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건설이 앗아간 '버섯재배의 꿈'

천안시 북면 주민들, 빗속에서 골프장 공사 중지 기도회·단식 진행

등록 2009.08.21 16:19수정 2009.08.22 09:30
0
원고료로 응원

주민들이 오순도순 정 나누며 살아가는 농촌마을. 그러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 때문에 시골 마을은 몇 년 전부터 갈등의 온상이 됐다. 주민들은 사분오열, 화합과 안정의 시절은 어느새 옛 이야기가 됐다.

 

골프장 건설 계획으로 달라진 농부의 삶

 

a  이태선씨의 부인 황경화씨가 골프장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이태선씨의 부인 황경화씨가 골프장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윤평호

이태선씨의 부인 황경화씨가 골프장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 윤평호

이태선(54)씨는 10년 전 천안시 북면 명덕리에 정착했다. IMF 경제환란으로 근무하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새 삶으로 '버섯재배'를 선택했다. 천안시 성남면에서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인근 북면으로 옮겼다. 산지가 많고 물이 맑아 천안의 대표적 청정지대로 꼽히는 북면. 그 가운데 명덕리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아내와 버섯재배에 전념했다. 이대로라면 '성공'이란 단어가 멀지 않아 보였다. 시련은 5년전 엄습했다. 이씨의 버섯 재배동에서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2005년 전해졌다. 청한산업개발이 명덕리 산8-1번지 일원 41만9211㎡ 면적에 9홀 규모의 대중골프장 조성을 추진한다는 것.

 

제2의 고향인 명덕리에서 새벽에 눈떠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종일 생활하는 그에게, 골프장 건설의 폐해는 불 보듯 훤하게 보였다.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비가 오면 산사태 등 피해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나마 산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수해 피해를 줄여주는 방조제 역할을 하죠. 그런데 그 나무들을 몽땅 베어내 골프장을 만들면 강우시 수해 피해를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마을에는 골프장반대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본인은 생업을 돌보느라 아내인 황경화(52)씨가 대책위 활동에 참여했다. 각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골프장 주민설명회장을 쫓아가 농성을 벌였다. 허가권자인 천안시장 면담을 위해 시장실을 방문한 것도 수차례. 그의 아내는 대책위 지역 위원장으로 늘 앞자리에 있었다.

 

성과도 있었다. 산림 훼손, 지하수 부족, 주민 반발 등의 사유로 천안시는 골프장 사업주의 입안 제안서 접수를 두 차례 반려했다.

 

이에 불복해 사업주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심판 결과 천안시가 패소하자 걸림돌이 사라진 사업주는 골프장 조성 사업에 속도를 냈다. 결국 지난 7월 13일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천안시장 명의로 고시됐다. 골프장 조성 공사에 필요한 행정 절차는 이로써 일단락됐다. 중장비를 투입해 공사 착수만 남았다.

 

"한 가닥 기대는 가졌죠. 주민을 위한 행정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천안시가 주민들의 주거권과 생활권을 침해하고 대규모 환경훼손이 불가피한 골프장을 허가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잘못된 믿음'이었죠."

 

실망감과 배신감이 큰 데에는 올해 들어 입목축적조사서 부실과 조작, 지하수 개발 산정량 오류 등 골프장 인·허가 서류의 문제점이 명백히 확인된 탓도 있다. 이런 사실을 눈감은 채 시가 실시계획인가까지 내어 줄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이태선씨는 요즘 두 가지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여러 해를 넘기며 대책위 활동으로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상당한 아내. 최근에는 잠도 잘 못 이루고 자다가도 문득 악몽에 깨곤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울 뿐이다. 실시계획인가 뒤 비가 잦은 여름철임에도 골프장 조성 공사를 사업주가 강행하리란 소문도 불안을 키운다. 이씨는 '예전이 그립다'고 말했다.

 

빗속의 골프장 공사 중지 기도회, 그리고 단식

 

a  골프장 공사 중지를 위한 북면 주민 기도회 참석자들이 빗속에 행진을 하고 있다.

골프장 공사 중지를 위한 북면 주민 기도회 참석자들이 빗속에 행진을 하고 있다. ⓒ 윤평호

골프장 공사 중지를 위한 북면 주민 기도회 참석자들이 빗속에 행진을 하고 있다. ⓒ 윤평호

지난 20일 오후 2시 북면 납안리 1구 마을회관. 우산을 받쳐 써도 바지가 다 젖을 정도의 장대비 속에 30여 명이 모였다. '생명존중과 마론골프장 공사 중지를 위한 북면 주민 기도회' 참석을 위해 빗속을 뚫고 모인 사람들이다. 기도회는 납안리 교회, 대평리 교회, 단비 교회 등 2개소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북면에 위치한 3개 교회가 주축이 됐다.

