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전의 '지젤', 당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쉬, 지젤 리본' 쇼케이스

등록 2009.08.14 15:43수정 2009.08.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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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어. 난 그 아픔을 건드리고 싶고.. 그 이유는 나도 몰라. 어떤 사람은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런 아픔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으니까. 그런 사람은 지젤을 보고 find it..!"

지난 13일 오후 7시, 평소 공연 관람을 좋아하는 기자는 마포구에 소재한 CJ 아지트에서 서울발레시어터의 올해 최대 야심작 '쉬 지젤 리본'(She, Giselle re-born)의 쇼 케이스를 찾았다. 약 100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은 일반 시민들로 가득 찼다. 부모와 함께 찾은 어린 학생들부터 주부와 학생들까지, 고전 발레의 틀을 넘어 현대적 해석으로 발레의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야심이 보이는 듯 했다.


a 지젤 포스터 사진 지젤 포스터

지젤 포스터 사진 지젤 포스터 ⓒ 서울발레시어터


강렬한 음악에 맞춘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동영상 참조)과 함께 깔끔한 진행이 돋보였던 배우 정애연씨의 등장으로 쇼케이스는 시작되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을 여러번 관람했던 기자였지만 이번 작품에 각별한 공을 들인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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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지젤 리본 ⓒ 서울발레시어터


이윽고 막이 올랐고 1막이 시작되었다. 관객들은 서서히 빠져들었고 10살 남짓한 어린학생들조차 숨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지젤은 관객들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했다. 3막까지의 쇼케이스가 끝나고 조명이 모두 꺼지자, 여느 공연들과는 달리 바로 박수는 터지지 않았다. 조용히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만 있었고 수초간의 정적 뒤 다시 막이 오르고 아직 몰입했던 감정이 채 진정되지 않은 무용수들이 상기된 얼굴로 커튼콜(작품이 끝난 후 무용수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부분)을 위해 다시 무대에 들어서자 그제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a  쉬, 지젤 리본

쉬, 지젤 리본 ⓒ 서울발레시어터


안무가 제임스 전은 순수 낭만 고전발레의 대표작인 지젤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 어쩔 수 없는 운명과 사랑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윤락마저 감내해야했던 지젤의 여인으로서의 삶을 격정적인 무용과 음악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포장에 기댄 껍데기 뿐인 아름다움이 아닌 우리가 애써 등 돌리고 외면했던 현실의 냉혹함과 고통에 대한 잔인한 아름다움이었다.

고전발레의 한계에 갇혀 예술만을 얘기하던 원작의 '지젤'과는 달리, '쉬 지젤 리본'에서 새로이 태어난 지젤이라는 여인은 우리 주변의 누구도 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걸 알기에 관객들에게는 예술을 넘어서 실제로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a  쉬 지젤 리본

쉬 지젤 리본 ⓒ 서울발레시어터


처음에는 '대중화와 예술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의구심으로 현장을 찾았던 기자 역시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듯, 공연이 끝나자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서 처음 느끼는 강렬한 인상에 한동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a  2막 지젤과 어머니

2막 지젤과 어머니 ⓒ 서울발레시어터


무대와 관객이 조금 진정되자, 진행자 정애연 씨가 제임스 전 안무가 및 무용수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들였고 관객들과 마주보고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a  '쉬 지젤 리본' 쇼케이스

'쉬 지젤 리본' 쇼케이스 ⓒ 서울발레시어터


관객들은 방금 본인이 느낀 감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 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질문들과 그 질문들의 날카로움에 무대도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안무, 내용, 음악은 물론, 본인의 느낌에 대한 해석을 부탁하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안무가 제임스 전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를 구체적으로 답하기를 거부했다. '각자 느낀 그대로가 안무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의도보다 본인들에게는 더 정확한 것'이라고 했다.


무용수들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혼신의 연기를 펼쳤던 '지젤' 임혜지씨에게는 "작품에서 윤락녀를 연기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운명에 처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기자는 상당히 거침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임혜지씨의 대답 또한 꾸밈없고 거침이 없었다.

"부모는 물론 사랑하는 이 모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가 우리 사회에서 갈 곳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이런 운명에 처한다면 다른 모든 수단을 먼저 찾겠지만 윤락만은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엄마로서 아이는 어떻게든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우선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면 최대한 빨리 그런 생활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겠죠."

지젤의 상대인 알브레히트 역을 맡은 하준국 씨에게는 연기와 감정몰입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상대 배우와 사랑하는 연기를 할 때 어떻게 감정을 몰입하죠?'라는 질문이었다. 하준국씨는 '실제로 알브레히트가 되어서 지젤을 바라봅니다. 연기하는 것이 아니죠. 저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꼈지만 무용수가 먼저 연기라고 생각하면 관객들도 '연기'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 진짜 알브레히트가 되어서 지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진짜로 지젤을 사랑하게 되죠. 이번 작품을 하며 제 상대배우와 사귀고 싶다는 느낌마저 잠시 들 정도였습니다. 전 이런 제 감정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아직도 공부 중이지만 언제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8월말, '쉬 지젤 리본'은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할 것이다.
첨부파일
서울발레시어터 She Giselle.flv
덧붙이는 글 직접취재
#SHE GISELLE #지젤 #서울발레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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