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줍기의 슬픈 이야기들, 秉(병)과 兼(겸)에 관하여

한자로 보는 세계(6)

등록 2009.07.06 19:11수정 2009.07.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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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주어 학교 가려던 누나 이야기

우리 가정에는 여섯 형제가 있다. 위로 누나 셋이 있고 형과 남동생. 이중 큰누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나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태어났다. 서울에서 여러 사업이 망한 끝에 시골로 돌아오신 부모님을 따라 누나는 고창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작은 초등학교였지만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담임 선생님이 장학금을 알선하는 등 중학교에 입학시키도록 부모님을 설득하였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딸 자식까지 고등교육을 시킬 엄두를 못 내셨는지 부모님은 끝내 중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누나는 그래도 공부가 하고 싶어 스스로 돈을 벌고자 논에 떨어진 벼 이삭(落穗) 을 주웠다. 그리고 그 이삭을 모아 과수원에 가서 과일로 바꿨다. 바꾼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읍내 장에 나가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그 돈을 책갈피에 모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정한 아버지가 그 돈을 발견하고는 다 써버렸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누나는 중학교를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가 사환 노릇이며 버스 안내양 등을 해서 번 돈을 몽땅 가족을 위해서 시골로 보냈다. 결혼해 환갑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가족을 생각하는 누나의 애틋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삭 줍다 도둑 누명 쓰고 집단 자살한 여인 이야기

조선 정조 때 황해도에 사는 최소사라는 여인이 자식 여섯과 함께 물속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최여인은 이삭을 줍거나 삯바느질을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 어느 날 그의 오촌 당숙이 논에서 볏단 두 단이 없어진 것을 알고 이삭을 줍던 최여인을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다툼 끝에 당숙은 관아에 고발을 절도 혐의로 최여인을 고발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모함을 받은 최여인은 밤새 고민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서는 결국 아이들을 물속에 밀어 넣고 자신도 뛰어들게 된다.

이삭줍기는 남편이나 자식이 없어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어진 권리였다. 부자들에게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절대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는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이라 할지라도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탐욕스런 부자라 할지라도 이삭에 대한 권리만큼은 가난한 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穗(이삭 수)는 벼(禾)와 은혜(惠)의 조합인 데 이런 뜻을 담고 글자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秉(잡을 병)은 벼를(禾:벼 화) 손(돼지머리 계)으로 잡는 모양이다. 영락없이 이삭을 줍는 모양이다. 이 글자를 볼 때마다 누나의 슬프고 짠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난한 집안의 큰 딸이 겪은 희생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또한 시대는 다르지만 가난 때문에 이삭까지 주우면서 살고자 몸부림치다 자식들과 함께 자살한 최소사라는 여인도 생각난다. 지금도 여전히 가난 때문에 자식과 함께 세상을 등지는 어머니들이 있다. 秉權(병권)


兼(겸할 겸)은 벼(禾) 두 개를 한 손에 잡은 모양이다. 두 개를 한꺼번에 잡았으니 그 뜻이 '겸하다'이다. 그리고 한 포기가 아니라 두 포기를 함께 잡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불만이 있거나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보다 소유욕이나 집착이 강한 사람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兼(겸)이 들어가는 글자에는 불만이나 부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兩手兼將(양수겸장), 兼職(겸직)

謙(겸손할 겸)은 자신이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마음을 갖고 말하는 것을 일컫는다. 謙遜(겸손)

嫌(싫어할 혐)은 불만에 찬 마음 상태를 말한다. 부계 사회로 오면서 여자가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돼서 女가 들어갔다. 嫌氣性(혐기성)

廉(청렴할 렴)은 허술한 집(广 :집 엄)에서 산다는 의미로 청렴하다는 뜻이 되었다. 廉恥(염치), 低廉(저렴)

簾(발 렴)자는 그런 허술한 집(廉)에서 햇빛을 막고자 대나무로 만든 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垂簾聽政(수렴청정)

노동의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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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타작도

나락이나 이삭을 쥐고 있는 그림 두 편이 있다. 하나는 김홍도의 「타작도」이고 다른 하나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이다. 두 화가 모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모습만 그리지 않았다. 열심히 추수하는 농민 옆에 곰방대 들고 누워있는 양반 지주(타작도), 이삭을 줍는 여인네 옆에 멀리서 말을 타고 있는 지주(이삭 줍는 여인)를 각각 대비시키고 있다.

일하는 자가 생산물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근세의 화가들은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열쇠로 본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입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입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잡을병 #겸할겸 #이삭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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