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달을 머금었다 하여 함월산 !

설화문학의 요람, 그 호국사찰 기림사에 '일그러진 영웅'과 가다

등록 2009.08.23 11:40수정 2009.08.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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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는 신라 초기 인도 범마라국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했다. 한 때 임정사라고 불리웠다. 선종의 고찰이다. ⓒ 김찬순

▲ 기림사는 신라 초기 인도 범마라국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했다. 한 때 임정사라고 불리웠다. 선종의 고찰이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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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머금었다 하여 함월산과 달을 토해낸다 하여 토함산의 그 조화로운 음양의 관계 ⓒ 김찬순

▲ 달을 머금었다 하여 함월산과 달을 토해낸다 하여 토함산의 그 조화로운 음양의 관계 ⓒ 김찬순

지난 주말이다. 따르릉 회사로 전화가 왔다. "니 기림사 갈꺼제 ? 니 안가면 안된다카이..." 전화기 속의 투박한 부산 사투리의 목소리만 들어도 난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의 저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별명을 가진 P 고등학교 3학년 1반 반장 목소리… 이렇게 우리는 3학년 1반 '일그러진 영웅' 반장의 명령에 모두 복종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9번지 소재, 기림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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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에는 전설이 많다. 이 절에는 천년에 한번 핀다는 다섯가지 빛깔의 상서로운 우담바라라는 꽃이 핀다고 전해온다. ⓒ 김찬순

▲ 기림사에는 전설이 많다. 이 절에는 천년에 한번 핀다는 다섯가지 빛깔의 상서로운 우담바라라는 꽃이 핀다고 전해온다. ⓒ 김찬순
"야, 우리 도대체 몇 년 만에 와 보는 수학여행이꼬 ?"
"아, 정말 공기 좋다."
"우리 자주 수학 여행 오자 !"
"그런데 이 기림사 절이 와 이리 많이 커졌노 ? 옛날에도 이렇게 절이 컸나 ?"
 
기타 등등 그때 그 시절 고등학교 3학년 1반 학우들이, 이제는 허연 반백의 사내들이 되어 수다스럽게 아동들처럼 산문을 넘었다.
 
우리나라 설화 문학의 귀중한 사찰 기림사
 
기림사는 신라 초기 인도 범마라국 사문 광유성인이 창건한 절이다. 한때는 임정사라고도 불렸던 선종의 고찰이다. 광유화상이 부처님의 도량을 마련하여 오백제자를 교화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우리나라 설화문학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신라 제 31대 신문왕이 감은사의 앞바다 대왕암에서 용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고는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들고 쉬는데 때마침 태자(후의 효소왕)가 와서"이 옥대의 한쪽 한쪽이 모두 진용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네가 어찌 아느냐"라고 하자, 태자가 "옥대의 한쪽을 떼서 물에 넣어 보소서."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왼편 둘째 쪽을 떼서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어 용연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외 기림사에는 '우담바라' 등 다양한 전설이 함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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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보물 제 833호 기림사에는 또한 예로부터 오정수가 유명하다. 후원의 화정수와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3층 석탑 곁의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천왕문 앞의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천왕문 안의 오탁수가 그것이다....그러나 장군이 날까 두려워한 일본이 막았다는 설이 전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 김찬순

▲ 대적광전 보물 제 833호 기림사에는 또한 예로부터 오정수가 유명하다. 후원의 화정수와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3층 석탑 곁의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천왕문 앞의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천왕문 안의 오탁수가 그것이다....그러나 장군이 날까 두려워한 일본이 막았다는 설이 전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 김찬순
정말 친구의 말처럼 기림사는 옛날보다 더 커 보였다. 세월이 가면 당시 본 것들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는데 말이다. 기림사의 경내를 둘러보니 새롭게 단장하고 확장한 듯한 사찰도 눈에 많이 띄었다.
 
기림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하늘 기둥을 깍은 후, 다시 승문에 들어간 원효에 의해 임정사는 기림사로 개칭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왜구가 동해를 거쳐 서라벌로 침입하는 길목에 놓여 호국사찰의 구실을 해 온 기림사는 고려 고종 때 삼국유사를 지으신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노숙인 대선사 각유가 이 절의 주지로 주석해 있다는 기록이다.
 
 정조 때에는 경주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털어 크게 중수하였고, 철종 13년(1862)에는 대화재로 113칸의 당우가 소진되었으나, 열성어필 도선생안, 부선생안 등의 중요한 유물을 보존해온 까닭에 이듬해 경주부윤 송우화 등의 시주를 받아 복원하였으며, 그뒤 고종 15년(1878)중수를 거쳐 1905년 혜훈이 다시 중수하였으며 최근에 중창하여 오늘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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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1대 신문왕이 감은사의 앞바다 대왕암에서 용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고는 기림사 서쪽 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들고 쉬는데 때마침 태자가 와서 '이 옥대의 한쪽을 떼서 물에 넣어보소서.'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왼편 둘째 쪽을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 김찬순

