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내 동무 집은 어디인가?

[인천 골목길마실 61] 기찻길과 텃밭과 고추말리기와 사람과

등록 2009.08.29 12:09수정 2009.08.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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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토박이라 하는 인천사람한테도 '능안세거리'는 익숙하지 않은 길이름입니다. 숭의1동과 신흥동3가와 용현2동이 맞닿는 이곳 '능안세거리'는 인천 옛 도심에서 야릇한 자리였으며, 옛 '인천시외버스터미널'은 능안세거리 옆으로 150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일곱 살 때부터 신흥동3가 7-235번지에 살았고, 경기도를 돌아다니는 국민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새벽 여섯 시 무렵이면 이곳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습니다.


제가 떠올리기로, 동춘서커스단이 인천으로 공연을 올 때면 으레 숭의1동 441번지 퍽 너른 빈터에 천막을 치고 손님을 끌었습니다. 1985년 9월에 큰비가 쏟아져 시외버스터미널이 물에 잠기며 사흘 동안 버스가 한 대도 다니지 못하던 일은 스물 몇 해가 지났지만 제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른들은 발이 묶여 동동 굴렀지만, 국민학교 3학년인 저와 동무들은 그 물바다에서 "여긴 공짜 수영장이야!" 하면서 물놀이를 했습니다.

숭의1동 441번지와 건너편 숭의1동 383번지며 379번지를 가르는 철길은, 철길로 이 동네와 저 동네를 가를 뿐 아니라, 철길 한쪽에 차지하고 있는 '옐로우하우스'를 갈라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옐로우하우스'라고 하면 어딘지를 환히 알아도 '능안세거리'라고 하면 거의 몰랐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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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숭의1동' 골목길이지만, 한쪽은 '옐로우하우스' 골목입니다. 서울 청량리만큼 크고 넓지 않으나, 인천 옛 도심지 한복판과 살짝 이웃한 자리에 있는 곳입니다. ⓒ 최종규


금요일 아침,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떼려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중구 내동에 있는 살림집에서 나와, 도서관이 있는 창영동으로 가서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동사무소에 들러 등본을 하나 뗍니다. 금곡동 마실을 살짝 한 다음, 도원동으로 넘어가 옛날 야구장 옆으로 스친 다음, 숭의1동 '옐로우하우스' 자리 골목을 지나가 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곳 골목 안쪽에 있던 오락실에 가려고 뻔질나게 찾아왔는데(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락실이 이곳에 있었기에), 중학생 때까지는 옐로우하우스라는 이름이 왜 붙었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옐로우하우스는 인천에 있는 미군부대에 발맞춰 마련된 성매매업소 골목임을 알았고, 이무렵에 비로소 이 골목 한켠에 '스물네 시간 청소년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푯말이 섰습니다.

아침햇살을 등으로 느끼며 옐로우하우스 깃든 여느 살림집 골목을 거닙니다. 아침과 낮에는 여느 골목길하고 다를 바 없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저, 여느 살림집 사이사이로 '여관' 간판이 수두룩하고 문간에 '영업중'이라는 팻말 걸린 데가 많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골목길에도 '고추말리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데든 이곳이든 '사람 사는 동네'임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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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에서 나무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문간에 붙은 '영업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 최종규


건널목 신호를 받고 철길을 건넙니다.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입니다. 언제 다시 뚫릴 지 알 길이 없는 수인선이 달리지 않는다면 이 철길은 언제까지나 무늬로만 남는 철길일 테지요. 그런데 이 무늬만 남은 철길은 몇 해 앞서부터 '동네 텃밭'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네사람이 빈터에서 돌을 하나하나 골라 조용히 일구는 텃밭이 아니라, 숭의1동사무소에서 아예 '동네 꾸미기'를 뒷배하면서 이 동네사람 누구나 땅뙈기를 조금씩 나누며 널찍하게 일구는 텃밭입니다.

인천시 한켠에서는 '오래된 동네 = 낡은 동네 = 땅값 싼 동네 = 빨리 허물고 아파트로 바꿔 지을 동네 = 주민 생각 듣지 않고 공무원 책상머리 행정으로 마련한 재개발정책을 통보하기만 하면 되는 동네'라는 이음고리가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동네를 있는 그대로 가꾸도록 마음을 쏟아 줍니다. 이리하여, 기찻길을 앞뒤로 해서 넓고 길게 동네텃밭이 마련되었고, 이 기찻길을 따라서 주욱 맞닿는 동네 골목집들은 기찻길 둘레에 장판을 깔고 고추를 말립니다. 니 자리요 내 자리요 하는 다툼이 없이, 자가용이 들락거리며 차방귀를 뿜느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는 걱정이 없이, 퍽 넓은 '기찻길 옆 빈터'를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면서 고추말리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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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1동 기찻길 옆 골목동네 들머리. 왼쪽 쇠그물 울타리는, 얼마 앞서까지 '칙칙한 시멘트 울타리'였습니다. 이 가난한 동네를 감추려고 쌓아 놓던 울타리였습니다. ⓒ 최종규


