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시오! 나 좀 살려주소!"

지난 겨울밤 이웃집에서 들려온 목소리

등록 2009.06.28 14:43수정 2009.06.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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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문을 잠그고 외출을 하려고 급하게 나서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수롭지 않게 듣고 얼른 나가려는데 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귀를 기울여보니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조심스레 귀를 귀울이니 "이보시오! 이보시오!"하며 외치는 소리였다.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밤에 일을 하는 나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문을 살짝 열어보니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사람이 보이지 않기에 조심스레 "무슨 일이세요?"하고 말을 던졌더니 방안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시오! 나 좀 살려주소!"

 

나는 솔직히 무서웠지만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나는 더 무서웠다. 할머니 한 분이 한겨울인데 차가운 방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악취가 진동을 했다.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 꼼짝을 못해서 누운 채로 용변을 다 보셨다고 하셨다.

 

방안을 둘러보니 할머니 머리맡엔 빵 한 조각과 생수 한 통이 놓여 있었고 작은 수첩하나가 놓여있었다.

 

"할머니. 왜 이러고 계세요? 혼자 사세요?"하고 물으니 혼자 산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4남매를 낳아서 행상을 해서 다들 대학까지 보내고 자녀들이 다들 좋은 직장에 근무한다고 했다. 아들들이 근무하는 회사며 딸이 근무하는 회사까지 다 알고 계셨다.

 

자식들이 다 잘 커서 결혼을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할머니와 함께 살려고 하지 않았고 할머니 혼자 사시라고 방을 얻어 줬단다.

 

할머니는 내게, 병원에 가게 아들한테 전화를 해달라며 머리맡에 있던 수첩을 내미시며 아들 이름을 불러줬다.

 

아들 셋에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중에 셋째 아들이 할머니께 제일 잘했었는데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엊그저께 큰 며느리가 와서 허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데 왜 빨리 죽지도 않아 아들 힘들게 하냐고 소리치고 빵하고 물 하나 주고 가버렸어. 추운데 보일러도 안 켜주고..."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내 앞에서 펼쳐지니 믿기지 않았지만 정말로 추운데 보일러도 켜있지 않았고 할머니가 말하신 그대로 먹지도 않고 3일 동안 머리맡에 놓여있었다는 빵과 물이 보여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난 전화를 해드리겠다고 하고 할머니께 먼저 이불을 덮어드린 후, 수첩을 뒤져 큰 아들 이름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큰 아들 이름이 적힌 전화번호가 볼펜으로 죽죽 그어져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시 할머니께 작은 아들의 이름을 물어서 찾아보니 그 역시도 마찬가지로 볼펜으로 검게 칠해져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딸은 이미 안 보고 산지 오래라서 번호도 모른다고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다른 번호는 다 멀쩡한데 두 아들의 번호만 알아 볼 수가 없게 낙서가 되어 있었다.

 

아들이 근무한다는 은행이 서울에 있다고는 하는데 서울 어느 지점에서 근무를 하는지를 모르니 114에 물어도 소용없는 일이었고 난 결국 허리가 아파 꼼짝 못하는 할머니를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게 도와드렸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119 차에 탄 할머니는 나를 부르시더니 이불 속에 돈이 있으니 그걸 좀 가져다 달라고 하셨고 이불 속을 보니 3천원이 든 투명봉투가 있었다.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따라갈 수 없어 119대원들과 할머니만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 말씀이 다 사실이라면  新고려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란 무얼까. 부모란 무얼까.7살에 엄마를 잃고 10대 후반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나이 드신 분들만 보면 누구의 부모일까 참 부러웠었는데.

 

며칠 후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할머니가 병원에 오래 계실 것 같아 집을 내놔야겠다며 며느리가 왔다. 며느리는 시종일관 골치 아픈 노인네라고, 병원비도 많이 나와서 병원을 먼 곳으로 옮겨야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난 아무 것도 모른 체하고 다 들어주었지만 참으로 씁쓸했다.

 

그 후론 집도 이사를 해버려서 할머니를 한 번도 뵙질 못했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터인데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잠시 생각을 해 봤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누군 기대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젊음은 절대 영원하지 않고 그 아픈 어머니가 가는 길을 우리도 분명 갈 터인데. 나만이라도 각박하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왜 두 아들 번호에만 알아볼 수 없게 볼펜으로 그어져 있었을까.

덧붙이는 글 | 라디오 홈피에도 올립니다

2009.06.28 14:4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라디오 홈피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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