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내륙 - 악마들이 구슬치기하던 곳

호주 대륙 자동차 여행 (25)

등록 2009.07.23 10:01수정 2009.07.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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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주 대륙 중심에 있는 도시, 알리스 스프링(Alice Springs) 입구

호주 대륙 중심에 있는 도시, 알리스 스프링(Alice Springs) 입구 ⓒ 이강진

호주 대륙 중심에 있는 도시, 알리스 스프링(Alice Springs) 입구 ⓒ 이강진

 

테넌트 크릭(Tennant Creek)을 떠나 다음 목적지, 호주 대륙의 중심에 있는 알리스 스프링(Alice Springs)으로 떠난다. 알리스 스프링은 호주 대륙 중심에 있다. 사람에 비유하면 배꼽쯤에 있는 도시다.

 

가는 길에 악마의 구슬(Devil's Marbles)이라는 관광지가 있다. 들판 한가운데 큰 바위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바위의 모양도 가지가지다. 칼로 자른 듯이 정교하게 두 토막 난 바위가 있는가 하면 계란 모양의 바위가 교묘하게 중심을 잡고 서서 관광객을 희롱한다. 황량한 들판에 이렇게 많은 바위가 기묘한 모습으로 모여 있는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이것은 외계인이 한 짓이고 이것을 보아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을 던져 보았다. 아내는 정색하며 이 바위들은 바람에 의해서 오랜 세월을 통해 깎여진 것이라는 등 초등학교 선생 같은 이야기로 나를 이해시키려 한다. 농담을 진담으로 들을 만큼 허허벌판에 자연이 던져놓은 바위들이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자연 앞에서 나의 왜소함을 또 한 번 느낀다.

 

a  악마의 구슬 (Devil's Marb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관광지의 특이한 바위들.

악마의 구슬 (Devil's Marb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관광지의 특이한 바위들. ⓒ 이강진

악마의 구슬 (Devil's Marb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관광지의 특이한 바위들. ⓒ 이강진

 

자연의 신비함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알리스 스프링 (Alice Springs)을 향해 운전한다. 또다시 조그만 동산 하나 보이지 않는 벌판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자로 잰 듯이 직선으로 이루어진 도로가 많다. 호주 오지를 다녀본 사람에게는 직선 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직선 도로가 많다. 알리스 스프링까지 가는 길 또한 직선이다. 황량한 들판에 500킬로미터가 넘는 직선의 길. 도로 공사하는 사람이 자로 직선을 그은 다음 도로를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리스 스프링이 가까워지면서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곡 속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다.  한낮이라 그런지 30도가 넘는 꽤 더운 날씨다. 캐러밴 파크에 텐트를 친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캐러밴 파크로 돌아오니 한낮의 더위는 온데간데 없고 시원한 가을 날씨다. 저녁을 해결하고 언제 보아도 좋은 유난히 밝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늦은 시간에 지프차 한 대가 캐러밴 파크로 들어선다. 이 시간에 와서 텐트를 치려면 고생 좀 할 것이다. 그러나 지프차에서 내린 젊은이들은 간단하게 저녁을 해치우고 텐트도 치지 않은 채 슬리핑백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고 잠잘 준비를 한다. 텐트가 있어야 잘 수 있다는 내 고정관념이 무너져 버린다.

   

a  호주의 오지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 - 슬리핑백에서 자는 것과 자동차 위에 있는 조그마한 보트가 인상적이다.

호주의 오지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 - 슬리핑백에서 자는 것과 자동차 위에 있는 조그마한 보트가 인상적이다. ⓒ 이강진

호주의 오지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 - 슬리핑백에서 자는 것과 자동차 위에 있는 조그마한 보트가 인상적이다. ⓒ 이강진

내륙 한가운데라 기온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낮의 더운 날씨만 생각하고 가벼운 담요 한 장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추위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재채기 몇 번 하더니 콧물이 흐르며 몸살 기운이 돈다. 신문을 보니 어젯밤 온도가 0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주위에는 나 말고도 코를 훌쩍이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감기 때문에 오전에는 근처 계곡만 돌아보고 오후에는 뜨거운 차를 계속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조금 나아진 몸으로 서부 맥도넬(West Macdonnell) 국립공원에 있는 계곡들을 다녀 본다. 동네를 조금 벗어나니 성벽을 쌓은 것 같은 엄청난 규모의 계곡이 끝없이 계속된다. 계속 되는 계곡 중간 중간 뚫려 있는 곳에는 영락없이 물이 흐르고 있다. 제대로 보려면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감기 걸린 몸으로 조금 무리를 하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등산로를 택해 걸어 본다. 계곡 정상에 올라가 보는 장엄한 광경.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a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계곡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계곡 ⓒ 이강진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계곡 ⓒ 이강진

a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광활한 모습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광활한 모습 ⓒ 이강진

서부맥도넬국립공원의 광활한 모습 ⓒ 이강진

2009.07.23 10:01ⓒ 2009 OhmyNews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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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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