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재활'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다

초등학생 딸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선 당당히 맞서야 했다

등록 2009.08.16 10:08수정 2009.08.16 10: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다리 모으고 앉았다 일어서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다리 모으고 앉았다 일어서기'는 기구없이 틈새시간을 활용하기도 좋고 나의 가장 큰 장애인 밸런스와 코디기능 향상에 제격이었다

다리 모으고 앉았다 일어서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다리 모으고 앉았다 일어서기'는 기구없이 틈새시간을 활용하기도 좋고 나의 가장 큰 장애인 밸런스와 코디기능 향상에 제격이었다 ⓒ 서치식


어렵게 시작한 일터에서 부족한 나를 느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사고 후 3년이 접어들며 어설프지만 그런 대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져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말 그대로의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선샤인(www.sun4in.com)이란 인터넷 매체에서 2008년 중반부터 편집기자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사고 전 지방지의 업무국에 10여년 다니던 시절에 친해져 교류가 많아 형제처럼 지내던 형님이 그곳의 대표를 맡으며 내게 기회를 준 것이다.

사고 후 3년여를 재활이 직업인 것처럼 생활하던 내게 무언가 할 일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외근을 하는 취재보다는 내근을 주로 하며 편집을 하는 업무로 몸이 좀 불편해도 업무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근무 초기 그때까지 다니던 통원치료를 조절하며 요령껏 다녔지만 개인별로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는 재활병원의 특성으로 두 가지를 병행하기란 버거웠다. 그래서 예전에 하던 헬스를 이용한 재활을 다시금 하기로 하고, 퇴근 후 무조건 헬스로 가 2시간씩 땀 흘리며 재활을 하기 시작해 꾸준히 했다.

그렇게 일과 재활을 병행해 완전한 재활을 꿈꾸며 열심히 해도 사람들 앞에 서면 어눌한 말투로 인해 일단 위축되고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편집기자 일을 한다 해도 외부로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할 일도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내게 일을 안 맡기려 했고 나 자신도 그런 일을 자꾸 피해하는 게 점차 당연시 되어갔다.


편집기자의 주요한 업무 중에 하나가 각 기관과 출입처에서 이메일을 통해 매일 들어오는 보도자료를 재가공해 자사의 기사로 편집해 게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용에 따라 전화로 보충취재를 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직은 어눌한 말투로 인해 미리 질문내용을 정리하고 입으로 연습하고 통화를 하거나 양이 많거나 애매한 경우엔 동료에게 부탁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동료들도 자기 업무로 모두들 바쁘고 나도 일이 많아 미리 정리도 못한 상태에서 보도자료를 보며 전화로 어느 기관의 홍보담당자에게 보충취재를 시작했다. 내 업무에 쫓겨 어눌한 말씨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통화하다 보니 내 말씨가 더 어눌했나보다. 그 홍보담당자가 주저하며 "아무리 우리를 홍보 해주는 기자의 신분이라도 말씀이 너무 하시지 않습니까? 줄곧 반말을 하시니 심히 불쾌 합니다"하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아뿔싸! 하고 사실은, 제가 아직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본의 아니게 말이 반말처럼 들렸나 보다고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흔히 교통사고 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부상정도만 생각하게 되고 말이 어눌할  정도의 부상은 접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리라. 결국 그 기관을 출입하는 기자가 나중에 그 담당자 에게 나에 관해 설명하고서야 오해가 풀렸지만, 그 일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금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 본심과 상관없이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 수 있는가? 또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에 내 자신이 위축되어 뒤로 빼는 상황이다 보니 회사에서도 그런 일에서 날 제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 문제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계속 그렇게 생활하면 난 영원히 많이 불편하고 위축된 초라한 장애자로 살 수밖에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회복귀가 더 늦어지더라도 충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혼자 고민에 쌓여 있던 어느 날 정부의 보도자료를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자료를 발견했다. 공무원 시험에 나이제한을 두는 것은 위헌이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2009년부터 공무원 시험에 나이제한이 폐지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자료를 보는 순간 "이거다! 사고로 인한 머리부상에서 오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아직은 내 힘으로 무언가 성취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변에도 보여주고 스스로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급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내가 체계적인 학습을 해야 하고 더욱이 경쟁이 치열한 시험을 과연 합격하겠나? 하는 망설임으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내가 선샤인뉴스에서 일하도록 기회를 준 대표에게 어렵게 기회를 보아 상의를 해도 "네가 열심히 공부해 설령 합격한다고 치자. 그때 받을 수 있는 급여가 지금보다 월등히 많은 것도 아닌데 여기서 일하는 게 더 안전한 거 아니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처음 자료를 접하고 그렇게 두 달여를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2008년 12월이었다. 혼자 수험서를 몰래 사서 봐도 영 자신이 서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가 않았고, 집사람에게 상의해도 '자기에게 어렵게 주어진 선샤인 일을 불확실한 시험 준비를 위해 포기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말렸다. 부모님과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a 5년간의 노력끝에 어설프지만 달리는 동작이 가능해졌다  사고 후 5년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비로서 어설프지만 달리는 동작이 가능해져 시험준비를 하는 틈틈이 달리기를 연습하고 있다.

