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연구소의 초청특강에서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
이대암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교수는 마들연구소의 초청특강에서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놨다.
지난 4일 밤 서울 노원구 북구고용지원센터에서 열린 박노자 교수 초청특강에는 200여 명의 청중이 몰려왔다. 강연장은 빽빽했고 의자가 모자라 서있거나 걸터앉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마들연구소를 운영하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평택 쌍용차공장에서 급히 돌아와 박노자 교수를 맞았다. 노 대표는 "박노자 교수를 초청하기 위해 오슬로에까지 가서 부탁했었다"고 말하며 박노자 교수를 환대했다.
진보정당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박노자 교수는 "왜 진보정당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지,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박 교수는 자신이 느꼈던 2003년의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3년에 어떤 세계사적 사건이 있었는지 기억하시죠? 바로 이라크 침략이죠. 세계 전역에서 일제히 반전데모를 했습니다. 런던의 경우에는 영국 역사상 최대 시위가 있었죠. 그런데 왜 그 기억을 더듬으며 무력감을 느끼느냐? 답은 아주 쉽습니다. 200만 명이 런던 거리를 메웠지만 그 다음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국의 이라크 침략이 그냥 일어났습니다." "이렇듯 구미권의 민주주의란 민의를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획일적인 데모형태로 표현되는 민의라면 무시하면 그만인 거죠. 보도 안 하면 그만입니다." 박 교수는 2003년의 무력감을 떠올리며 의회권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반전평화주의적 민의를 진전시키려면 어느 정도 의회권력이 개입했어야 한다"며 당시에 "제대로 된, 대중화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의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도 "쌍용차 노동자들을 살려야 된다는 민의가 많더라도 현 국회의 구성원들을 보면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이 어느 정도 의회에 개입할 권력이 있었다면 쌍용 노동자들의 고통이 덜하지 않았겠느냐"며 대중화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 진보정당은 후발주자, 함정 피해갈 수 있다"박노자 교수는 "한국은 새롭게 대중 진보정당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한국 진보정당은 외국에 비해 후발주자"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후발주자는 앞서 간 사람들의 문제점을 파악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고, 검증된 결과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다"며 후발주자의 장점을 역설했다. 그는 "유럽 150년, 일본 80년의 진보정당 역사가 있다"며 앞서 간 나라들이 한국의 반면교사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 진보정당은 '선배'들이 빠졌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더 잘 나갈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조심스레 꺼내 놨다.
박 교수는 '선배' 진보정당들이 빠졌던 함정으로 '대형 정규직 노조에 지나치게 기대는 통속적 대중성'과 '게토형 군소정당화'를 꼽았다.
먼저 통속적 대중성에 대해서는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프랑스 공산당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영국 노동당은 보수정당으로 변질이 완료됐고, 독일 사민당은 변질의 중간 단계이며, 프랑스 공산당은 망해버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 노조에 의지하다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주자가 되었다"며 세 정당의 몰락 원인을 대형 정규직 노조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찾았다.
"진보정당이 대기업 노조를 안고 가는 건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만 족하다는 의식이 생기면 그때부터 정당이 몰락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요타시스템과 같이 대기업은 대기업 노조를 체제권 안으로 포섭시킵니다. 대기업의 숙련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덜 받게 되지요. 하지만 그 뒤에 숨은 비정규직은 원칙적으로 배제됩니다." "진보정당이 대기업 노조에만 의존한다면 결국에는 대형 노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가 되고 사회에서는 고립되며 더 넓은 대중을 응집시키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