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기

[지방이 희망이다 ⑤] ‘Film Factory' 정상용 감독

등록 2009.08.10 17:36수정 2009.08.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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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치이익~" 라이터 불이 켜지자 어두운 작업실이 한순간 환해졌고, 그의 얼굴이 잠깐 또렷하게 보였다. 내쉬는 담배연기 넘어 그의 얼굴을 훔쳐보니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 정도 커리어(경력) 가지고 왜 여기(지역)있어요? 라고 물어봐요. 이게 뭐냐면, 지역 남으면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거예요. 관이나 행정에서도 젊은이들은 여기를 떠나라는 분위기로 몰고 가고,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해야 인정하는 분위기고…."

 

그가 입을 뗐다. 이전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말 하던 때와는 어투와 어조 모두 바뀌어 있었다. '진짜 할 말은 지금부터'라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귀를 종긋 세웠다.

 

"흔히 지역에 있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사람보다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실제로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럼, 왜? 지역은 서울보다 능력이 처지는 걸까? 이걸 생각해보자는 거죠."

 

지난 2004년,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정상용(41) 감독. 현재 전주에서 영화제작사 'Film Factory'를 운영하며, 각종 영상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최근 전라북도에서 지원하는 인큐베이션사업(중단편 시나리오 공모사업)에 선정돼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모든 게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영상 장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정 감독.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가 몸으로 겪은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 속에는 바로 우리가 고민하는 지역문제와 그 해결책이 숨어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재 탓이 아니다…능력은 환경이 만들어준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흔히 지역 인재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믿는다. 지역에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평가절하받기 일쑤다. 타고난 능력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정말 지역에는 패배자만 남아서일까?

 

그의 분석이 흥미롭다.

 

"문제는 기회가 다르다는데 있어요. 어떤 분야가 됐든 서울에서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10번 있다고 하면, 지역에서는 1번밖에 없어요. 10번 해본 사람하고 1번 해본 사람하고 같겠어요? 기회조차 없는 지역 인재에게 '지역 인재는 역시 능력이 없어'라고 말하면 안되죠. 일단 기회를 주고 경험을 쌓게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그 1번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게 현실이에요."

 

정 감독의 이런 고민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였다. 그는 올해 'Film Factory'라는 영화 제작사를 설립하고, 전주 영화제작소 입주 신청을 냈다. 하지만 그의 영화사는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입주를 거부당했다. 2차 입주 신청에서도 '홍보영상을 만드는 업체만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상 또 다시 미끄러졌다.

 

"지역에서 뭔가 만들어 보려는 건데,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규정상 거부하면, 이게 결국 기를 꺾는 거예요. 이렇게 불만이 쌓이고 애정이 식으면 굳이 지역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사실, 아무리 지역을 생각한다 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니…."

 

정 감독은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에게 기회를 줘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향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림들이 오히려 더 일도 정성껏 하고, 또 실제로 유학파 인재들도 많은데 능력에 비해 활용이 안 되기 때문에 인재유출이라는 문제가 악순환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최근 제작한 단편영화 <스테이크>는 그 제작과정을 주목해볼만 하다. 지역에서 영화를 해보고자 하는 학생들과 후배들을 위해 스태프와 배우 90%를 지역인재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질은 조금 떨어 질 수 있지만,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이 쌓이면 그들 역시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능력은 환경이 만든다'는 자신의 말을 그는 스스로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지역이 지역을 평가절하는 의식부터 바꿔야"

 

반면, 문제는 또 있다. 정상용 감독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은 지역에서 스스로 지역과 지역 인재를 평가절하 하면서, 눈높이를 자꾸 서울에 맞추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할까요? 영화만 놓고 보더라도 지역에서 영화를 만들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줘요. 그러다가 서울에서 상을 받거나 해외 어떤 영화제에서 평가가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서야 관심을 보여요."

 

이는 일종의 문화사대주의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같은 사인이 지역 신문에 실리면 별 주목을 못 받는데, 중앙신문에 보도되면 크게 이슈로 부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남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지, 스스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지는 않는다.

 

정 감독은 지역 영화감독도 천만관객을 이끌 수 있는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며, 이들을 평가절하 할 게 아니라 자부심을 심어줘 지역에 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 감독은 참고로 <타짜>의 최동훈 감독과 <쌍화점>의 유하 감독 역시 전라북도 출신임을 밝혔다.)

 

"좋은 작품으로 지역의 성공사례 만들겠다"

 

지역문제는 한 마디로 꼬인 실타래와 같다. 문제인 건 알겠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몰라 그냥 놔두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상용 감독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지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또 그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전국의 눈과 귀를 지역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 같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인정받는 작품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와! 이런 걸 지역에서 만들었어? 대단하다'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어요. 지역에도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언론에서도 그런 사람을 발굴해서 많이 소개해 줬으면 좋겠고요."

 

어쩌면 지역은 성공사례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 감독의 말대로 누군가 지역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그 성공사례가 특수한 사례가 아닌 일반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음이 증명된다면, '서울=성공'이라는 공식도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정상용 감독은 지난 2004년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시점에서 굳이 서울로 올라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역에서 지역의 특색을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친구들과 공유하고, 또 그들과 작품 활동을 같이 하며 지역에서 새로운 영상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가장 부러웠던 게 그들의 '다양성'이었어요. 여러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왔는데,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으로 맞춰져 있잖아요.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역에서 작품을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현실적인 고민 앞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계 위해 서울행 택할지도…우선 최선 다할 것"

 

#정상용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온 그는 전북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80년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접하고 난 뒤, 새로운 미술 장르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후 영상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CF연출 2년 이라는 경험을 뒤로 하고, 1998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영상의 기본이 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실험영화에 빠져들었다.

 

미술, 음악, 연극과 같은 예술 행위는 장르에 상관없이 창작과 소통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다는 믿음 아래,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단편영화, 무대미술,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으며, 전북대, 전주대, 우석대,군산대 등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전주에서 골방영화제라는 실험영화제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최근 <스테이크>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사회성 짙은 생각을 담아낸 작품에서부터, 형식적 고민이 묻어난 작품, 소통을 추구하는 작품, 실험성 짙은 작품까지 언제나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관을 만들어 나가는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전북의 특색을 담아내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빚이 5천만 원이예요. 1년에 천만 원 씩 빚이 늘어난 거죠. 지금도 집에서는 계속 서울로 올라가자고 해요. 저는 제가 뜻했던 바도 있고 하니, 일단 빚이라도 갚고 가자고 버티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계속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죠."

 

그는 자기 하나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렇게 계속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 둘 빠져나가게 된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약, 지금 인재들이 다 떠나버리고 나면, 정말 지역은 서울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올지 몰라요. 그땐 서울에서 인재를 돈 주고 사와야 되는데, 그들은 경력만 쌓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거든요. 그땐 정말 희망이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정상용 감독. 10년, 20년 뒤에도 그가 이곳 전주와 전북을 자신의 카메라로 담아 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8.10 17:3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역영화 #스테이크 #인재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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