 

첫 기도회의 진행은 단비교회 정훈영(45) 담임목사가 맡았다. 정 목사는 참석자들에게 미리 준비한 기도문을 나눠줬다.

 

'주여, 우리의 터전을 지켜주소서'라는 제목의 기도문에는 "우기에 골프장 공사를 멈추게 해 주십시오, 공사로부터 주민들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시오, 지하수와 냇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숲속의 나무와 짐승들 터전을 지켜 주십시오, 권력자들이 백성을 두려워하고 섬기게 해 주십시오" 등의 7가지 바람이 적혀 있었다.

 

기도 뒤 강론에서 정 목사는 "골프장 사업주와 천안시는 지금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며 "공사 강행 뒤 태풍이라도 오면 그 피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30분가량의 기도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주)마론C.C가 납안리 산 11번지 일원 102만1205㎡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는 사업부지까지 '골프장 반대' 손팻말을 들고 빗속에 행진했다.

 

기도회는 21일과 22일에도 목회자를 달리해 같은 시간 열렸다. 24일부터 29일까지도 매일 오후 2시에 기도회가 개최될 예정. 정훈영 목사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기도회가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 목사는 단순히 목회자로 기도회 진행을 담당한 것은 아니다. 본인 자신이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피해를 볼 지도 모르는 당사자이다.

 

정훈영 목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북면에 1992년 정착했다. 현재 신자 수는 50여 명. 정 목사는 목회자보다 농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땅과 농민, 먹을거리와 소비자를 동시에 살리는 생명농업의 꿈을 품고 수년째 주민들과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골프장 건설로 친환경농업단지 운영도 걱정"이라는 정 목사는 "찬성한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로 찢어지고 갈라져 주민들이 마음의 평화를 잃은 점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천안시청 1층 출입문 옆에서 '골프장 건설 공사 중단, 사업부지 공동조사 요구'를 내걸고 18일 낮부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안병일(46.백석동) 골프장 저지 천안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상임대표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진보신당 충남도당 위원장인 안 대표는 단식 농성 3일차인 20일 오전 정신을 잃고 쓰러져 황급히 병원에 이송됐다. 안병일 대표가 입원한 뒤로는 이윤상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이 이어서 단식을 하고 있다.

 

단식 4일차인 21일 오전에는 반가운 소식 하나가 당도했다. 24일 천안시청에서 천안시와 충남도, 골프장 사업주, 시민대책위간 4자 회담이 확정됐다. 이윤상(44) 집행위원장은 "4자 회담에서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며 "단식은 공사 중단과 함께 해당 산림의 입목축적 공동조사가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덕리 골프장 인가 무효화 소송

주민들, 18일 대전지법에 행정소송 접수

청한산업개발(청한산업)의 북면 명덕리 골프장(9홀) 인가 과정의 적법성이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최근 골프장 저지 천안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명덕리 골프장의 2008년 7월 30일 천안시 도시관리계획 처분과 2009년 7월 12일 천안시 실시계획인가 처분이 무효라며 지난 18일 대전지방법원에 천안시장을 피고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북면 지역 주민 6명이 원고로 청구한 소장에서 주민들은 "도시관리계획결정 처분은 입목축적조사 보고서의 중대명백한 하자로 인해 무효이며, 무효인 선행처분에 의해 이뤄진 실시계획인가처분 또한 무효"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각 처분의 하자가 무효사유에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시계획인가처분은 산지전용허가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 이루어진 처분으로서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지전용협의 과정에서 천안시가 입목축적 조사를 면밀히 검토한 후 실시계획인가 처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태만히 한 결과 산지전용이 될 수 없어 골프장이 들어올 수 없는 부지에 실시계획인가처분이 된 것은 위법하다는 설명이다.

원고 가운데 한 명인 박기복 시민대책위 조사연구팀장은 "명덕리 골프장은 입목축적조사서가 세차례나 제출됐지만 모두 결정적인 하자를 안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시는 실시계획인가를 처분했다"고 말했다.

특히 박 팀장은 "청한산업측이 시에 최종 제출한 3번째 입목축적조사서를 현지조사를 통해 검증해 본 결과 나무본수가 누락되는 등 입목축적조사의 부실함이 입증됐다"며 "오류를 시정해보면 산지전용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39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명덕리골프장 #납안리골프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46년 된 집 수리한다니 95세 아버지가 보인 반응 46년 된 집 수리한다니 95세 아버지가 보인 반응
  2. 2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에 손님들이 달라졌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에 손님들이 달라졌다
  3. 3 요즘 이런 김밥을 어떻게 먹겠어요 요즘 이런 김밥을 어떻게 먹겠어요
  4. 4 외국인데 가는 곳마다 현대, 기아차... 여긴 어디? 외국인데 가는 곳마다 현대, 기아차... 여긴 어디?
  5. 5 '신창원 검거' 여형사가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슬픈 이야기 '신창원 검거' 여형사가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슬픈 이야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