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에게 무릎 꿇은 복야회, 과연 실존했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등록 2009.08.24 10:54수정 2009.08.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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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야 해방조직인 복야회의 리더로 활약하는 월야왕자(주상욱 분). ⓒ MBC


천명공주(박예진 분)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드라마 <선덕여왕>이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왕실과 조정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공주의 위상을 세운 덕만(이요원 분)이 미실(고현정 분)을 꺾고 신라의 왕권을 쟁취하기 위한 권력투쟁에 과감히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의 제26부에서는 덕만이 "왕이 되겠다!"고 선포한 뒤에, 달랑 유신·알천·비담 셋만 거느리고 조촐한 '대선 캠프'를 꾸리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여의도'의 그럴싸한 사무실도 아니고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서 벌어진 덕만의 '대권도전 선언'은 지지자들 아니 시청자들의 마음을 서글프게까지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제26부에서는 외로운 왕권 도전자 덕만에게 뜻하지 않은 원군이 가세했다. '가야를 복원한다'는 의미의 복야회(대표 월야왕자)라는 명칭을 가진 가야 해방조직이 김유신(엄태웅 분)을 매개로 덕만과 연결된 것이다. 천명공주 급사 이후의 민심 혼란을 틈타 발호한 반정부단체 복야회가 뜻밖에도 덕만의 우군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가야 월광태자의 적자라는 월야왕자(주상욱 분, 가상의 인물)와 직접 담판을 벌여 가문 소유의 토지를 떼어주는 대신에 복야회와 동맹을 체결하기로 한 유신은 "동맹의 왕에게 예의를 표하라!"며 덕만에게 무릎을 꿇을 것을 복야회 멤버들에게 요구했다.

유신·알천·비담과 함께 월야왕자를 비롯한 1천 명의 복야회 전사들까지 얼떨결에 덕만에게 예를 표하는 장면이 제26부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볼 수 있다. 미실에 비해 절대열세인 덕만이 자기 자신과 유신·알천·비담과 복야회를 포함해서 1+3+1000의 조직을 갖추는 순간이었다.  

<선덕여왕>에 등장한 복야회, 과연 실제 있었나?

항상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선덕여왕>에 갑자기 등장한 복야회의 존재 앞에서 우리는 '저 시대에 과연 가야 해방조직이 저처럼 실존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609년(김유신의 화랑 데뷔) 이후의 시점은 사다함 등이 이끄는 신라군에 의해 대가야가 멸망한 562년으로부터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야 해방운동이 얼마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 복야회의 리더인 월야왕자가 실존인물인 대가야 월광태자의 적자였다고 설정을 한 탓에, 일부 언론들에서 "월야는 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의 장자로 가야왕국의 정통성을 지닌 인물"이라며 월야왕자가 마치 실존인물이었던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어서, 시청자나 누리꾼들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복야회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복야회를 다룬 <선덕여왕>의 설정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 것일까? 물론 복야회라는 명칭을 가진 단체가 활동한 적은 없지만, 가야 해방의 목표를 갖고 진평왕 시대에 활약상을 남긴 반정부단체가 존재한 적이 있을까?

전문 무장병력 갖춘 반정부단체 탄생, 가능할까

물론 그 시기에도 가야의 복원을 꿈꾼 사람들은 얼마든지 존재했을 수 있다. 반세기가 아니라 수백 년이 지난다 해도, 옛 가야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가야의 부활을 가슴에 품어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수 있다. 이것은 굳이 사료상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수긍될 수 있는 점이다.  

