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23)

― '상식 이하의 야구', '상식 이하의 사람' 다듬기

등록 2009.07.10 19:03수정 2009.07.1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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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읽기 - 글쓴이가 드리는 말

[우리 말에 마음쓰기]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이 세 흐름에 따라서 쓰는 '우리 말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생각을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한 동아리로 가다듬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라서 나쁘다'거나 '영어는 몰아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삶과 생각과 말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걸림돌이나 가시울타리 가운데에는 '얄궂은 한자'와 '군더더기 영어'가 꽤나 넓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이든 영어이든 가릴 까닭이 없고, '우리 말'이란 토박이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쓸 만한지 쓸 만하지 않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자와 영어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습니다. 제대로 우리 말마디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말과 생각과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라는 꼭지이름처럼, 아무쪼록 '우리 말에 마음을 쓰면'서 우리 생각과 삶에 마음을 쓰는 이야기로 이 연재기사를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ㄱ. 상식 이하의 야구

 

.. 잠깐!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라구. 뭐랄까? 때론 상식 이하의 야구라고 ..  《산바치 카와-4번 타자 왕종훈 (7)》(서울문화사,1994) 7쪽

 

 "말한 건 아니라구"는 "말하지 않았다구"로 다듬습니다. '악의(惡意)'나 '악의적(惡意的)'을 말하지 않고, '나쁜 뜻으로'라고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이하(以下)

 │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적거나 모자람

 │   - 수준 이하 / 18세 이하 관람 불가 / 100만 원 이하의 벌금

 │  (2)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뒤거나 아래

 │   - 이하 생략 / 설날이라 오대조 할아버지 이하 아버지

 │

 ├ 상식 이하의 야구라고

 │→ 상식을 벗어난 야구라고

 │→ 상식과 어긋난 야구라고

 │→ 상식하고 동떨어진 야구라고

 │→ 상식을 깨는 야구라고

 └ …

 

 더 적거나 모자라다고 할 때에 쓰는 '이하'와 함께, 더 많거나 넘친다고 할 때에 쓰는 '이상'이라는 한자말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한자말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생각이나 뜻을 나타내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위'하고 '아래'를 쓰거나 '많다'하고 '적다'를 쓰거나 '높다'하고 '낮다'를 쓰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넉넉하다'와 '모자라다'를 쓸 수 있고, '넘다'와 '떨어지다'를 쓸 수 있으며, '차다'와 '안 되다'를 쓸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있다'와 '없다'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 말도 안 되는 야구라고

 ├ 터무니없는 야구라고

 ├ 어이없는 야구라고

 ├ 엉터리 야구라고

 └ …

 

 보기글에서는 "상식 이하의 야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상식 아래 야구"라는 이야기이고, 상식 아래라 한다면 "상식이 안 되는 야구"라는 말이며, "상식에 닿지 않는 야구"라는 소리입니다. 상식을 갖추지 못했거나 상식하고 동떨어졌거나 상식하고 벗어난 야구라는 말입니다. 상식을 깨거나 상식을 잊게 하는 야구라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말 '상식(常識)'이란 "사람들이 흔히 아는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어떤 야구 경기가 상식이 아니거나 상식을 깨거나 상식을 벗어났다고 하면 "말이 안 되"거나 "어이가 없"는 야구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야구를 놓고 "새로운 야구"라거나 "처음 보는 야구"라거나 "낯선 야구"라 할 수 있을 테지요. "뜻밖인 야구"나 "깜짝 놀랄 만한 야구"라 해도 썩 어울립니다.

 

 ┌ 수준 이하 → 수준 아래 / 수준이 떨어짐 / 눈높이 낮음

 ├ 18세 이하 관람 불가 → 열여덟 살 밑으로 볼 수 없음

 ├ 100만 원 이하의 벌금 → 100만 원이 못 되는 벌금

 ├ 이하 생략 → 다음 줄임 / 뒤는 줄임

 └ 오대조 할아버지 이하 아버지 → 오대조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저마다 느낌 그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그대로 나타내 주면 됩니다. 겪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였을 느낌을 거리낌없이 적어 주면 됩니다.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상식과 동떨어진 모습이라면, 이런 모습을 어떻게 느끼는가를 밝혀 줍니다.

