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신체, 그 중에서도 긴 타원형을 그리며 내려오는 종아리와 발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탐미는 오래된 것이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난 현상으로, 각종 시가(詩歌)에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은 하나의 장르를 이룰 정도로 풍부히 나타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종아리와 발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의 대상이, 우리가 생각하듯 여성의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미론이 만든 '원반을 던지는 사나이'나, 서양근대조각의 거장 브로델이 제작한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에서 보이듯이 역동적 근육의 표현으로 행동하기 직전의 집약된 힘을 나타내는 남자의 다리 역시 찬미의 대상이었다.
또한 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의 유행을 선도하였던 프랑스 궁정문화의 아이템 '힐' 역시 처음에는 남성 귀족의 애호품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비록 기원이야 그렇게 아름다운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반바지, 퀼로트를 입고 다니는 귀족들은 자신의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힐을 주로 신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귀족 여성들에게 힐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남성 귀족들이야 겉으로 드러나는 다리의 맵시 때문에 점점 높은 굽의 힐을 찾게 되고, 그 와중에 체중을 견디지 못한 발목이 부러져 나가고, 아킬레스 건이 끊기는 사고에 고생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들의 세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언제나 풍성한 드레스의 치마 안에 다리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어깨 위로 드러나는 상반신의 미를 가꾸는 것이 훨씬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런 여성들의 관심이 다리로 내려오게 된 것은 세계1차대전의 종전 이후인 1920년대부터였다. 이 시기에는 전쟁 후 직업 여성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자 깃이 없고 소매 없는 드레스와 함께 쇼트 스커트를 입으면서 자신들의 신체를 드러냄에 기반한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7년에는 스커트 길이가 복식사상 처음으로 바닥에서 14~16인치까지 짧아졌다.
물론 1928년부터는 다시 치마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했으나, 스커트 부분의 도련이 앞은 무릎길이이고 뒷자락은 바닥에 끌리는 스타일이 유행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쇼트 스커트의 변형된 형태였다. 당시의 여성들은 종아리의 드러냄을 통한 운신의 자유가, 긴 치마로 대변되는 여성의 구속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1964년 파리 컬렉션에서 프랑스의 디자이너 클레지가 무릎 위로 올라가는 미니 스커트를 발표하면서 스커트를 통한 다리의 드러냄은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종아리뿐만 아니라 허벅지까지 드러난 다리는 여성의 성적 매력의 척도가 되었다.
그 성적 매력을 좀더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제시된 것이 하이힐이었다. 보통 굽의 높이가 8~10cm 에 이르는 이 신발은,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의 지속적인 긴장을 강제함으로써 아름다운 다리 라인을 만들어준다는 속설과 함께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노 미니 스커트와 킬힐이다. 무릎 위로 24cm 이상 허벅지를 드러내고 거기에 맞추어 굽의 높이를 10cm 이상 올린, 이 두 가지 패션 아이템은 이것을 소화할 수 있는 부류인가, 아닌가에 따른 위계의 차이를 만들 정도의 트렌드를 만들었고 이것이 여성적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여성미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 과연 힐 착용의 부작용으로 무릎 관절 감퇴와 허리 디스크는 물론 발 모양의 변형까지 가져오게 하는 이 유행이,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대명사로 불리는 전족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물론 어떤 이들은 나노 미니 스커트와 킬힐의 유행이 문화적 현상이자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 스스로의 욕구 발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경제의 호황과 쇠퇴의 변동과 연결하여 경제가 어려울수록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아름다움을 통해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전족이 유행하던 시대의 해석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예컨대 18, 19세기의 중국에서는 전족 풍습을 문명이라고 부르고 전족을 하지 않는 이들을 야만적이라 자평하며,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예로 삼기도 했다. 또한 전족을 한 여성들 스스로도 전족이, 굳이 여자가 밭에 나가 일을 해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거나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상징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과 시각의 주체는, 여성들에게 오로지 성적 매력만을 강요했던 지배계급의 남성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가부장적 사회구조였다. 전족이 여성의 발 모양과 다리 근육의 변형을 통하여 성적 대상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며 보행의 자유를 박탈했던 것처럼, 킬힐과 나노 미니 스커트 역시 여성들에게 성적 매력의 극대화라는 미끼를 던짐으로써 그들을 관음의 대상물로서 전락시키는 것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나 도덕적이고 교과서적인 말일지는 모르나 인간의 아름다움은 외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외모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성적 매력을 통해 획일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당당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되짚어 볼 때, 킬힐과 같이 강요된 아름다움의 유행이 무엇을 뜻하는 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디지털경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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