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는 왜 대동여지도에서 독도를 뺐을까?

박범신의 <고산자>

등록 2009.06.18 10:28수정 2009.06.18 10:28
1
원고료로 응원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불리는 박범신. 그는 1973년에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를 선도한다. 그가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포탈사이트에 <촐라체>를 연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순수문학을 포탈사이트에서 보는 것이 지금도 낯설게 여겨지는 터인데, 최초로 연재를 할 때는 어떻겠는가. 사람들의 걱정은 컸다. 하지만 박범신은 그것을 잘해냈다.

 

그 작가가 다시 도전을 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고산자>를 발표한 것인데 이번 작품도 <촐라체>가 그랬듯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첫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고산자>겉표지 ⓒ 문학동네

<고산자>겉표지 ⓒ 문학동네

그가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고산자가 품었던 '이상'에 있다. 나라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정치도 그랬듯 지리적인 안내도 그랬다. 홍경래의 난이 발생하자 조정은 백성들을 모아서 전쟁터로 보낸다. 평생 창칼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을 싸우라고 내보낸 것이다. 그들을 보낸 가족들의 마음은 어찌했을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이 진압된 후에도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그 마음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김정호가 살던 마을도 그랬다. 사람들은 현감에게 가족이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말하려 하자 현감은 되레 "반란군에 가담하려 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처형당할까 두려워 어디로 내뺀 것"이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그 순간, 김정호가 나선다. 열 살배기 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주십사"라며 현감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어려운 일이었다. 현감이 들어줄리 만무했다. 하지만 김정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혹은 민심을 달래려 했는지 관가가 청을 들어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실종된 마을 사람들을 찾게 된다. 찾기는 찾았는데, 그들은 살아있지 않았다. 관에서 준 잘못된 지도를 믿고 길을 찾다가 산속에서 굶어죽은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분노했고 좌절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나라가 알려주는 길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김정호는 달랐다. 그는 그와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박범신은 어른이 된 김정호의 현재와 과거를 차례로 이야기하면서 그가 '길'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역사적인 지식으로 본다면 그 길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다. 하지만 <고산자>에서 김정호가 찾는 것은 그것 이상의 것이다. 조선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철학적인 '길'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김정호가 겪어야 했던 고난이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가 내딛는 모든 곳이 가시밭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걸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박범신은 그 과정을 담담히, 그러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산자의 장인정신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 게다.

 

그렇게 소설에 뛰어들어 고산자를 뒤쫓는데 어느 순간, 당황스럽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국인이라면 그럴 것이다. '독도'이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넣지 않은 것이고 그로 인해 비판을 받는 것이다.

 

"우산도(于山島, 독도)는 어떤가."

"우산도라 하시면……"

"그 대동여지도 말일세. 우산도는 표기가 되어 있는가."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동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워낙 작은 무인도라서 뺐습니다만." (…)

"그럼 직접 못 봐서 뺐다?"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위당이 다그친다.

"천륜을 어길 셈이네그려. 안 그렇소, 고산자? 자고로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자관계요. 우산도를 일러 자산도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어머니가 있으면 그 자식이 딸리는 게 천륜이거늘, 어찌하여 모자를 떼어놓는단 말인가. 우산국이라 하는 것도 울릉도와 우산도를 묶어 말하는 것은 고산자도 잘 알 터이니." -<고산자> 중에서-

 

김정호가 독도를 뺀 이유는 무엇인가? 독도를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에게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일까? 소설 속의 고산자는 독도를 빼야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더라도, '이용후생'의 입장과 현실적인 문제로 그리 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장인정신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목이다. 또한 생각할 거리도 많은 대목이기도 하다. 하기야 '독도'문제만 그렇겠는가. '간도'가 없는 것도 그렇다. 이런 정치적인 문제 말고도 '김정호'라는 인물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많다. 김정호의 처와 딸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렇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김정호라는 인물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이 단지 그를 '대동여지도'로만 기억하기에 그런 것일 게다.

 

박범신이 역사소설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논란거리에서 가늠된다. 누구보다 국토를 사랑했고 조선 사람들을 아꼈던 김정호, 나라가 알려주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으려 했던 고산자를 다시금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일 게다. '영원한 청년작가'다운 시도인 셈이고 덕분에 긴 시간을 넘어 비로소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산자의 숨소리를.

고산자 - 2009년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문학동네, 2009


#박범신 #고산자 #대동여지도 #역사소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딸이 바꿔 놓은 우리 가족의 운명... 이보다 좋을 수 없다
  2. 2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3. 3 카자흐스탄 언론 "김 여사 동안 외모 비결은 성형"
  4. 4 '헌법 84조' 띄운 한동훈, 오판했다
  5. 5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