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골 두목들이 당당한 자유인이었다?

고미숙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등록 2009.07.26 13:35수정 2009.07.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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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겉표지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겉표지 ⓒ 사계절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고전'을 '재밌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녀의 해석을 읽고 나면 고전이 친숙하게 여겨지고 그녀의 입담을 듣고 나면 고전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었을까? 이 책으로 말미암아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던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금, 고미숙의 입담으로 또 한권의 고전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바로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고미숙은 그 작품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하고 있을까? 알다시피 <임꺽정>은 TV드라마로 만들어진 만큼 유명하다면 유명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책 속에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이제껏 알고 있다고 믿던 <임꺽정>에 대해 새로우면서도 재밌는 해석들을 전해주고 있다. 무엇이 있기에 그러한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경제, 공부, 우정, 사랑과 성, 여성, 사상, 조직 등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경제다. 이 코너는 <임꺽정>의 주인공들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무엇인가. 그들이 '노는 남자들', 이른바 백수라는 말이다.

청석골의 두목들은, 청석골에 모이기 전부터, 땅도 없고 밑천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놀았다.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단지 놀기만 했는가. 배우러 다녔다. 배우며 노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당당했다. 남의 집에 들어가 사는 동안에도 당당했고 노는 순간 어느 때에도 당당했다. 고미숙은 이 부분을 의미심장하게 지적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근거를 잃은 자들, 자격을 잃은 자들이 비로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을 실험해야 하지 않을까. (…) 어쩌면 우리들이 내몰린 곳이 우리들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인지도 모른다. 낡은 질서의 상실이 예속의 조건이 될지, 자유의 조건이 될지는, '우리, 잃어버린 자들'에게 달려 있다." -고미숙이 인용한 고병권, <불안시대의 삶과 정치>, '부커스R' 2호, 그린비 2008, 135면)

<임꺽정>을 읽다보면 청석골까지 이르렀던 사람들의 과거는 물론이고 청석골의 삶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그것을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고미숙은 그것이 단지 하나의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서, 또한 그것이 청석골을 만들고 유지하며 그 의미를 찾는데 중요한 단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2장 '공부'에서도 의미심장한 해석이 등장한다. 고미숙은 청석골의 두목들이 노는 인간이면서 또한 '배우는' 인간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힘쓰는 것을 배우고, 말타는 것을 배우고, 표창 던지는 걸 배운다. 그들 하나하나가 '달인'이라고 할 만큼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

이 말에 누군가는 흰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배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이다. 요즘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그건 배움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미숙은 그것이 배움의 한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왜 그런가. 배움이 학벌에 관한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꺽정과 두목들은 좋은 스승을 만나면 찰거머리처럼 쫓아다니며 배우려고 했다. 이유는 없다. 그저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의 즐거움이 됐고 그들로 하여금 달인의 경지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또한 그들 존재의 한 무게를 더해주는 계기로 만들기도 했다. 벼슬아치가 되려고, 출세하려고 공부하는 것에 비하면 어떤가. <임꺽정>을 새롭게 보는 해석임에 분명하다.

이외에도 고미숙의 해석을 듣고 나면 <임꺽정>이 새롭게 보인다. 당장에라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고 할까? 그런 충동이 생길만큼, 그 해석이 재밌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물론, 이런 해석이 기존의 것과 대치될 수 있다. 특히 진지하면서 엄숙한 고전해설서가 그러할 것이다.

그 중에 무엇이 더 유용할 것인가. 그 문제는 세상의 몫으로 놔두자. 어쨌거나 지금 인정해야 할 것은,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이 <임꺽정>을 다시, 새롭게 읽도록 충동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입문서로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줘도 되지 않을까? <임꺽정>을 다루되, <임꺽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안에 담긴 말 하나하나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알차기만 하다.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사계절, 2009


#고미숙 #임꺽정 #홍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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