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사건'은 '법대로' 재판 받은 걸까?

[서평] 인터뷰 전문작가 서형씨가 펴낸 <부러진 화살>

등록 2009.06.27 10:31수정 2009.06.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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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작가인 서형씨가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를 처음 만난 곳은 지난 2007년 8월 서울 동부지방법원 1호 법정에서였다. 당시 이곳에서는 '석궁사건' 7차 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형씨에게 이 재판은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이었다. 불량스럽기 그지없는 피고인(김명호 전 교수), 핵심증인(박홍우 부장판사)의 변호인 신문을 가로막는 재판장, 피고인에 경멸적인 반면 핵심증인에게 깍듯한 검사 등등.


서형씨는 "이 이상한 2시간짜리 재판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부터 2년여 동안 그는 '석궁사건'에 매달렸다. 

'석궁테러'와 '석궁시위' 사이에서 '공정한 법 집행'을 묻다

a  인터뷰 전문작가 서형씨는 2년여 동안 '석궁사건'을 취재해 <부러진 화살>을 펴냈다.

인터뷰 전문작가 서형씨는 2년여 동안 '석궁사건'을 취재해 <부러진 화살>을 펴냈다. ⓒ 후마니타스

서형씨는 김명호 전 교수는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 변호사들, 가족들, 현직 부장판사, 법원 직원, 기자, 피디, 사법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특히 1심부터 항소심까지 거의 모든 재판에 참관해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와 사법부의 싸움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최근 나온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은 그렇게 2년여 동안 석궁사건을 '탐사'한 결과물이다. 부제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이다.  

'석궁사건'은 지난 2007년 1월 자신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한 대학교수(김명호)가 담당 부장판사(박홍우)의 집을 찾아가 석궁으로 위해를 가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부와 언론에서는 "석궁테러"라고 명명한 반면, 김명호 전 교수는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며 "석궁시위"라고 불렀다.


김 전 교수는 석궁사건으로 지난 2007년 10월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되었고, 그는 현재 의정부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석궁사건의 핵심 쟁점은 ▲석궁발사의 고의성 여부 ▲혈흔이 없는 박홍우 판사의 와이셔츠 ▲부러진 화살의 행방 ▲지문감식을 하지 않은 채 수리한 석궁 등이었다. 이러한 쟁점들을 둘러싸고 김 전 교수와 검찰은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쟁점들의 최종 진실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이 보여주고자 하는 최종 맥락은 '법 집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좀더 본질적 문제에 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법'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법은 누굴 위해 있는 것일까. 판사들은 법의 공정한 집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재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이 질문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사건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사법 정의가 법 집행자들에 의해 실천되지 못한다면 법원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대체 법원은 무엇이고 재판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김 전 교수(혹은 그의 변호인)와 판사, 검사 사이에 진행되는 재판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법 집행 과정'의 실체 혹은 '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상한 재판부·검찰, 사건의 실체를 판단할 절차들을 거부하다

 성균관대 해직 교수 김명호씨

성균관대 해직 교수 김명호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김 전 교수측은 재판부에 혈흔 감정을 신청했다. 박홍우 판사의 옷가지에 묻어 있는 혈흔이 박 판사의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혈흔 감정 신청은 기각됐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감정을 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확보해야 하는데 확보할 방법이 마땅히 없습니다. 기각하겠습니다."(김회기 재판장)

이에 김 전 교수측의 박훈 변호사는 "그것은 법원의 권한 아니냐"며 "우리가 감정신청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 피해자에게 피를 달라고 하던가, 뭐 못주겠다고 하면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해서 강제로라도 집행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야 했다.

재판부는 석궁 발사의 고의성 여부와 직결되는 석궁 실험 신청도 기각했다.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들을 재판부가 거부한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검찰의 태도였다. 사실 검찰이 김 전 교수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혈은 감정, 석궁 실험 등을 신청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유죄 입증에 책임을 져야 할 검찰은 "이런 신청은 무의미하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였다.

"정면으로 쐈는지 옆으로 쐈는지 실랑이를 하다가 우연히 발사가 됐는지 그 각도는 피고인도 모르는데 검증을 해서 뭘 알아내시겠다는 것입니까?"(박혜경 검사)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는 국가기관'이라는 검사의 정의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또한 항소심 공판에서는 박홍우 판사 증인 신청마저 기각되었다. 피해자이자 핵심증인인 박 판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고 있었기 때문에 증인 신청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지만, 재판부는 "1심에 증인으로 나와 반대 신문까지 다 마쳐서 더 할 게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김 전 교수가 "박홍우의 진술이 홍성훈 형사의 증언하고 어긋나는데 재판장님은 박홍우의 진술을 전부 인정한다는 겁니까?"라고 따져묻자 신태길 재판장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사안의 실체에 관해서는 재판장에게 묻지 마십시오."

이런 기묘한 장면들은 재판 곳곳에서 출몰한다. 특히 <부러진 화살>의 4장('별난 재판의 풍경')과 5장('형사소송법을 지켜라')을 읽다 보면 '석궁사건은 법대로 재판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생겨난다.  

"국민이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가 더 신성한 것 아닌가요?"

석궁사건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대체로 냉정하다. 책 출간이 김 전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는 그의 고백이 하나의 증거다. 그는 "김 전 교수가 피곤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특히 취재과정에서 김 교수로부터 심한 마음의 상처까지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주는 피곤함은 상식과 기본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문제에 비할 바가 못된다"며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따지는 김 교수를 그냥 봐주면 되는 것일 뿐 더 이상 그걸 핑계로 석궁사건 재판과 같은 야망과 비이성의 추악한 일에 눈감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원래 저자는 3대 권력기관(청와대·국회·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취재하다 석궁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가 만난 한 사법 피해자의 말에는 <부러진 화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교수나 나나 마찬가지만, 우리가 이기느냐 지느냐 가지고 이렇게 억울하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따져주고 넘어갔으면 그런 비극이 없었다는 거죠. 판사들은 법의 수호자라며 침해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를 운운하는데, 솔직히 국민으로서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가 우선이고 그게 더 신성한 거 아닌가요?"(김성순씨)

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2012


#석궁사건 #서형 #부러진 화살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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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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