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부터 받아야 할 준비 안 된 총장후보자

[데스크칼럼 - 김당 정치데스크]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세렌디피티'

등록 2009.07.14 10:07수정 2009.07.14 10:07
0
원고료로 응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유선호 위원장)의 천성관(52)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가 최소한 두 건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첫 번째 법 위반은 1998년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원하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것이다. 이는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들이댄 박지원 의원의 추궁에 천 후보자도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다. 법 조항에는 이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두 번째 법 위반은 2006년부터 전세자금 변통 등을 위해 동생과 처가 쪽에서 이자 없이 공짜로 8억원을 빌려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 증여세법은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한테 1억원 이상을 무상으로 빌릴 경우에도 빌린 직후 3개월 안에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증여세를 내도록 돼 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증여세를 내지 않아 수백만 원을 탈루했다.

 

두 건의 법 위반과 그보다 더 중대한 의혹들

 

a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첫 번째 법 위반은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다. 그러나 두 번째 법 위반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해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듯이, 지금이라도 탈루 사실을 인지한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두 가지 법 위반 사실만으로도 천 후보자는 검찰총장은커녕 수사를 받았거나 받아야 할 처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대한 의혹과 범죄 혐의들이 어제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쏟아졌다,

 

우선 자기 재산(14억6천만원)의 2배나 되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28억7천500백만원)를 살 때 지인과 동생으로부터 빌렸다는 '수상한 빚' 20억5천만원이 그것이다. 천 후보자는 15억5천만원의 돈을 선뜻 빌려준 지인 박아무개씨와의 관계가 논란이 되자 "10년 전쯤 아는 분 소개로 만났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주 만나지도 않는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담보도 없이 차용증 한 장만으로 15억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려줬다면 '기부 천사'를 만난 셈이다.

 

박지원 의원이 관세청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천 후보자가 박씨와 자주 만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천 후보자의 부인 김영주씨는 박씨와 자주 만난 듯하다.

 

박 의원이 공개한 김씨의 '명품 쇼핑 리스트'에 따르면, 전업주부인 김씨는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2008년 1월부터 5월 사이에 세 번의 국외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3000달러, 3000달러, 1000달러의 고가명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한 번은 15억5천만원을 빌려준 '기부 천사' 박아무개씨와 같은 날 같은 장소(인천공항 00면세점)에서 같은 명품(3000달러짜리 샤넬 핸드백)을 사들고 들어왔다.

 

천 후보자는 부인 김씨가 샤넬 핸드백을 산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박아무개씨와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는지는 모르지만 함께 외국에 간 적은 없다고 했다. 자주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면세점에서 같은 물건을 샀는데 마주치지 않았다니, 세상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거액의 채무는 검사윤리강령 위반... '스폰서'의 후원이라면 '포괄적 뇌물죄'

 

법사위는 뒤늦게 입법조사관들을 박씨의 자택과 직장으로 보내 천 후보자의 부인이 해외에 나갈 때면 같은 면세점 명품코너에서 쇼핑을 하는 이 '기부 천사'에 대해 동행명령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이 '기부 천사'는 일본으로 출국한 뒤였다.

 

민주당에 따르면, 박씨는 인사청문회 증인 채택 전날인 지난 7일까지도 야당 의원들을 만나 "청문회 증인에서 빼달라"고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인 8일 인사청문회 증인과 참고인으로 결정되자, 일본으로 전격 출국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측은 인사청문회에서 곤란해질 것을 예상한 천 후보자와 검찰이 청문회 기간에 이 '기부 천사'를 해외로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고 있다.

 

청문회에서는 이밖에도 시가 6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 '제네시스' 무상 사용 의혹, 연간 3500만원 이상 쇼핑을 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백화점 VIP 회원권 등도 도마에 올랐다. 이 모든 것들은 세금 빼고 월평균 수령액이 620만원 정도인 검사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이른바 '스폰서'의 후원에 의한 것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될 수 있다. 기업인과 공직자의 이런 유착관계는 검찰이 존재의 본질적 이유이자 본업으로 삼는 공직자 비리수사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조순형 의원은 "연봉이 8000만원 정도인 천 후보자가 채무에 대한 한 달 이자만 800만원이나 된다고 하는데, 부인은 6000만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사려 했다"며 "(박씨에 대한) 거액의 채무는 검사윤리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은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을 들여다보기 위해 2007년 금융소득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취지로 요구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천 후보자가 본인의 금융자료를 실정법상 개인 금융자료이기 때문에 제출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이라면 청문위원들이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 방해이다.

 

a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 시작에 앞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 등 법사위 소속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 시작에 앞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 등 법사위 소속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후보자 감싸기에 급급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

 

그럼에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검찰총장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도덕성을 검증해야 하는 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특히 손범규 의원은 서울중앙지검장인 천 후보자가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미공개한 것과 관련, '개인 사생활 침해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옹호하는 질의를 했다. 이에 이날 청문회를 방청한 용산참사 유가족이 용산참사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구하는 돌발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천 후보자는 이날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법원이 공개를 허용했는데도 재판의 당사자인 검찰이 이것에 불응하는 것은 재판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고 질의하자 "법원 결정에는 검찰쪽 주장이 반영되지 않고 변호인의 주장만 받아들여져 그렇게 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박지원-조순형 의원은 "후보자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 후보자를 발탁한 것을 두고 청와대는 검찰조직을 3기수나 낮춘 파격 인사라고 평가했는데, 파격 인사를 하다 보니 미처 준비가 안 된 인사를 지명한 것 같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사청문회에서 제시된 각종 의혹만 봐도, 천 후보자는 자신의 재산 및 금전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자료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본인 자신도 이처럼 빨리 검찰총장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쩌랴. 청문회에서 드러난 법 위반 사실과 더 중대한 법 위반 의혹만으로도 천 후보자는 검찰총장은커녕 검찰 수사를 받거나 적어도 감찰조사를 받아야 할 '준비 안 된 후보자'임이 드러났다. 남은 길은 자진사퇴하거나 대통령이 내정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것이 명예로운 검사의 길이다.

 

a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천성관 후보자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천성관 후보자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천성관 #인사청문회 #검찰총장 후보자 #박지원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요양원 나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
  5. 5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