그러나 드라마에 나온 복야회처럼 1천 명 이상의 전사들을 보유한 무장조직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두서너 혹은 대여섯 명이 가야의 부활을 목표로 의기투합하는 일은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1천 명씩이나 거느린 반정부 무장조직이 탄생하려면 그에 필요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조건 등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에 자금력도 필요하고 조직가도 필요하고 대중적 기반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명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에서 반체제운동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서 1천 명 이상의 전문적 무장병력을 보유한 반정부단체가 출현하지 못한 점을 보더라도, 그만한 규모의 무장조직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태생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무장조직이 등장해서 활약상을 남겼다면, 역사가가 고의로 누락시키지 않는 한, 이들의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사료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화랑도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았던 가야파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 권4 '진평왕 본기' 등에는 가야 출신들의 정치적 동향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그 점을 분석하는 데에 힌트가 될 만한 2가지 사실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둘 다 진평왕 시대의 팩트이기 때문에, 복야회 같은 조직의 실존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에 유용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팩트는 미실의 동생인 미생이 제10세 풍월주(화랑도의 제1인자)로 재임하던 585~588년 전후의 화랑도 파벌 구도다. 이 시점은 가야가 최종적으로 멸망한 때로부터 불과 23~26년밖에 안 된 때로서 진평왕 치세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화랑세기> 제10세 풍월주 미생 편에 따르면, 미생의 풍월주 재임 시기에 화랑도의 기층세력인 낭도들 사이에는 5대 파벌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 다섯 그룹 중에 하나가 가야 출신 낭도들로 이루어진 가야파였다. 

두 번째 팩트는, 김춘추의 전임자인 염장이란 인물이 제17세 풍월주 임기를 마친 626년 이후의 화랑도 파벌 구도다. 위의 첫 번째 시점으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때로서 진평왕 치세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화랑세기> 제17세 풍월주 천광 편에 따르면, 염장의 풍월주 퇴임 이후로 화랑도 내부의 주도권이 가야파에게 많이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화랑도 내부에서 가야파에 대한 숙청작업이 전격적으로 전개된 때는 제24세 풍월주 천광의 취임(643년) 직후였다. 그러므로 626년 이후로부터 최소 10여 년 이상은 가야파가 화랑도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팩트를 통해, 우리는 가야가 멸망한 지 사반세기 밖에 안된 580년대에 이미 가야 출신들이 신라 최대의 관변단체인 화랑도의 5대 파벌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이로부터 반세기가 좀 안 된 630년대에는 가야 출신들이 화랑도의 최대 파벌로 성장하여 최소 10년 이상 전성기를 구가했음을 알 수 있다. 진평왕 집권기(579~632년) 동안에 가야 출신들이 신라사회에서 대대적인 정치적 약진을 거듭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성장도 그런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복야회, 드라마 필요에 의해 허구적으로 탄생한 단체

위와 같이 진평왕 재위기에 가야 출신들의 정치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이들의 제도권 진입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은, 이 시기에 가야 출신들의 관심이 제도권 바깥보다는 제도권 중심으로 집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이들로부터 나오는 인적·물적 자원이 신라사회의 제도권 내부로 쏠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신라의 가야 흡수정책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볼 때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가야 해방조직인 복야회의 존재를 제시하고 이를 덕만 및 유신과 연결시킨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천 명의 무장 전사들을 보유한 가야 부흥세력의 존재를 추정케 할 만한 제반 조건들이 사료상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수많은 가야 출신의 중하위 엘리트들이 화랑도에 편입된 기록만이 사료상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 진평왕 시기의 가야 출신들은 일반적으로 가야의 해방을 꿈꾸기보다는 신라사회에서의 출세를 보다 더 꿈꾸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야의 해방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존재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기운이 집단적으로 응집될 만한 정치·사회·경제적 조건은 형성되기 힘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등장한 복야회는 당시의 실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필요에 의해 허구적으로 탄생한 단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드라마의 필요'란 달랑 세 명의 지지자밖에 확보하지 못한 덕만에게도 강력한 미실에 맞설 만한 무장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복야회란 조직은, 덕만이 미실을 상대로 그럴싸한 대항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생겨난 허구적 장치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선덕여왕 #복야회 #월야왕자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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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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