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향마을, 추억의 흔적도 모두 사라져

등록 2009.07.06 15:36수정 2009.07.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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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향마을에서 바라본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지 사진은 지난해 모습으로 지금은 농사를 짓지않고 있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지가 될 전월산과 원수산입니다.

고향마을에서 바라본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지 사진은 지난해 모습으로 지금은 농사를 짓지않고 있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지가 될 전월산과 원수산입니다. ⓒ 김동이

▲ 고향마을에서 바라본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심지 사진은 지난해 모습으로 지금은 농사를 짓지않고 있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지가 될 전월산과 원수산입니다. ⓒ 김동이

'고향'하면 첫 느낌이 왠지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하며, 살아가면서 겪은 모든 추억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동경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면 고향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자식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신 부모님의 모습을 회상하며 눈물을 떨구곤 합니다.

 

이처럼 '고향'은 힘들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때로는 위안을 삼을 수 있고, 때로는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바로 어머니의 품속입니다.

 

저도 고향이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요. 굳이 찾아가면 가 볼 수는 있지만 제가 태어나서 어릴 적 추억을 만들었던 집도 사라졌고, 동무들과 함께 뛰어놀던 놀이터도 그 흔적을 감춘 터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저의 고향은 국가의 대프로젝트로 인해 희생양이 된 충남 연기의 한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새 소리에 잠을 깨고, 여름에는 마당 평상을 무대삼아, 매미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죠.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던 조그만 시골마을이 들썩이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습니다. 보상이 시작되고 저 위에서는 언제까지 집을 비우고 마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이 오면서부터 아무리 급해도 마음만은 여유 있게 살아왔던 충청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보상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디 시골에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여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잃게 되었죠. 마땅히 갈 곳도 없었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고향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a 이주 초기 마을 풍경 마을에서 이사를 가면 바로 중장비가 투입돼 집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 지금은 아예 마을 전체가 평지가 되어 버렸다.

이주 초기 마을 풍경 마을에서 이사를 가면 바로 중장비가 투입돼 집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 지금은 아예 마을 전체가 평지가 되어 버렸다. ⓒ 김동이

▲ 이주 초기 마을 풍경 마을에서 이사를 가면 바로 중장비가 투입돼 집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 지금은 아예 마을 전체가 평지가 되어 버렸다. ⓒ 김동이

한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해 왔던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몇몇 분들은 같은 아파트로 나와서 둥지를 틀었지만, 그곳이 타향인지라 어디 고향마을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마을의 정자에서 만나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걸치던 그런 모습은 이젠 모두 추억이 되어 버린 셈이죠.

 

저도 다른 고향분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고향마을을 떠나와 타지에 살고 있고, 그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정(情) 붙이고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나고 자라고, 추억이 베인 고향마을에서 살던 것처럼 고향 이름만 들어도 어머니의 품속과 같이 마음의 평온을 얻기까지는 아마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걸릴 듯합니다.

 

물론, 하루빨리 지금 있는 곳에서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마을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고향 잃은 아픔을 겪은 저로서는 제 후손들에게는 절대로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구요.

 

a 지금은 사라진 고향집 고향집은 이사한 뒤로 굴착기 등의 중장비가 들어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중에 고향집이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는지.

지금은 사라진 고향집 고향집은 이사한 뒤로 굴착기 등의 중장비가 들어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중에 고향집이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는지. ⓒ 김동이

▲ 지금은 사라진 고향집 고향집은 이사한 뒤로 굴착기 등의 중장비가 들어와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중에 고향집이 있던 자리를 찾을 수 있을는지. ⓒ 김동이

지금도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고향마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자의적으로 고향을 등지고 떠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쫓겨난 만큼 같은 마을에 살았던 고향분들이 어느 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고 있든 간에 그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대중가요 노래 중에 '머나먼 남쪽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고향은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저를 기다리는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가까이 있지만 누구 하나 반겨주는 가족 하나 없어 차마 발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는 '머나먼 고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2009.07.06 15:36ⓒ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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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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