다.

 

수업시간을 마음대로 늘리고 특별활동 시간에 교과학습을 할 수 있으니 이제 더 이상 0교시나 강제 보충 비난 듣지 않고 이중장부 시간표 만들 필요없이 서울대, 연고대 반 보충학습도 할 수 있다. 이러면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조금 더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입시경쟁교육이 더 치열해지고 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고 건강도 잃게 될 것이다. 일제고사도 교육과정에 명시하여, 시험으로 줄세우는 것도 합법교육이 된다. 그래서 MB는 50년의 관행을 무시하고 고등학교부터 정권 입맛에 맞게 바꿔버리려는 것이다.

 

대운하가 우리 민족에게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것처럼 미래형교육과정도 무상의무교육을 늘리기는커녕 학부모들에게 교육비만 늘리고 공교육의 틀을 뿌리째 흔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부당한 시책은 거부할 수 있지만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와 내용은 법과 비슷해서 모든 학교가 나쁜 걸 알더라도 그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바꾸는 것조차 비용과 기간을 생각할 때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될 뿐이다. MB정부는 현재 준비 중인 교육과정부터 제대로 시행하고 미래형교육과정논의는 그 필요성부터 다시 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철저하게 공개하고 민주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부는 학생들을 입시교육으로 내몰고 고등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 미래형교육과정을 졸속으로 만들고 암암리에 공표하고 있습니다. 법치를 강조하는 정부인 만큼 제대로 된 연구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제대로 교육과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2009.06.02 09:27ⓒ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정부는 학생들을 입시교육으로 내몰고 고등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 미래형교육과정을 졸속으로 만들고 암암리에 공표하고 있습니다. 법치를 강조하는 정부인 만큼 제대로 된 연구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제대로 교육과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미래형교육과정 #MB교육과정 #교육과정특위 #학교자율화 #고교다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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