예전에는 이곳, 기찻길 옆 동네를 '길 밖에서 보이지 않게끔 시멘트 울타리를 쳐서 가로막았'는데, 올해부터는 이 울타리마저 없애고 쇠그물 울타리를 새로 놓아 텃밭 일구는 모습이 보이도록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확 달라지자, 인천에서든 인천 바깥에서든 사진찍기 좋아하는 이들이 하나둘 입소문을 타고 이 동네로 사진을 찍으러 마실을 옵니다(이곳은 전철역에서 꽤 멀고, 동인천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걸어서는 오십 분쯤 걸리기 때문에 다른 곳 사람들은 찾아오기 쉽지 않은데도). 이곳으로 사진찍기 하러 오는 분들은 '인천에 이런 데가 있느냐?' 하는 놀라움을 넘어 '한국에 이런 데가 있느냐?' 하는 놀라움을 뱉어내고, '다른 나라에도 이런 데는 드물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더구나, 인도나 중남미에 가자면 비행기삯이 꽤 비쌉니다. 요사이, 인천에서는 세계도시축전이라고 펼쳐지고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자면 만삼천 원짜리 표를 끊어야 합니다(덧붙이자면, 신종플루 때문에 손님 발길이 뚝 끊어지자 인천시에서 인천 공무원한테 공짜표를 무더기로 나누어 주면서 구경하러 가라는 지시를 내려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인천 초중고등학교 25만 명한테는 하루빨리 수학여행이든 체험실습이든 보내서 구경을 시키라는 공문까지 내려보내 더 큰 말썽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기찻길 옆 골목동네 텃밭이며 고추말리기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사진으로 몇 장 담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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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찻길 옆으로 넓게 마련된 텃밭을 조금씩 나누며 부지런히 일손을 놀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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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 찻길만 가린다면, 이곳이 도심지 한켠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 최종규


아마, 인도라든지 중남미 가난한 나라에 가 보면, 이곳과 비슷한 삶터를 마주할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인천 남구 숭의1동 441번지와 438번지 '기찻길 옆 골목길'과 '기찻길 옆 골목동네 텃밭' 같은 느낌과 삶터는 나라안이든 나라밖이든 아주 드물다고 느낍니다. 거의 한삶을 이곳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온 동네 어르신은 "재개발 하겠다면 떠나야겠지만, 기차가 안 다니고 난 다음부터는 이 동네가 퍽 살기 좋아. 아파트보다야 이곳이 훨씬 좋지. 평생 지내 온 이 동네만큼 좋은 데는 없어. 재개발이 될 때까지는 이곳에서 떠날 생각은 없어"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창 기찻길 옆에서 고추를 말리고 그늘자리에 모여앉아 쉬고 있는 아주머니들한테 말씀을 여쭙니다. "고추말리기 사진으로 찍어도 될까요?" "아유, 사람만 안 찍으면 돼. 얼마든지 찍어." "사람도 찍으면 어때? 혹시 우리가 모델로 찍혀서 사진작가 선생이 사진공모 같은 데에서 상 받으면 우리도 유명해지잖아?"

되도록 아주머니들 모습이 안 나오게 찍으려고 하지만, 한 아주머니만큼은 사진틀에 들어옵니다. 마음속으로 '아주머님은 사진에 들어오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기찻길가에 피는 보라빛과 하얀빛 도라지를 함께 찍고, 기찻길 옆 고추말리기 옆 콩밭을 나란히 찍습니다. 오늘은 예전에 다니던 학교로 가서 졸업증명서를 얼른 떼고 서울로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맑고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골목동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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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다닐 때까지, 온 동네 사람들은 신경이 몹시 날카로우며 고단했습니다. 기차가 끊어지면서, 온 동네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지면서 삶터는 한결 깨끔하고 맑고 밝고 아름다워집니다. ⓒ 최종규


사진을 다 찍고 예전 다니던 고등학교 쪽으로 자전거를 달리면서, 이 기찻길 옆 골목동네에 살던 내 옛동무들은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가 헤아려 봅니다. 꼭 한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여태까지 서른다섯 해를 이 동네에서 살아가고, 다른 동무들은 소식을 모릅니다. 동네 토박이로 살아가는 동무녀석은 새벽 일찍 서울로 일하러 가서 밤늦게 인천으로 돌아오니 얼굴만 보자고 해도 날을 맞추기가 몹시 힘듭니다.

동무네 식구들이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집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인사를 보냅니다.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었지만, 어릴 때 우리가 기찻길 옆에서 놀던 삶을 고이 간직하면서 몸과 마음 모두 튼튼하게 잘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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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니 '7호'니 '12호'니 하는 숫자가 붙는 집들. 아침과 낮에는 여느 살림집과 똑같이 빨래를 햇볕에 널며 똑같이 해바라기를 하는, 똑같은 골목사람입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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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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