 

 우리 스스로도 좀더 옳게 말하는 틀을 찾고, 듣는 사람한테도 좀더 손쉽게 헤아리는 틀을 찾아 봅니다.

 

 

ㄴ. 상식 이하의 사람

 

..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빗물을 한번 받아 마셔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런 권유를 한 사람을 상식 이하의 사람이거나, 정신이 약간 온전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할지도 모릅니다 ..  《한무영-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2009) 13쪽

 

 "이런 권유(勸誘)를 한"은 "이런 말을 한"이나 "이런 이야기를 한"으로 다듬고, "정신(精神)이 약간(精神) 온전(穩全)하지 못한"은 "정신이 좀 떨어지는"이나 "머리가 좀 돈"으로 다듬어 봅니다. "취급(取扱)을 할지도"는 "다룰지도"나 "볼지도"로 손질합니다.

 

 ┌ 상식 이하의 사람이거나

 │

 │→ 상식이 없는 사람이거나

 │→ 상식조차 없는 사람이거나

 │→ 상식을 잊은 사람이거나

 └ …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말이며 글이며 얄궂고 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느낀다면, 적어도 "상식 이하인 사람"이라고는 적을 줄 압니다. 다음으로, "상식이 없는 사람"이나 "상식이 안 되는 사람"으로는 적을 테며, 한 번 더 마음쓸 수 있다면 "생각이 없는 사람"이나 "멋모르는 사람"이나 "뚱딴지 같은 사람"으로 적으리라 봅니다.

 

 ┌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 생각이 모자란 사람이거나

 ├ 생각이 떨어지는 사람이거나

 └ …

 

 언젠가 이야기를 들으니, 대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에는 어떤 틀을 맞추어야 한다더군요. 한자도 많이 집어넣어야 하고, 논문은 논문 투를 지켜야 교수들이 좋게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논문 알맹이가 알찬가 아닌가보다 껍데기를 살핀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대학 교육이 그 모양밖에 안 된다면 굳이 그 대학교를 마쳐야 할까 궁금했습니다. 말장난을 하거나 말재주를 피우며 논문을 쓴다면, 이런 논문은 어떤 학술 값어치를 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해마다 수만 권에 이르는 논문이 나올 텐데, 이 수만 권은 제대로 속살을 갖추면서 우리한테 기쁨과 보람을 선사할는지, 아니면 애먼 종이를 없애 버리는 데에 한몫 단단히 할는지 알쏭달쏭한 노릇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1993년 겨울날 대학입시를 치를 때에도 논술시험은 '한자를 드러내어 많이 적어야 점수를 좋게 받는다'는 말을 들었고, 저도 그런 말대로 답안지를 적었습니다. 그무렵 저는 다른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란 무엇'이고 '생각이란 무엇'인지를 하나도 엮어 보지 않았어요. 그저 점수따기 기계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엉터리 논문을 쓰는 대학생들은 졸업장따기 기계일 뿐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논문을 내고 졸업장을 딴다면, 학교를 마치고 회사원이 된다 하여도 월급따기 기계에 머물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내 말을 잃거나 내 생각을 놓을 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돈벌이 기계가 되면서 사랑도 믿음도 나눔도 내팽개치는 얼간이가 되고 말지 않느냐 싶습니다.

 

 말마디에 부푼 꿈을 담지 못하고, 글줄에 너른 가슴을 싣지 못한다면, 우리들 이야기는 하나같이 덧없고 부질없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한 마디 말도 삶이요, 두 줄 글도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7.10 19:03ⓒ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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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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