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품위 저버린 사람은 나 아닌 한 청장"

[인터뷰] 한상률 전 청장 비판한 김동일 나주세무서 계장

등록 2009.06.12 13:37수정 2009.06.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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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니 도대체 누가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저버렸습니까. 국세청에 대한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시민단체에 고발당하고, 불명예스럽게 미국으로 출국한 (한상률) 전 청장입니까. 아니면, 그런 잘못을 비판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자고 말한 사람입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답답하다'는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김동일 전남 나주세무서 소득지원계장(47). 12일 오전 김 계장은 광주지방국세청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후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 계장은 지난달 28일 국세청 내부통신망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광주지방국세청으로부터 지난 8일 직위해제를 통보받았다. 국세청은 12일 오전 김 계장을 출석시킨후, 징계위원회를 열고 파면과 해임 등 중징계 여부를 논의했다. 최종 결론은 오는 15일께 나올 예정이다.

김 계장은 "국세청이 징계위원회를 열기도 전에 이미 직위해제를 통보한 것은 이미 나에 대해 파면이나 해임 등을 결정해 놓고, 형식적인 절차만 밟고 있는 것"이라며 "징계위에 출석해 이번 징계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해야"

그는 이어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면서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국세청 스스로 잘못이 없는지 낱낱이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계장은 또 "국세청에서 다음주 월요일께 서면으로 (징계 결과를) 통보해준다고 들었다"면서 "파면이나 해임 등이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는 "해임 이상의 중징계가 나올 경우, 행정안전부의 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를 제기하는 등 법적 구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국세청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면서,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한편, 김 계장에 대한 국세청의 중징계 결정의 파장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을 비롯해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도 연일 국세청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논평과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12일 징계위원회가 열린 광주지방국세청 앞에선 한국투명성기구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 계장의 징계철회을 요구했다.


다음은 김 계장과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

- 오늘 오전에 광주지방국세청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는데, 참석했나.
"(징계위에) 참석해서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 한때 징계위 자체가 부당해 참석을 거부하겠다고도 했는데.
"지난달 28일에 내가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리자마자, 광주지방국세청 감사관실에서 나와서 나를 조사했다. 그리고 징계위원회가 열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다. 통보서에는 이미 나를 파면이나 해임 등의 징계가 필요한 사람으로 돼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 지난달 28일 국세청 게시판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듣고, 많은 국민들이 애통해하지 않았나. 그리고 언론에서 이번 서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표적 세무조사라는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세청 직원으로서 자괴감도 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 국세청에선 김 계장의 글이 공무원의 품위유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목소리를 높이며) 도대체 누가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저버렸나. 국세청의 수장으로서 시민단체에 고발당하고, 불명예스럽게 미국으로 출국한 (한상률) 전 청장인가. 아니면, 그런 잘못을 비판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자고 말한 사람인가."

- (국세청은) 전 청장에 대한 말 그대로 의혹들을 가지고, 내부 직원이 실명으로 비판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곧바로) 그래서 국세청 스스로 정말 문제가 없었는지 떳떳이 조사해서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지금 국세청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불신이 높나. 일부 국세청 수뇌부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수많은 국세공무원들까지 불신의 대상이 되지 않나. 이것을 고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징계위에 들어가서 그런 말들을 했나.
"그렇다. 징계위원들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을 알지도 못하면서 글을 쓰고, 외부에 유출한 것을 문제 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한 각종 의혹들은 이미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이것을 제대로 조사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국가기관의 도리이지, 이를 말하는 사람을 문제 삼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국세청 스스로 철저히 조사해서 국민에게 낱낱이 밝혀야"

-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외부로 유출하지는 않았나.
"나는 우리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을 뿐이다. 외부로 글을 알린 적도 없다. 지난달 28일에 올린 글은 내부 조회수가 6000건이 넘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직원 가운데 3분의 1이 글을 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세청에서 정말 글에 문제가 있다고 했으면, 곧바로 조치를 취했어야지, 뒤늦게 삭제하고 문제 삼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 징계위에서 어떻게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미 직위해제 통보서에 파면이나 해임 등의 징계가 요구된다고 써 있었다. 아마 둘 중의 하나로 징계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 둘 중 하나의 징계가 나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10일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허병익 국세청장 직무대행(차장) 등에 대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국세청으로부터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는 이유를 들어 진정했다.

국세청에선 최종 징계 결정을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까지 서면으로 통보해준다고 들었다. 만약 파면이나, 해임 등의 결정이 나올 경우 행정안전부의 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를 제기하는 등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 현재 심경은 어떤가.
"나에게 고3인 아들과 고1인 딸이 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일 뿐이다. 국세청에선 내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품 안에서 존재한다. 국민의 품을 떠나게 되면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국민의 품 안에 존재하기 위해선 신뢰를 회복해야한다. 국세청 스스로 철저히 이번 사건을 조사해서 국민에게 밝히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세청 #한상률 #김동일 #박연차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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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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