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큼 좋은세상 남한산성 공연제3회 노래만큼 좋은 세상 공연에서 '즐거운 밴드'가 공연 하는 장면이다
김인철
"새벽에 출발을 해야 차가 막히지 않을 거예요."
보컬이자 리더인 세창이의 말이었다. 나와, 세창이, 그리고 드럼을 맡고 있는 명철이와 한울이는 공부방에서 자고 기타를 맡고 있는 수진이와 베이시스트 선애는 새벽 일찍 각자의 준비물을 가지고 공부방에 오기로 했다. 나는 새벽부터 운전을 해야 해서 일찍 잠을 청했지만 세창이와 다른 녀석들은 날을 샐 작정이었다. 함께 공부방 교사를 하다가 올초 부산으로 내려가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는 성언이도 삼척 터미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수진이와 선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는 선애는 이번 여행을 끝으로 당분간 밴드는 쉴 예정이었다. 힘겨운 청춘의 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그녀에게 이번 여행은 좀 더 특별 할 것 같았다. 새벽 다섯 시,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고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다. 더구나 오랜만에 잡아 보는 운전대였다. 검은 차창으로 새어드는 불빛들은 새벽을 타고 잠을 쫓듯 꿈을 쫓는 누군가의 희망이리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렌트카에 짐을 싣고 드디어 삼척행 시동을 걸었다.
-틀에 박히거나 새롭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이 세 범주 안에 들어있다. 굳이 택하자면,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것을 원했다. 여행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복잡하면서도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확장된 동공 속으로 파고드는 주변의 새로운 상황들이 먹먹하던 숨통을 탁 트이게 하는 순간 특별해진 나는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휴가 직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매일 밤 세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간신히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렸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새로운 일터에 적응하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를 점점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수능을 앞두고 있는 선애와, 수진, 세창,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칭다오를 포기했더니 삼척이 달려왔다.세차게 불던 도로 위의 바람은 어느새 비가 되어 유리를 덮었다. 내리 다섯 시간을 달려서 삼척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매순간 막혔다. 답답했다. 그러다가 또 시원스럽게 뚫리는 도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문제는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 모든 난관들이 다시 돌아올지라도 내일 이맘때쯤이면 나는 그에 대응할만한 체력을 얻었을 것이다.
38번 국도에서 맞이한 무수한 여름의 잔해는 지칠 대로 지쳐서 도로나 가로수 주변에 무수히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여름을 밟고 서 있었다. 지친 여름을 밟고 섰으되 그것은 여름이 아니라 무수한 불안을 만들어내는 어떤 상황들이었다. 그것은 지난밤에 혹은 우리를 앞서 갔던 어떤 차량에 의해서 '로드킬'을 당한 채 갓길에 버려 져 있는 오소리 한 마리의 시체와 묘하게 어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