5년간의 노력끝에 어설프지만 달리는 동작이 가능해졌다 사고 후 5년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비로서 어설프지만 달리는 동작이 가능해져 시험준비를 하는 틈틈이 달리기를 연습하고 있다. ⓒ 서치식


초등학생이 되는 사랑하는 딸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어야 했다

12월 말이 되자 사고 당시 5살이던 딸 형서가 올해로 어린이집을 졸업해 재롱잔치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사랑하는 집사람과 형서는 2007년 말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손수 차를 가지고 고향집에 들러 아버님을 모시고 서울로 재롱잔치를 보러 갔다. 사고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사랑하는 딸 형서는 밝게 명랑한 어린이로 바르게 성장해 재롱잔치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 대견한 딸의 재롱잔치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이제 얼마 후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저 밝고 바르게 자라고 있는 형서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졌다. 그랬다. 사랑하는 딸 형서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기 위해선 피하지 말고 도전해야 했다.

재롱잔치를 보고 전주에 내려와 출근해 내 결심을 말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시험 준비를 시작한 게 2009년 1월 중순이다. 시험을 본격 준비하며 4월에 국가직과 7월에 서울시 지방직 두 번을 응시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 노트북을 이용해 동영상 강의로 공부를 한다. 1시간여 듣고는 15분 정도 휴게실에서 나름의 재활운동을 하다 보면 하루에 7-8세트를 하게 된다. 6시가 되면 체육공원에 가 2시간여 재활운동을 하고 집에 와 저녁을 먹고 1시간쯤 절 운동을 하고는 샤워를 하고 1시까지 책을 보고는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이 이제 8개월째 접어 들면서 공부에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시험 준비를 위해 늦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보니 재활을 위한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가 어려웠다. 공부 초기 이로 인해 상당한 고민을 했다. 재활시간을 줄이려니 점차 회복되어가는 몸이 정체되지 않을까 두려웠고, 재활에 시간을 많이 할애 하려니 늦은 나이에다 뇌손상에서 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공부 중간 틈새시간을 재활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틈새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틈새시간을 활용해 재활을 해도 충분해 그 회복 속도는 더 빨라졌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많은 시간 동안 재활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자기에 맞는 재활운동을 찾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렵게 다시 선샤인뉴스라는 일자리를 얻었으나 나의 부족을 깨닫고 완전한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지 8개월째, 매일매일 공부에 매진하며 틈새시간을 활용해 규칙적으로 재활에 임하는 지금의 나는 새 희망을 꿈꾼다.
#재활운동 #뇌병변2급 #마라톤에하는 장애자 #5년간 도전 #공무원시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5. 5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