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선 칠숙과 역모를 도모한 것으로 나오는 석품(오른쪽).
MBC
선덕여왕의 즉위 직전에 터진 이 역모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덕만공주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음모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칠숙의 난을 다루는 역사학자들의 상당수는 '칠숙이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 사건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의 <삼국사기> 표현을 좀 더 곰곰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기록만 갖고는 칠숙이 정말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단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칠숙이 반란을 꾀했다", "왕이 이를 알아차렸다"(王覺之), "왕이 칠숙을 잡아 목을 베었다"라고 한 <삼국사기>의 표현을 찬찬히 살펴보면, 칠숙의 반란이 실제로 가시화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음모나 예비 단계에서 그친 것이다. 칠숙이 실제로 군대를 일으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면, 왕이 그의 역모를 '알아차리고'(覺) 사전에 칠숙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행 형법에 비유하자면, 내란의 4단계인 음모-예비-미수-기수 중에서 칠숙의 반란은 음모·예비 수준에 그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형법상 미수란 범죄행위에 착수하는 것을 말하고, 기수란 범죄행위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칠숙의 경우에는, 반란의 착수 이전 단계에서 수사당국에게 붙들리고 만 것이다.
'반란행위에 착수하지는 않았더라도 칠숙이 정말로 그런 반란을 도모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칠숙이 정말로 역모를 꾀했다가 사전에 발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역모사건이나 군부독재시절의 시국사건에서 잘 나타난 것처럼, 예비·음모 단계에서 발각된 정치범죄인 경우에는 집권층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모사건 혹은 시국사건의 조작이 정적 제거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음을 잘 알고 있다.
'칠숙의 난', 집권층의 의도적인 조작?위의 <삼국사기> 기사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역모사건의 두 주범인 칠숙과 석품이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임을 당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집권을 준비하는 덕만공주 측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유보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경까지 도망간 석품이 갑자기 처자가 그리워서 몰래 서라벌로 돌아왔다가 붙잡혀 처형을 당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들이 정말로 반역을 시도할 의사가 있는 인물들이었는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국 고대사 연구자도 한 논문에서 이 사건이 덕만공주 측의 조작사건이었을 가능성을 유보해두는 태도를 보였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칠숙이 반란을 꾀했고 그것이 사전에 발각되었다'는 기록만 명확하게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칠숙이란 인물이 덕만공주의 즉위 직전에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칠숙이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을 가능성(A 경우)과 덕만공주 측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B 경우)을 모두 다 유보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A 경우가 맞는다면, 평소에 칠숙의 동태에 주목하던 덕만공주 측이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사전에 전격적으로 칠숙을 잡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와 달리 B 경우가 맞는다면, 진평왕이 매우 연로하여 덕만공주의 즉위가 임박한 시점에서 덕만공주 측이 화근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칠숙의 난을 조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다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간에 우리가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그것은 덕만공주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칠숙이란 인물이 평소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는 인물, '포스트 진평왕 시대'에 덕만공주의 왕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칠숙이 '선정'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덕만공주 측의 입장에서 볼 때에 칠숙이 평소에 상당히 '까칠한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칠숙이 덕만공주 출생 직후부터 공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존재로 묘사되었지만, 역사기록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의 칠숙은 덕만공주의 즉위 직전에 발생한 대형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역사에 딱 한 번 등장했다.
그가 정말로 반란을 꾀했든지 아니면 덕만공주 측이 역모사건을 조작했든지 간에, 우리는 칠숙이 평소에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에 불만을 피력하여 덕만공주 측의 경계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 칠숙의 그런 실제 모습이 어떻게 묘사될 것인지에 관심을 두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이후 방영분을 시청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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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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