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슈퍼노트? 6개월 후엔 나올 수 있지만..."

[인터뷰②] 진화하는 위폐, 진화하는 위폐감별사

등록 2009.07.31 09:09수정 2009.07.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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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6개월 이후에는 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은……."

5만 원권이 발행된 지 일주일도 채 되기 전, 인천의 한 20대 남성이 컬러복합기를 이용해 위조지폐를 만들었다가 붙잡혔다. 경기 안산에서도 고등학생들의 위조지폐 제조 행각이 발각됐다. 그러나 위폐감별사인 신도섭(44) 우리은행 차장은 "(시중에 나온) 5만 원권 위조지폐는 카피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초정밀위폐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폐범, 발권국, 위폐감별 전문가의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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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으로 외화위폐감별사 인증서를 취득한 신도섭 우리은행 차장. ⓒ 남소연

그는 "5만 원권 위폐가 나오더라도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 6개월 이전에는 나올 수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도 6개월 후는 장담하지 못했다. 100달러의 슈퍼노트(supernote: 100달러 초정밀 위폐)가 존재하는 한, 5만 원권 역시 위폐범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차장은 "(슈퍼노트의 경우) 미국 발권국이 위조방지기능을 만들면 위폐범이 찾아내서 위폐를 만들고, 위폐감별전문가가 그 위폐를 찾아내고, 그럼 다시 발권국은 화폐를 보완한다"며 "위폐범과 발권국, 그리고 위폐감별 전문가가 한 바퀴씩 돌면서 서로 숨바꼭질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신 차장이 자신을 '위폐감별사'가 아닌 '위폐감별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위폐가 있는 한 "현재까지의 위폐감별사지, 내일의 위폐감별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도섭 차장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사에서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위폐는 계속 진화한다"

위폐감별사의 눈으로 본 '지폐의 미학'
"참 오묘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 수준의 선명하고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은… 한 국가의 첨단 기술이 응집된 '예술의 결정체'다."


위폐감별 전문가인 신도섭 우리은행 차장의 말이다. 그가 '첨단기술', '예술의 결정체' 운운하며 예찬하는 것은 바로 '지폐'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진짜 돈과 가짜 돈을 구별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그에게 돈은 좀 더 각별해 보인다.

"보안요소라는 게 있다. 색깔이 보는 각도에 따라 바뀌고, 만지다 보면 오돌토돌한 부분도 있다. 빛에 비춰보면 '워터마크'도 나타난다."

지폐의 보안요소란 조폐공사가 위조지폐의 제조를 막고, 위폐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만들어둔 장치다. 신 차장은 "지폐에 보안 기능이 30여 가지나 들어있다"며 "하지만 열 댓가지만 공개되고, 그 외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위폐를 막기 위해서다.

지폐를 만드는 종이도 마찬가지다.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센터의 지우행 연구원은 "일반 A4용지와 달리 목화솜으로 만들어지고, 내구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여러 화학약품을 쓴다"면서도 보안을 위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삼갔다.

다양한 첨단 기술의 결합체인 지폐는 한 국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박구재)은 "화폐만큼 각국의 정치적·문화적 아우라가 웅숭깊게 드리워진 물건도 드물다"거나, "화폐는 국가정체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무언의 외교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위폐감별사는 어떤 직업인가?
"세계적으로 위폐감별사라는 자격증은 없다. 지금 현재는 위폐감별사라고 해도, 내일 다시 위폐가 업그레이드 돼 나온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내일의 위폐감별사가 아니지 않은가. 오늘까지만 자격증이 인정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위폐감별사가 아니라) 위폐감별 전문가라고 칭하고, 그렇게 유지된다."

- 보석감정사 등과 달리 위폐감별사라는 공인된 직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위폐가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업무 승계도 어렵다. 게다가 위폐는 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만든다. 한 위폐의 특징을 아무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다른 위폐를 만들어내면 그 지식은 소용이 없어진다.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1990년도에 나온 위폐와 1992년에 나온 위폐가 다르다. 위폐는 계속 변형이 된다. 그래서 오늘의 위폐감별사를 내일의 위폐감별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럼 100% 위폐를 감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래서 한국은행이나 해외 은행의 발권국이 5년마다 주기적으로 신권을 찍어낸다. 위폐제조 기술자들은 보통 6개월이면 실제처럼 만든다. 그러니까 위폐가 업그레이드되면 (발권국은)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나 5년 후쯤 되면 위폐가 진품에 거의 도달하게 된다. 그럴 때 전체적으로 싹 바꿔주는 거다. 우리나라 만 원짜리도 그렇고 하고 있다.

100달러에는 위조방지기능이 30여 가지가 있다. 그 중 일부는 공개가 되지만, 10여 가지 기능은 미국 발권국만 아는 비밀이다. 그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위폐제조 기술자들은 계속 그것을 찾아낸다. 발권국이 위조방지기능을 만들면 위폐범이 찾아내서 위폐를 만들고, 위폐감별전문가가 그 위폐를 찾아내고, 그럼 다시 발권국은 화폐를 보완하고……. 위폐범과 발권국, 그리고 위폐감별 전문가가 한 바퀴씩 돌면서 서로 숨바꼭질을 하는 셈이다."

- 어쨌든 5년 정도면 위폐를 진폐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되긴 쉽지 않다. 왜냐하면 100달러짜리 하나를 만들기 위한 제조원가가 약 30달러정도 소요된다. 그것을 또 유통시켜야 하고……. 위폐가 진폐를 따라가려고 100% 비용을 투자하면 장사가 안 된다. 마진이 남지 않으니까,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원화의 경우 굳이 원가를 많이 들여 만 원짜리 위폐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100달러가 타깃이 된 거다. 그것을 슈퍼노트라고 한다.

"북한에서 슈퍼노트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근거 없어"

- 비용 문제 때문에 고액권일수록 위폐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5만 원권이 발행됐는데, 위폐 제조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가?
"아직은 5만 원권은 위폐가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 10만 원권이 발행되면 가능성이 높다. 현재 5만 원권도 보안기능이 20~30여 가지나 된다. 밝혀진 것만 10여 가지다. 그 정도면 수준 있는 지폐다. 그래서 아직은 쉽지 않다."

- 인터넷에서는 위폐가 나왔다는 얘기가 떠도는데.
"나도 봤는데, 위폐라기보다는 카피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

- 그럼, 앞으로도 5만 원권 초정밀위폐가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인가?
"나오더라도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 6개월 이전에는 못 나온다고 본다. 6개월 이후에는 나올 수도 있지만은, 아직은……."

- 국내에 위폐를 만드는 조직이 있다고 보나?
"위폐는 한 개인이 만든다기보다는 국가 수준의 실력과 그 정도의 비용, 그 정도의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우리나라는 화폐의 종이와 색사를 구입할 수 없다. 또 한 명의 위폐제조 기술자를 키우려면 비용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국내에는 없다고 본다. 해외에서 가져와 유통할 수는 있을지언정, 국가 수준이 아니면 못 한다."

- 그럼, 북한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과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북한이 슈퍼노트를 제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북한이 만들었다고 해서 자료를 찾아보기는 했는데, 슈퍼노트를 만들려면 수억 원의 비용이 든다. 아직까지는 북한에서 그 정도의 비용을 투자해서 슈퍼노트를 생산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더라. 미국도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 북한 화폐의 수준을 보면, 아직 슈퍼노트 같은 것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되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김솔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솔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입니다.
#위폐감별전문가 #신도섭 #5만원권 #슈퍼노트 #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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