▲ 신라 31대 신문왕이 감은사의 앞바다 대왕암에서 용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고는 기림사 서쪽 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들고 쉬는데 때마침 태자가 와서 '이 옥대의 한쪽을 떼서 물에 넣어보소서.'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왼편 둘째 쪽을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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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 때 삼국유사를 지으신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노숙인 대선사 각유가 이절의 주지로 주석해 있었다. 이외 서산대사의 직전을 이는 스님들이 주지로 주석해 왔다. 임진왜란 때 승권의 지휘본부로 호국사찰임을 일러준다. ⓒ 김찬순

▲ 고려 고종 때 삼국유사를 지으신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노숙인 대선사 각유가 이절의 주지로 주석해 있었다. 이외 서산대사의 직전을 이는 스님들이 주지로 주석해 왔다. 임진왜란 때 승권의 지휘본부로 호국사찰임을 일러준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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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볼 때 기림사에는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추듯 뭇봉우리가 둘러싼 가운데 물길이 열려 이루어진 광활한 명당으로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 형이다. 절에 들어선 산 이름은 함월산으로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과 서로 달을 토해내고 머금는 관계라고 한다. ⓒ 김찬순

▲ 풍수로 볼 때 기림사에는 용이 날아오르고 봉황이 춤추듯 뭇봉우리가 둘러싼 가운데 물길이 열려 이루어진 광활한 명당으로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 형이다. 절에 들어선 산 이름은 함월산으로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과 서로 달을 토해내고 머금는 관계라고 한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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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불전 기림사 가람배치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불과 사천왕, 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 서쪽에는 관음전, 정광불의 사리각인 삼층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 산신각, 무량수전, 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 김찬순

▲ 삼천불전 기림사 가람배치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불과 사천왕, 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 서쪽에는 관음전, 정광불의 사리각인 삼층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 산신각, 무량수전, 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 김찬순
기림사에는 유서 깊은 사찰에 걸맞은 많은 성보문화재가 박물광 등에 보존되고 있었다.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다. 그후 조선 인조 7년(1629)에 중수된 조선시대 대표적 불전인 대적광전(보물 제833호)에는, 16세기 불상으로서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배치된 형식이다.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비로자나 삼존불(보물제 958호),대적광전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 속에 봉안되어 있던 '대반야경' 등 금. 은 사경 14권과 조선시대에 만든 불경, 부처님 진신사리 4과 등의 비로자나불 복장전적(보물 제959호) 역시 보물이다. 그리고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종이를 바르고 그 위에 옻칠을 하고 다시 금을 입힌 관세음보살반가상으로 조선조 연산군 7년(1601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건칠보살좌상(보물 제 4115호)도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한마디로 기림사 전체가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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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탱화가 없네 기림사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감포쪽으로 토함산과 함월산의 협곡에서 동해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 김찬순

▲ 앗, 탱화가 없네 기림사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감포쪽으로 토함산과 함월산의 협곡에서 동해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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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지척에 불국사, 석굴암, 은은사지, 이견대, 장항리사지, 문무대왕 수중름인 대왕암 등이 지척에 있어 관광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 김찬순

▲ 기림사 지척에 불국사, 석굴암, 은은사지, 이견대, 장항리사지, 문무대왕 수중름인 대왕암 등이 지척에 있어 관광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 김찬순
시간이 많지 않아, 기림사 경내 구석 구석 다 둘러볼 수 없었다. 우리는 여행 시간표 때문에 경주쪽으로 이동을 해야했다. '친구'는 다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동창 친구만큼 좋은 이름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친구란 이름으로 기림사에 왔다 간다는 징표로 종교구분없이 몸에 좋다는 108배, 절공양을 했다. 대학생을 둔 학부형은 대학 입시 잘 되길 비는 공양 등 저마다 기림사에 온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쓰며 다음 여행 코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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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고등학교 수학여행 온듯 고등학교 동창들과 기림사 찾다 ⓒ 김찬순

▲ 오랜 만에 고등학교 수학여행 온듯 고등학교 동창들과 기림사 찾다 ⓒ 김찬순

덧붙이는 글 | 기림사 가는 길/경주시외버스터미널 출발, 감포행(06:00-22:00, 20분 간격)또는 양남행(06:30-21:30, 40분간격)버스를 타고(30분소요)어일에서 하차하여 기림사행 버스로 갈아타고 택시이용하면 된다.
기차는 경주역(새마을호. 무궁화호.통일호)에서 하차, 자동차이용시,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나와 경주-감포방향(지도 참조)

2009.08.23 11:4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기림사 가는 길/경주시외버스터미널 출발, 감포행(06:00-22:00, 20분 간격)또는 양남행(06:30-21:30, 40분간격)버스를 타고(30분소요)어일에서 하차하여 기림사행 버스로 갈아타고 택시이용하면 된다.
기차는 경주역(새마을호. 무궁화호.통일호)에서 하차, 자동차이용시,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나와 경주-감포방향(지도 참조)
#기림사 #함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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